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불법 민간사찰 증거인멸에 활용된 ‘대포폰’을 놓고 ‘차명폰’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도 호응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주장을 ‘변명’으로 인식하는 모습이다. 보수신문도 청와대 대포폰 파문의 심각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은 5일 논평에서 청와대의 ‘차명폰’ 주장에 힘을 실었다. 안형환 대변인은 “민주당은 대포폰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대포폰이 아니다. 차명폰이다. 대포폰은 말 그대로 남의 이름을 도용해서 쓰는 폰이다. 절도한 폰, 분실 폰, 또는 노숙자들의 이름을 몰래 빌려서 사용하는 그런 폰을 말한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폰은 청와대 최 모 행정관이 지인의 이름을 빌려서 사용했던 폰”이라고 주장했다.

안형환 대변인은 “다시 말해 정확히 차명폰이다. 언론인 여러분들께서는 이 사건을 보는 시각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명확히 해 주실 것을 제가 당부를 드리겠다. 도용해서 쓴 대포폰이라는 것은 사실관계가 틀리다. 차명폰이 사실관계가 맞다”고 말했다.

안형환 대변인은 “이 사건을 대포폰이라면 사건이 왜곡될 수가 있다. 사실관계가 왜곡될 수가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설명하실 때, 차명폰이라는 것을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리겠다”고 말했다.

안형환 대변인은 범죄 이미지가 강한 ‘대포폰’ 대신 ‘차명폰’이라는 용어를 통해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논란의 본질과 거리가 먼데다 호응도 역시 낮은 상황이다. 이름을 무엇이라고 칭하건 정상적이지 않은 휴대폰을 청와대가 제공했고, 이 휴대폰을 통해 불법 증거인멸 시도가 있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조배숙 민주당 최고위원은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포폰에 대해 청와대는 5일 동안 침묵하다가 ‘원활한 업무와 소통을 위해 차명폰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것은 전 국민이 불법으로 알고 있고, 범죄의 도구로 사용하는 대포폰이 불법인지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의 차명폰 주장에 대한 비판 의식은 야당만이 아니다. 보수신문 쪽에서도 검찰의 이번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기사와 사설 등에서 ‘대포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5일자 <'대포폰 진실'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가>라는 사설에서 "문제의 휴대전화가 적법한 '차명폰'이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한 '대포폰'이냐는 부수적 사안이다. 본질은 그것이 어떤 경위를 거쳐 범죄의 도구에 동원됐느냐"라고 설명했다.

   
  ▲ 중앙일보 11월5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비선 조직의 국정 농단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막 수사에 나선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이기 이틀 전 결정적 물증이 될 하드디스크의 파손 과정에 대포폰이 활용됐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도 11월 4일자 사설에서 "국회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이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에게 엉뚱한 사람의 이름으로 등록한 휴대전화인 '대포폰'을 만들어준 사실이 드러났다. 실제 이용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는 대포폰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어 범죄 목적에 많이 사용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11월 4일자 8면 기사 제목을 <민간인 사찰 대포폰 증거인멸 '진실게임'>이라고 뽑았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대포폰 파문으로 궁지에 몰리자 긴급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여당 지도부 쪽에서도 검찰 수사에 의문을 제기할 정도로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 동아일보 11월 4일자 8면.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11월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이 정상적인 수사 활동, 사정을 한다고 국민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는 이 수사 활동이 공정하고 정당하고 당당해야 한다. 근데 최근에 사찰사건의 수사양태를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BH지시사항이라는 메모가 이미 나왔고 대포폰이 지급됐다는 사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 사건을 두고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재수사를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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