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오전 9시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개최된 최고위원-문방위원 연석회의 내용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한선교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제공돼 24일 문방위원회에서 의사진행 발언으로 이용됐다."

제1야당 대표실 비공개 회의내용을 누군가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국에 격랑이 일 것으로 보인다. KBS 수신료를 둘러싼 여야의 가파른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사건의 실체 여부에 따라 전혀 다른 정국의 흐름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발단은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이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의 비공개 회의 내용을 공개한 것에서 비롯됐다. 문제의 회의는 6월 23일 민주당 최고위원-문방위원 연석회의로서 당시 회의는 KBS 수신료를 둘러싼 야당의 대응 전략을 논의하는 중요한 회의였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을 발췌한 문서를 들어보이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당시 회의는 언론사들의 회의장 스케치만 허용됐을 뿐 회의 일체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민주당 최고위원과 문방위원, 3명의 필수요원(당직자)들만 참석했을 뿐이다. 민주당은 당시 회의내용에서 나온 참석자들의 발언 내용을 공개한 일이 없다.

그러나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은 24일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제가 이 말씀은 처음부터 드리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어떤 최고위원께서는 이것은 그 틀림없는 발언록 녹취록 입니다. 그냥 몇 줄만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고 말했다.

한선교 의원은 “시민사회단체 언론노조위원장 오늘부터 단식농성 농성 한다는데 꼭 KBS 문제는 아니고 미디어렙까지 포함해서 원래 하려던 단식인가 본데 이 문제와 연결 잘하고 잘해서 그 사람도 밖에서 오고 거기에 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을 읽었다.

한선교 의원이 전한 내용은 비공개 회의에서 당사자가 발언한 내용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전했다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특히 한선교 의원이 전한 내용을 보면 누군가의 발언을 정리해서 옮긴 정리된 멘트라기보다는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한선교 의원도 “이것은 틀림없는 발언록 녹취록”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간사인 김재윤 의원은 한선교 의원이 지닌 녹취록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재윤 의원은 한선교 의원이 자신을 만난 자리에서 “한선교 의원을 만났을 때 (민주당 비공개 회의에서의) 당신 발언도 다 알고 있다고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한선교 의원 스스로 ‘틀림없는 녹취록’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녹취록을 어떻게 입수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회의를 할 때 담당 당직자가 회의내용을 녹음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녹음한 내용을 녹취록 형태로 푼 일도 없고, 녹음기는 국회 회의장에서 영등포 당사로 이동해 보관했다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24일 오후 6시 20분경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기자회견 전경. 이치열 기자 truth710@
 

민주당 영등포 당사는 출입구와 건물 입구에 2중으로 경찰이 검문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 침입자가 녹음기를 탈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민주당 입장이다. 민주당은 민주당 쪽에서 회의내용을 녹취록 형태로 만든 바가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회의 이전에 녹음시설 등을 통해 도청을 했고, 그 결과가 한나라당 쪽에 전달됐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누가 어떤 경위로 한선교 의원 쪽에 녹취록을 전달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스스로 도청했는지, 아니라면 도청 내용을 녹취한 기록을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입수했는지 분명하게 밝히라”면서 “제1야당 대표실 도청 사건에 대한 법적, 정치적 책임을 끝까지 추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에 따라 KBS 수신료 논의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불법적으로 취득한 민주당 비공개 회의 내용을 공개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도청이 이뤄졌다면 누구의 소행인지가 관심의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당 대표실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국회의원과 당직자, 출입기자 등이다.

KBS 수신료 문제에 대한 야당의 비공개 전략회의를 누가 어떤 이유로 한나라당 쪽에 전달했는지, 도청이 이뤄졌다면 제1야당 대표실 한 곳인지 아닌지도 관심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누군가에 의해 제1야당 대표실 도청됐다는 이야기니까 수사기관에 의뢰함과 동시에 반드시 제1야당 대표실만 그랬을까, 원내대표실, 민주당 정책위의장실, 상임위원장실, 의원회관까지 도청시설이 설치돼 있는지 여부에 대해 철저히 점검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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