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감시사회를 말한다
1부. 일상화된 감시·검열 시스템 
1. 여는 글, 뉴 ‘빅 브라더’ 시대

노동조합 파업을 다룬 라디오 프로그램이 징계를 받았다. 한쪽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해 공정성과 객관성 규정을 위반했다는 게 징계 사유였다. 심의와 검열의 경계는 모호하다. 일제고사를 거부해 해임됐다가 복직된 교사들을 출연시킨 프로그램도 같은 사유로 징계를 받았다. 이밖에도 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와 천안함 침몰 사고, KTX 승무원 해고 논란,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등 관련 프로그램도 징계를 받은 바 있다.

그런가 하면 노래 가사에 술이나 담배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해서 청소년 유해 매체로 판정 받은 경우도 있었다. 아이돌 가수의 선정적인 의상이 징계 사유로 오르기도 했다. 욕설이나 막말을 이유로 징계를 받은 방송 프로그램도 많다. 출연자의 욕설을 비프음 처리한 프로그램도 징계를 받았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PD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교체되거나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체포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침몰 사고 조사와 관련 의혹을 제기한 서신을 보낸 시민단체 활동가가 국가보안법 수사를 받은 일도 있었다. 정부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되거나 형사 처벌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해에는 민주노동당을 후원했다는 이유로 공무원과 교직원이 무더기 징계를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 공무원법은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하고 정치적 의사 표현을 비롯해 정치 활동을 포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황당무계한 일이 더 많다. 대통령 욕설을 연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트위터 계정이 접근 금지 되는 일도 있었다. 인터넷 게시물이 삭제되는 건 부지기수다. 음란물 뿐만 아니라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접속 차단 조치를 당하는 일도 흔하다. 최근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한국대학생총연합회 홈페이지가 통째로 폐쇄되기도 했다. 북한에서 운영하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계정 역시 국내에서는 접근이 차단돼 있다.

인터넷 실명제 역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익명으로 글을 쓸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는 정부 기관의 요청을 받으면 게시물 작성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인터넷 프로토콜 번호를 알려준다. 미네르바 박대성씨 사건은 누리꾼들에게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사전 선거운동을 제한한 선거법도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선거일 180일 전부터 13~22일 전까지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다.

한편, 국회에 계류돼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도 논란의 대상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가정보원을 비롯해 수사기관들이 국민들의 휴대전화와 전자우편, 인터넷 메신저 등을 상시 감청할 수 있도록 허용될 전망이다. 주민등록번호를 쓰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몇 안 된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행정안전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자주민증이 도입되면 운전면허와 건강보험 등을 연계해 광범위한 개인정보를 국가 권력이 수집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다.

국가정보원이 민간 기업을 불법 사찰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국무총리실이 민간인을 폭넓게 사찰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G20 세계정상회의 포스터에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대학강사도 있었다.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는 한 후보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하고도 당사자에게 통보를 하지 않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드러나지 않을 뿐 이런 사례는 숱하게 많다.

   
파놉티콘은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일종의 감옥 건축양식이다.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뜻하는 'opticon'을 합성한 단어로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말한다. 사진은 쿠바 프레시디오 모델로 감옥의 내부. ⓒ위키피디아.
 

언론감시 시민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하는 언론자유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올해 196개국 가운데 70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부분적 자유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평가를 받게 됐다. 프리덤하우스는 “최근 몇년간 온라인상에서 친북 또는 반정부 시각의 글이 삭제됐고, 정부가 대형 방송사의 경영에 개입해 왔다”면서 “검열과 함께 언론 매체의 뉴스와 정보 콘텐츠에 대한 정부 영향력의 개입이 확대된 데 따른 것”이라고 강등 사유를 밝힌 바 있다.

대한민국은 감시사회다. 일상적으로 검열이 이뤄지고 있으며 처벌이 뒤따른다.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주류 언론이 정치·자본 권력에 종속돼 있는 가운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감시 장치가 상시 작동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할 권리 등이 부정되는 경우도 흔하다. 정부의 여론 감시와 통제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경우도 많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낙하산 인사로 방송을 장악하고 방통심의위를 앞세워 노골적으로 보도 통제를 해 왔다. 종합편성채널을 대거 허용하면서 신문 시장의 자본 종속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유물인 국가보안법과 시대착오적인 선거법과 인터넷 실명제, 포괄적인 인터넷 심의 규제 등은 정치적 의사 표현을 가로막고 자유로운 여론 형성을 억압해 왔다. 감시사회, 파놉티콘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 필요할 때다.

특별 취재팀 이정환·최훈길 기자

 감시사회를 말한다, 시리즈 연재 순서.

1부. 일상화된 감시·검열 시스템.
1. 여는 글, 뉴 ‘빅 브라더’ 시대.
2. 방통심의위를 해부한다.
3. 방통심의위의 이중 잣대.
4. 무차별 접근 제한, 포털 임시조치.
5. 방송법 32조, 차별적 방송 심의.
6. [인터뷰] 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방통심의위 심의위원.
7. [인터뷰] 김보라미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변호사.

2부. 감시사회의 제도적 기반.
8. 일상적 검열, 정보통신망법과 인터넷 실명제.
9. 민간인 사찰의 법적 토대, 전기통신사업법과 통신비밀보호법.
10. 광범위한 개인 정보 수집, 정보통신망법과 전자주민증.
11. 표현의 자유 위협하는 명예훼손 고소·고발.
12. 판도라의 상자, 소셜 네트워크 규제.
13. [인터뷰]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
14. [인터뷰]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3부. 여론 통제와 언론 장악의 기제.
15. 냉전 이데올로기의 유물, 국가보안법.
16. 정치 참여 가로 막는 낡은 선거법.
17. 정치·자본 권력의 언론 장악 메커니즘.
18. 테러리즘과 해외 동향.
19. [인터뷰]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
20. [인터뷰]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
21. 결론.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