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은 최소한 누가 누구를 언제 어디서 만나 어떤 거래를 무엇을 위해 했는지 하는 6하 원칙에 입각해 의혹을 제기하고 그 진위에 따라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조선일보가 6월 3일자 지면에 <국회의 나팔불기식 진상 흐리기 쇼>라는 사설을 통해 지적한 부분은 경청할 대목이 있다. 부산저축은행 로비의혹 사태가 ‘게이트’로 비화되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사안의 본질을 물타기 하려는 ‘진상 흐리기 쇼’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다음은 한겨레 6월 3일자 <저축은행 사태 ‘본질’ 호도해선 안 돼>라는 사설의 일부이다.

“2008년 12월 울산지검의 수사로 부산저축은행 내부의 심각한 비리가 확인됐음에도 합당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듬해 3월에는 켐코가 이 은행 관련 특수목적법인이 소유한 문제투성이 토지를 사주는 석연찮은 일도 있었다. 결국 지난해 저축은행 경영건전성 실태조사로 문제의 실체를 대부분 파악했지만 미적거리다가 올 2월에야 부산저축은행을 영업정지 시키고 3월에 검찰에 비리 사실을 통보했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동아일보 6월 3일자 3면.
 
이와 관련 한겨레는 “검찰 수사는 저축은행 부실 책임과 함께 부실 은폐 및 퇴출 저지에 누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는지 등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저축은행 부실책임과, 부실 은폐 및 퇴출 저지에 누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는지를 밝혀내야 ‘진짜 몸통’에 다가설 수 있다.

지금 ‘진짜 몸통’은 두려움 속에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 몸통이 취할 수 있는 대처법은 ‘물타기’이다.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하고 이번 사건을 여야의 정쟁 구도로 몰아가면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다.

물론 물타기를 위해서는 언론의 도움이 필요하다. 언론이 ‘중립의 가면’을 쓰고 물타기에 나서줘야 국민들이 헷갈리게 마련이다. 조선일보의 사설은 여야 의원들의 ‘진상 흐리기 쇼’를 비판한 것이지만, 그런 ‘쇼’를 가능케 하는 것은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언론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 비판은 여야는 물론 언론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언론이 기계적 양비론에 숨어서 물타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일까. 동아일보는 6월 3일자 3면에 <“외유일정 미묘” “식사자리 수상”…여야 폭로전 점입가경>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여야 의원들의 폭로 내용을 ‘균형 있게’ 전했고,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과 이석현 민주당 의원의 사진과 함께 폭로의 핵심 내용을 ‘친절하게’ 전했다. 동아일보 기사 자체만 보면 여야 어느 쪽에 기울어지지 않는 보도로 보인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계적 균형은 때로는 가장 편파적인 언론의 보도태도일 수도 있다. 양비론의 뒤에 숨어 ‘물타기’에 나서는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만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야 주장을 비슷한 비중으로 나열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본질 물타기에 동참한 언론은 더 있다.

   
조선일보 6월 3일자 3면.
 
조선일보는 6월 3일자 4면에 <“일단 질러놓고 보자”…국회 폭로전 양상>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제목 그대로 일단 질러놓고 보는 국회 폭로전이라면 비판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선일보가 잘 지적했다. 실천만 하면 된다.

일단 질러놓고 보는 폭로와 나름 근거가 있는 폭로를 규별해 평가하고 이에 걸맞은 비중을 실어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조선일보가 지적한 것처럼 ‘본질 흐리기’에 나서는 주체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것은 국회의원도 그렇지만 언론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쓴소리가 동아일보를 겨냥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조선일보의 지적은 동아일보를 비롯해 ‘기계적 균형’의 함정에 빠지려는 언론에게 경고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대상에서는 조선일보 자신도 포함된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얼마나 많은 서민이 피눈물을 흘렸는지 언론이 되돌아본다면 특정 정당이나 정파의 정치 유불리를 고려해서 기계적 양비론에 숨거나 물타기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산저축은행 사태 본질을 흐리는 언론이 누구인지, 이번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국민은 물론 언론 내부에서도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의 눈길을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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