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한 중소기업 공장의 파업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18일 사측의 직장폐쇄에 맞서 공장을 점거하고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의 파업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것은 현대기아차, 한국GM 등 국내 굴지의 완성차업체들이 이 회사 생산 부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엔진을 만드는 핵심 부품인 피스톤링 공급의 70%를 유성기업이 도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이미 울산과 경기 소하리 공장의 일부 생산라인이 가동을 멈췄다는 소식이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공장점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 등 700여명이 21일 오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주요 언론도 일제히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나섰다. ‘자동차 생산 차질’, ‘전면중단 위기’, ‘올스톱 위기’ 등을 중심 제목으로 배치한 가운데, 노사 양측 또는 노동자 한 쪽에 책임을 묻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고용노동부를 필두로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 현대기아차, 유성기업 등 회사 측과 조선·중앙·동아·매경 같은 보수·경제지의 관점은 거의 같다. 노조(전국금속노조 유성기업아산지회)가 벌이고 있는 공장점거와 전면파업은 모두 ‘불법’이며 원인 제공 역시 노조 측이 했다는 것이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2009년 노사가 임단협 때 체결한 “2011년 1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의 합의서였다. 노측은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보전을 위한 이 합의의 즉각 시행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효력마저 상실한, 상호 노력한다는 신사협정에 불과하다”며 거부해왔다.

결국 이 합의서를 둘러싼 갈등은 11차례에 걸친 노사 교섭으로 이어졌고 지난 5월 13일 대전지방노동위원회는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렸다. 이에 노조는 17일부터 이틀 간 파업 찬반투표를 벌여 78.2%의 가결로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일각에서 ‘불법’이라 규정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조선일보는 23일자 신문에서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노조가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가결시키기 전에 집단조퇴 등 단체행동을 한 것은 불법이며, 대체인력으로 투입한 관리직 직원들의 작업을 방해한 것은 불법이라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조선일보 5월 23일자 3면
 
노조 측은 그러나 ‘불법’을 저지른 것은 사측이 먼저이며, 노조의 행동은 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금속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유성기업노조는 18일 회사 측의 ‘불법적인 직장폐쇄’ 전까지 공식적으로 파업을 선언한 바가 없고, 관리직 직원의 작업을 막은 것 역시 사측의 ‘공격적인 직장폐쇄’를 방어하기 위한 것일 뿐 불법이라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회사 측의 직장폐쇄는 노조의 집단조퇴가 있었던 18일 오후 전격 단행됐다. 노조가 이를 ‘불법적’, ‘공격적’이라 규정하는 것은 피해를 감당할 수 없는 경우나 긴급성이 명백할 경우에만 가능한 ‘방어적 직장폐쇄’와 거리가 멀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조 측은 “전면 총파업도 아닐 뿐더러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직장폐쇄를 한 것은 명백히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회사 측이 이 과정에서 이른바 ‘용역깡패’를 동원해 공장에 들어오려는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막았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용역깡패는 이 과정에서 회사 정문 앞 인도를 덮치고 뺑소니까지 쳤다. 모두 13명이 다쳤고, 이 중 3명은 경추 골절 등 중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18일 밤 유성기업의 직장폐쇄에 맞서 노동자들은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용역깡패에 의해 13명의 노동자가 다쳤다. 사진은 한 깡패의 뺑소니차에 치인 노동자가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모습. 금속노조 제공.
 
19일 낮 금속노조 충남지부 노동자들과 충남지역 사회단체들은 이에 아산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적 직장폐쇄를 자행하고 합법적인 파업현장에 용역깡패를 불러들여 살인폭력을 유발한 유성기업 사측을 처벌하라”고 경찰에 촉구했다.

아산경찰서 측은 일단 뺑소니 혐의로 한 용역 직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하지만 이 직원은 노조원 수십 명이 쇠파이프 등을 들고 쫓아와 차로 도망갔고 급하게 달아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직원은 “충돌 과정에서 용역업체 직원도 여러 명이 다쳤다”고 말했다.

재계와 보수·경제지는 또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이 7000만원에 달한다며 ‘배부른 파업’임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23일자 신문에서 “유성기업에 따르면 노조원의 평균 연봉은 퇴직금과 복리후생비를 합쳐 7000만 원 수준”이라고 전하면서, “불법 분규가 방치되면 복수노조 허용과 맞물려 노동계의 강경투쟁이 확산될 수 있다. 신속히 공권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경총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노조 측은 그러나 이 역시도 “터무니없다”고 반박한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다른 중소 제조공장보다 좀 높을 수는 있지만 7000만원은 전혀 근거없는 소리이며, 지금 연봉도 잔업·특근 등 엄청난 노동시간을 투여해야 가능하다”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 요구는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 좀 더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요구”라고 밝혔다.

노조는 또 “일부 언론은 완성차업체의 ‘손실’만 강조하고 있지만, 유성기업이 부품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결품사태 발생시 ‘고객사’들에게 시간당 18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하기로 돼 있다고 한다”며 “이런 황당한 불공정 계약이 하청업체와 그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경총과 한국자동차공업협회 등은 살인미수 행위에 대한 사과 반성은커녕 더 큰 인명 피해와 최악의 노사 불상사를 초래할 공권력 투입을 주장하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만약 이명박 정부가 무리하게 공권력을 투입하여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간다면, 야만적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양대 노총을 포함해 모든 민주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장점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 등 700여명이 21일 오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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