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말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 파동이 충북, 경기, 강원, 충남 등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이 정도면 ‘재앙’ 수준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해당 농가는 물론 국민들도 공포를 느끼고 있지만 정부와 검역당국은 백신접종과 살처분 외에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상대적으로 쉽게 구제역을 통제했던 과거 사례와 달리 이번에는 구제역 확산방지에 실패하면서 방역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부는 왜 과거와 달리 이번 구제역 파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일까.

홍하일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위원장은 “구제역이 처음 발견됐을 때 초기에 잘 대처했어야 하는데 실패한 것이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키웠다”고 진단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특성상 급속하게 증식되고 전파되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지 못하게 통제하는 초기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역당국의 실책일까.

꼭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는 게 홍 위원장의 진단이다. 홍 위원장은 해당 지역의 검역 관계자들이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악조건에서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 홍하일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위원장  
 
홍 위원장에 따르면 구제역 병원균은 아주 단순한 바이러스에 해당한다. 바이러스가 단순한 형태라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쉽게 변형이 된다는 얘기다. 2010년에 발견된 구제역 바이러스는 7개 타입이나 된다. 발병하면 통제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발병 이전 세심한 예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바이러스가 쉽게 번식할 수 있는 숙주(소, 돼지 등 가축)가 크게 늘어났다는 것도 구제역 파동에 한 몫을 했다. 30나노미터에 불과한 바이러스가 소나 돼지 등에 침투하면 어마어마하게 증식해 전파되기 때문에 숙주 수의 증가는 구제역 확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홍 위원장은 사태를 이렇게까지 악화시킨 주 원인을 “국가축산정책과 검역시스템의 실패”에서 찾았다.

국가축산정책은 크게 병원균 대책, 숙주 대책, 감염경로 대책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정부가 공장제 축산을 장려하면서 숙주인 가축의 수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소농 형태를 장려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정책이 결정됐으면 가축의 수가 늘어난 것에 비례해 지방 검역 예산이나 인력도 증가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였다”며 “말로는 검역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검역 예산과 인력은 축소됐다”고 주장했다.

관리해야 할 곳은 늘어나는데 검역인력과 장비, 검역 시스템은 과거 수준이니 이번처럼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재앙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번 구제역 파동은 예고된 ‘인재’라는 얘기다.

홍 위원장은 “장비와 인원이 옛날 수준이라는 얘기는 그만큼 방역체계가 부실하다는 말”이라며 “얼마나 부실한가 하면 정부가 백신 대책을 내놨지만 접종할 인력이 모자라 수의과 학생들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 열악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는 이런 악조건에서 겨우 겨우 막아왔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해진 상황까지 온 것”이라며 “그동안 여러 차례 이 부분에 대해 지적했지만 정부가 안일하게 생각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이 이 같은 재앙을 불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이번 구제역 파동의 책임을 농가의 실수로 몰아가려는 것은 비열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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