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 5일째’. 나서는 사람이 없어 세 차례의 노동조합 지부장·우리사주조합장 후보 등록 공고 끝에 당선된 한겨레 전종휘(39·사진) 겸임조합장은 지난 18일 서울 공덕동 노조사무실에서 만난 기자에게 제일 먼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사무실은 전 지부장이 ‘한겨레 지면에 대해 안팎의 평가를 들어보겠다’고 했던 공약을 실천하는 작업이 이미 시작돼 부산한 모습이었다.

- 출마자가 없어 세 차례나 후보자 모집 공고를 냈다. 어떻게 출마를 결심했나.
“올 하반기에 종편과 보도채널 5개가 출범한다. 이들의 콘텐츠는 조중동매의 지면으로 짐작컨대 보수적 시각을 드러낼 게 뻔하고, 경쟁에 몰려 선정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방송통신위원회는 자체영업 허용 등 이들에 대한 특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종편은 방송광고시장 뿐 아니라 신문 시장에 끼칠 영향도 무지막지할 것이다. 한국신문협회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신문업계 공동의 대응이 분명 필요한 시점인데, 한겨레 노조가 장기간 비어있어선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내부적으로는 국·실별, 세대간 갈등이 상당히 표출된 상황인데, 조합이 무게중심을 잡고 불통으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는 구실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 대표이사 당선자가 많은 공약을 내놨다. 경영 감시를 어떻게 할 계획인가.
“양상우 당선자가 근소한 표차로 2위 후보를 따돌리긴 했지만 당선 자체가 갖는 의미는 크다. 선배 그룹의 경영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표심이 반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당선자는 공약을 통해 조직을 안정화하고 인위적 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조직이든 지면이든 많은 변화가 요구될 것이다. 조합은 변화의 시기에 한겨레 경영과 지면에 있어 그동안 조합원이 느껴온 문제를 받아 안아 회사에 혁신을 촉구하고, 이 과정에서 사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감시할 것이다.”

- 새 조합의 역점 사업이 있다면.
“한겨레 지면이 현재 여러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이는 편집국 간부만의 문제도, 기자 개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겨레의 좌표는 ‘진보신문’인데 ‘진보’와 관련해 정형화·고착화한 모습이다. 이것이 ‘반MB’나 ‘강한 민족주의적 색채’로 드러나는데 우리가 진보적 매체로서 정치 지형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여기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틀에서 진보적 담론을 생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최근 1년 동안의 지면에 대한 총체적 진단을 준비하고 있다. 사내 설문과 외부 용역을 통해 1면을 중심으로 각 영역에 대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 작업이 완성되면 신임 편집국장에게 전달해 제작에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한겨레 전종휘 새 노조위원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 한겨레 조직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한겨레도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다보니 세대간, 직종간, 국·실별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것이 많은 구성원들을 피로하게 만드는 듯 하다. 조합이 가벼운 접근을 통해 자주 만나는 자리를 만들고 현안이 있을 때마다 공개적인 자리를 만들어 갈등과 반목의 원인을 물 위로 끌어내는 공론장의 역할을 하겠다.”

- 삼성그룹이 광고를 재개하면서 ‘얼굴없는 광고’ 때문에 안팎에서 말이 많았다.
“실제로 광고가 나가지 않으면서 돈은 들어오는 형태가 한국 언론에 만연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겨레가 ‘삼성 광고 없이 가겠다’고 선언한 이후 삼성이 다시 1대 광고주를 차지하는 과정이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문제제기는 원천적으로 옳다. 그러한 광고 집행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노조의 기본적 입장이다. 대표이사 당선자도 같은 입장을 밝힌 상태라 올해부터는 괴리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노조는 (얼굴없는 광고로 인해)한겨레의 정체성과 신뢰가 훼손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회사에 시정을 요구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치 물러섬 없이 투쟁할 각오가 돼 있다.”

- 진보신문 노조만의 어려움이 있다면.
“스스로 진보를 표방하다 보니 지면을 통해 요구한 것들을 한겨레 경영에서도 지켜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대표이사 당선자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조합과 함께 풀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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