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LCD 모니터로 뭔가를 읽는다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눈이 피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중이 안 된다는 이유로 굳이 프린터로 출력해서 읽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 전자잉크 방식의 전자책 단말기가 확산되면서 2000년을 이어왔던 종이의 시대가 끝나는 것 아니냐 또는 종이의 부활을 불러오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전자잉크 시장의 현황과 전망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가 지난 3월 의욕적으로 출시한 전자책 단말기 비스킷이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흑백의 투박한 디스플레이에 속도도 느리고 만만치 않은 가격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아이패드와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평가가 판매 부진의 가장 큰 이유다. 워낙 실적이 저조해서 판매 대수를 밝히기를 꺼릴 정도다. 업계에서는 3만대가 조금 넘는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비스킷과 아이패드는 사실 전혀 다른 제품이다. 전자잉크 방식의 비스킷은 가독성이 좋고 오래 읽어도 눈이 부시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마이크로캡슐로 흑백을 표시하는 전자잉크는 전력 소모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한번 완전 충전을 하면 시간과 관계없이 최대 7만5천 페이지를 읽을 수 있다. 네트워크 기능이 내장돼 있는데 별도로 통신요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통신요금은 전액 인터파크가 부담한다.
그러나 흑백의 정지 화면만 가능하고 어두운 데서는 읽기 어렵고 페이지를 넘길 때 속도가 느리다는 게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전자책 단말기의 기능에만 충실하기 때문에 한눈팔지 않고 책만 읽을 수 있어서 좋다는 사용자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아이패드의 화려한 어플리케이션과 비교하면 투박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미국의 도서 전문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만든 킨들 역시 비스킷처럼 전자잉크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 지난 1월 LG디스플레이가 공개한 타블로이드 신문 크기의 19인치 플렉시블 전자잉크 패널. ⓒLG디스플레이 제공  
 
엄밀하게 용어 정리를 하자면 전자종이는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 컴퓨터와 비스킷 같은 전자책 단말기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향후 전자종이 시장은 LCD 패널을 채택한 책도 읽을 수 있는 태블릿 컴퓨터와 전자잉크 패널을 채택한 책만 읽을 수 있는 전자책 단말기로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아이패드의 폭발적인 인기 덕분에 태블릿 컴퓨터가 우세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단정 짓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리졸브마켓리서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이패드 구매 후 사지 않을 제품을 묻는 질문에 전자책 단말기를 꼽은 응답자가 49%나 됐다. 휴대용 게임기나 노트북 컴퓨터라고 답변한 응답자도 38%와 32%나 됐다. 와이파이 전용 아이패드의 가격이 499달러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30만 원 이상의 전자책 단말기는 경쟁력이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일관된 관측이다. 최근 가격을 낮춘 아마존 킨들DX2는 139달러부터 시작된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가 최근 전자책 단말기 사업을 포기하고 태블릿 컴퓨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파피루스라는 이름의 전자책 단말기를 42만9천원에 출시했는데 거의 팔리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전자책 단말기 사업을 포기한데는 전자잉크 패널을 전량 수입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국내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전자잉크 패널을 생산하고 있지만 경쟁회사 제품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르면 다음달 중순 출시될 걸로 예상되는 갤럭시탭은 아이패드의 절반 크기에 7인치 LCD 패널을 채택한 800×480 픽셀의 디스플레이를 갖췄고 지상파 DMB 기능을 지원한다. 그러나 아이패드의 풍부한 어플리케이션과 콘텐츠 생태계를 따라잡기 어려울 거라는 지적이 많다. KT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7인치 태블릿 PC 아이텐티티 탭을 지난달 30일 출시해 내년에는 태블릿 컴퓨터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MP3 플레이어의 선두주자였던 아이리버가 만든 전자책 단말기 커버스토리는 25만9천원부터 시작된다. 터치 스크린에 이메일 기능이 있다는 게 비스킷과 경쟁 포인트다. 북큐브네트웍스가 만든 B-815는 최소한의 기능만 갖췄지만 가격이 14만9천원으로 국내 최저가다. 그러나 아직은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게 이들 중소기업 제품의 가장 큰 한계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파는 애플이나 아마존과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올해 전자종이 시장은 세계적으로 1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일본 야노경제연구소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전자종이 시장 규모가 710억 엔으로 지난해 337억원보다 2배 이상 늘어난데 이어 내년에는 893억 엔, 2012년이면 1090억 엔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조사업체인 디스플레이서치는 좀 더 낙관적으로 본다. 전자종이 시장 규모가 지난해 4억3천만 달러에서 올해는 11억 달러, 2012년이면 2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분석업체 아이서플라이는 올해 세계 태블릿 컴퓨터 시장에서 아이패드의 출하량 기준 점유율이 74.1%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아이서플라이의 분석에 따르면 내년에도 아이패드는 70.4%의 점유율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후발업체들이 난립하겠지만 아이패드의 점유율에는 큰 변화가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데스크톱과 노트북 컴퓨터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태블릿 컴퓨터 시장을 애플이 송두리째 집어삼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전자잉크 방식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1월에는 타블로이드 신문 크기의 19인치 ‘플렉시블(휘어지는)’ 전자잉크 패널을 개발한 바 있다. 130g 무게에 두께가 0.7mm로 얇고 가벼우면서도 자유롭게 구부리거나 떨어뜨려도 쉽게 깨지지 않는다. 이 제품이 상용화되면 신문 지면을 통째로 불러다 읽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결국 가격이 관건이 되겠지만 본격적인 전자종이의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관전 포인트는 전자잉크 방식의 전자종이가 온갖 화려한 어플리케이션과 멀티미디어 기능을 갖춘 태블릿 컴퓨터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느냐다. 종이와 가깝고 얇고 가볍고 전력 소모가 적다는 게 전자잉크의 매력이지만 네트워크 기능을 추가하고 휴대성을 감안하면 결국 비스킷과 비슷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경우에든 아이패드와 경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로서는 승산이 높지 않다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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