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면이냐? 탈옥시키는 거지! 사법부를 폐지하라.”

지난달 24일 동아일보에 8·15 특사를 비판하는 5단 광고가 실렸다. “나는 오늘 대통령의 사면 발표를 읽으면서 마치 범죄조직이 옥에 갇힌 동료들을 탈옥시키는 대사건을 연상했다”는 등 광고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매섭게 질책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이 의견 광고는 재이손 산업주식회사 이영수(73·사진) 사장이 낸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뽑기도 한 보수 성향의 이 사장이 수천 만 원을 들여 정부를 비판하는 광고를 낸 사연은 무엇일까. 지난 30일 오후 연희동 사옥에서 만난 이 사장은 파란만장했던 신문 광고와의 인연을 1시간 반 동안 풀어놓았다.

   
  ▲ ⓒ최훈길 기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보면 신문사에 글을 썼는데, 신문사에선 ‘칼럼은 곤란하다’고 해서 의견 광고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피땀 흘려 받은 월급을 저축해 광고를 냈다. 우리도 세계에서 존경받는 나라와 국민이 되어달라는 뜻에서 하는 것이다. 다른 뜻은 없다.”

이 사장은 지난 1994년 <참다운 금융실명제는 이렇게 돼야 합니다>라는 의견 광고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13번이나 신문 광고를 냈다. 지난 해 세종시를 둘러싼 여야 공방에 대해선 <이게 국회냐? 개판이지!>라고 꼬집었고, 지난 1997년 한보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 발표를 보고선 <마피아의 총대로 만든 잣대>라고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또 그는 간첩조작 사건인 ‘수지 김’ 사건과 관련해선 <조폭, 국정원, 악랄한 칼잡이들>이라며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해산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살아있는 권력’에 신랄한 비판을 해온 이 사장이, 이번엔 이 대통령의 사면권 남발을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다.

그가 10여 년간 신문 광고를 내며 강조한 것은 ‘공정성’과 ‘부정부패 척결’이었다.

“내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바란 것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공정성이 보장 돼야 하는데, 그 전제는 부정부패가 뿌리 뽑히는 것이다. 세상 일이 공정하게 처리되지 못하는 배후엔 뇌물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원칙을 지키면 잘 사는 나라, 공정성이 확보되는 나라가 되면 서로가 믿을 수 있고 화목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부정부패가 만연한 “무법천지”라고 진단했다. 그는 “몇 천 억 탈세하고 형무소 가도, 빽으로 집행유예 받고 나오고, 간이 커져서 더 크게 받아먹으려 한다”며 “이런데 무슨 국민 화합이 되고, 경제 활성화가 되냐”고 반문했다.

최근 인사 청문회에 대한 일침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문화부 장관 후보는 위장전입을 그렇게 했는데도 어떻게 안 걸렸나”라며 “국무위원들이 사퇴했길 다행이지, 그냥 밀어 붙였으면 이명박 정권은 끝났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정부패와 관련해선 보수·진보 모두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보수와 진보가 어디 있나”며 “과거 방식으로 뇌물 받는 게 보수라면, 진보는 진보적으로 뇌물 받고 있지 않나”고 꾸짖었다.

특히 그는 최근 “권력층과 검은 돈이 묶여 있는 쇠사슬이 튼튼하다”고 밝혀, 사회 각계의 권력층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그는 사법부의 개혁부터 강조했다.

“사법부가 개혁돼야 한다. 권력형·금력형 범죄와 상류층 범죄에 대해 가벼운 형을 내리는 유전무죄를 바꿔야 한다. 변호사 숫자가 지금의 10배가 돼야 한다. 자기네 밥그릇 때문에 못하고 있지만, 변호사가 많아져 수임료도 내려가고 변호사 변호를 받게돼 누구도 권력에 짓밟히지 않아야 한다.”

그는 또 “모든 수표와 지출을 수표로 해, 돈의 출처를 투명하게 하자”고 ‘깜짝 제안’을 하기도 했다. 특히 이 사장은 언론의 역할에 대해 묻자, 기다렸다는 듯 “언론이야말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종이 정부”라며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언론이 부정부패의 꼬리를 물고 보도를 해봐라. 어느 사람이 이렇게 하겠나”며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 언론이 미리 조사를 했다면, 청문회가 필요 있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재벌 비리에 대해서도 “광고 안 들어올까 봐 싶어 부정부패를 알면서도 언론이 보도하지 않고 있다”며 “일반 사람들이 먹기 살기 바빠 못하더라도 언론은 탈세했는지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시간 여 동안 이 사장은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 비판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피해를 당한 적은 없었을까.

그는 “재정경제부가 은행에 연락해 대출 상환 압력을 넣고, 세무서는 이유 없이 3개월 동안 세무조사를 했다”며 “검찰, 국정원을 비판하는 광고를 내자 ‘죽을 줄 알아라’는 말까지 들어, 가족들 걱정이 컸다”고 전했다. 최근 동아일보 광고를 낸 뒤로는, 한 목사가 편지를 보내와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라’고 오히려 꾸짖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부패한 권력자·권력기관에 대한 비판 광고를 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내가 돈키호테처럼 보이거나 영웅심리에서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너무 맑으면 사업이 안 된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잘못이다. 오히려 맑은 물에서 싱싱하고 좋은 고기가 산다. 정말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를 만들어 보자.”

거짓말이 횡횡하고 진정한 보수가 없는 2010년 한국 사회. 이 곳에서 “정직할 수밖에 없다”며 보수의 신념을 지키는 한 중소기업 사장의 울림은 작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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