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지 못하면 진보가 아니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경향신문과 민주노동당의 공방에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가세했고 시사평론가 진중권씨와 손호철 서강대 교수 등이 합류하면서 진보 진영 전반으로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 1일 사설에서 민주노동당의 논평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경향신문은 "북한은 무조건 감싸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냉전적 사고의 잔재"라면서 "한국의 진보세력이 그렇게 냉전시대에 갇혀 있는 한 냉전적 보수세력의 발호를 차단하는 것도 어려워진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이 4일 경향신문에 공문을 보내 "자신의 잣대로 상대방을 규정하고 그 잣대에 어긋난다고 하여 '종북'이니 '냉전 잔재'니 딱지를 붙였다"며 절독을 선언하고 나섰고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박경순 부소장도 논평에서 "북한의 내정을 존중하는 것이 남북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경향신문은 다시 반박했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8일 자사 인터넷 칼럼에서 "북한 사람은 우리와 달리, 봉건적 통치 체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북한 사람에 대한 대단한 모독"이라고 반박했다. 이 위원은 "전혀 다른 차원의 논점의 정책적 판단을 들고 나와 반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이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정희 대표는 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언론 안에도 스며들어 온 것이 안타깝다"면서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이고 이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면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 주장의 핵심은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형식적인 비판이 최선이 아니라는 정책적 판단에 따라 침묵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북한을 비판하지 않으면 진보가 아니라는 경향신문 등의 논리를 국가보안법 법정 논리와 비교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침묵을 해명했다.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이나 새세상연구소의 반박 논리가 거칠긴 했지만 "비판하지 않는다고 해서 종북주의라는 비난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나 "상대방에게 비판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 등에 좀 더 명확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더 공감을 얻는 분위기다.

논쟁은 민주노동당 지지자들과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 나온 진보신당 지지자들의 대리전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모적인 종북주의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진중권씨와 홍세화 기획위원 등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진보 인사들이 민주노동당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서면서 민주노동당이 일방적으로 비판받는 분위기다. 

진중권씨는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런 문제는 오히려 진보진영이 더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3대 세습은 사회주의 이상의 중대한 배신"이고 "진보진영이 비판을 해야 반공주의 수준을 넘어설 수 있으며 진보진영이 필요할 때 북한을 비판함으로써 보수우익이 휘두르는 무기를 허탈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진중권 트위터  
 
진씨는 이 대표가 비판하지 않을 자유를 거론하며 국가보안법 논리에 비교한 것과 관련, "누구도 한 개인에게 자신의 양심을 털어 놓으라 강요할 권리는 없고 모든 개인은 자신의 양심에 대해 침묵할 자유가 있으며 심지어 법정에서도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지만 공당에게 그런 자유는 없다"고 지적했다.

홍세화 기획위원도 11일 칼럼에서 "통일과업을 지상명제로 주장하고 그것을 진보의 자격인양 강조하는 세력이 북한의 세습체제가 앞으로 굳어질 때 통일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자기부정이 아닌지 묻고 싶다"고 질문을 던졌다. 홍 위원은 "북한의 세습체제는 우리의 통일여정에서 분명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 한겨레 10월 11일자 31면.  
 
손호철 서강대 교수도 논쟁에 합류했다. 손 교수는 11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이정희 대표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에서 "만일 북한에서 정말 '최소의 최소의 최소의 최소한의 인권과 민주주의'만이라도 지켜진다면 진보진영의 커밍아웃은 불필요했을지 모른다"면서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진보정당이나 진보적 사회단체들이 북한의 세습을 비판한다고 이 대표의 주장처럼 남북관계가 급격히 악화될 거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진보라면 한 체제를 그 체제의 다수 민중의 입장에서 봐야지, 지배계급이나 지배자의 입장에서 봐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손 교수는 "북한의 민중들이 언젠가 '우리들이 그토록 고통 받을 때 진보를 자청하는 당신들은 무엇을 했었느냐'고 물을 때 뭐라고 대답하겠느냐"면서 "'남북화해를 위해 북한 내부 문제는 침묵하는 것이 최선이라 침묵했다'고 이야기하면 그들이 뭐라고 하겠느냐"고 재차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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