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와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한미 FTA와 관련해 30일 밤늦게 서명한 ‘여야정 합의문’이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민주노동당과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이를 ‘야합’이라고 규정하며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야5당이 비준 저지 공동대응을 위해 31일 개최하기로 합의했던 ‘공동의원총회’도 잠정 연기됐다.

민주노동당은 대책 마련을 위해 31일 오후 3시에 최고위원회-의원단 긴급 연석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이정희 대표는 “(한미 FTA 비준 저지를 위한) 야5당 공동체제에 상당한 균열이 발생했다고 보인다”며 “비준동의안 강행처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김선동 의원은 “야5당 당대표들의 합의사항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원칙 없는 야합에 나선 것”이라며 “국민들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민노당은 여야정 합의문에 대해 “이 합의문은 사실상 ‘한미 FTA 처리 합의문’에 다름 아니며, 그동안 야당과 시민사회가 요구해오던 핵심적 문제들을 완전히 빗겨간 누더기 합의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합의한 내용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깎아 내렸다.

범국본도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의 합의문에 대해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합의문에 서명한 김진표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민주당이 합의한 내용은) 지금까지 민주당의 당론이던 ‘10+2 재재협상안’에서 단 1cm의 진전도 없다”며 “그럼에도 이미 재탕 삼탕에 걸쳐 실패한 것으로 판명난 것들을 마치 대책인양 늘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합의문에 포함된 중소기업 및 중소상공인 지원대책에 대해서도 “한미 FTA 협정 위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정책들”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대책 아닌 대책’을 내세워 한나라당과 ‘야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 10월 12일 민주당,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국회 앞에서 한미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 저지를 위한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민주노동당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야5당 대표가 공동대응 하자고) 명문으로 합의한 것도 연거푸 위반하는데 그런 신뢰 없는 정당과 야권연대가 되겠느냐.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면서 “여야정 합의문은 야권연대만이 아니라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강실 공동대표도 “(여야정합의는) 민주당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죽이는 길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야권연대를 위해서 힘을 합쳐 한미 FTA 비준을 거부해야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산다”고 지적했다.

야권과 보조를 맞추는 듯 하다가도 돌연 '독자 행동'에 돌입하는 민주당의 ‘갈 지(之)자 행보’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EU FTA 협정 체결 당시에도 민주당은 ‘전면적 검증 없는 한-EU FTA에 반대한다’는 야권연대의 정책연합 기조를 깨고 4·27 재보선 당일 한나라당과 비준을 합의했다. 더구나 이미 한나라당과 합의를 해놓고도 선거가 끝난 다음날에야 합의사실을 발표하는 등의 행태를 보여 “낮에는 야권연대, 밤에는 야합”(박석운)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적이 있다.

지난달 1일에는 김동철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민주당 간사가 ‘미국 의회의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객관적으로 명확해지는 시점에 여야 간사 합의를 통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하기로 한나라당과 합의하기도 했다. 당시 범국본은 이에 대해 “10대 독소조항이 전혀 고쳐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 의회가 한미 FTA 협정을 처리한다면 한국에서도 국회에서의 비준동의안 처리를 하겠다는 것에도 합의한 것”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또 지난 12일, 민주당 김동철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제10차 야당공동정책협의회’를 열어 협정문 번역 오류 정오표 공개 등 4가지 사항을 여야정협의체에 요구하기로 합의했으나, 민주당은 ‘끝장토론’을 제외한 나머지 3개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김선동 의원은 이에 대해 “민주당이 야당 협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이상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한다”고까지 했다.

28일에는 김진표 원내대표가 ‘ISD 끝장토론’ 개최에 합의한 것에 대해 민노당이 “강행처리 수순을 위한 요식행위”라며 “야5당 대표가 국민 앞에 공식 천명한 재재협상 요구 흐름에 명백히 혼선을 주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여야정 합의문을 가지고 각각 의원총회를 열어 수용 여부를 논의하고 있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오후 5시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이 요구해왔던 농어업 분야나 중소기업 지원대책에 대해서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면서도 “ISD 문제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의원들의 지적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11월 3~4일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해 재협상을 약속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받아올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최종 수정안’을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제안했다고 김 원내대표는 밝혔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이 안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행 처리를 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이 의원총회에서 수영 여부를 논의한 결과에 따라 비준동의안의 ‘운명’이 결정되는 셈이다.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외통위 기습상정에 대비해 현재 외통위 회의실에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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