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바라보는 대상은 누구일까. 땀 흘리며 묵묵히 세상을 일구는 시민들일까. 아니면 자신의 따뜻한 자리를 보장해줄 권력일까. 검찰이 정의의 잣대가 아닌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수사를 남용하면 어떻게 될까.

‘정치 검찰’ ‘떡검’이라는 불명예 별칭을 받아온 검찰이 이제는 ‘굴욕 검찰’이라는 얘기를 들을 만하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무죄는 검찰의 완패라는 게 언론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쯤 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심정일 텐데 검찰은 억울하다면서 반발한다고 한다. 부끄러움도 잊은 검찰을 향해 언론은 어떤 쓴소리를 전하고 있을까.

다음은 10일자 전국단위 아침신문 1면 기사다.

경향신문 <한명숙 전 총리 무죄>
국민일보 <지방선거 정국 '한풍'에 요동>
동아일보 <한 전 총리 1심 무죄>
서울신문 <한명숙 전 총리 1심 무죄>
세계일보 <"천안함 침몰은 북 정찰총국 소행">
조선일보 <한명숙 1심 무죄>
중앙일보 <'한명숙 무죄' 법원·검찰 정면충돌>
한겨레 <한명숙 전 총리 1심 무죄>
한국일보 <한명숙 전 총리 1심 무죄 선고>

   
  ▲ 한겨레 4월10일자 1면.  
 
한겨레는 1면 <한명숙 무죄...'무리한 수사' 확인>이라는 기사에서 “'5만달러'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66) 전 국무총리가 9일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겨레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주요 아침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전했다.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서 “검찰이 곧바로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혀 항소심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사실은 물론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강도 높게 비판해 '표적 수사'라는 야당 등의 비판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검찰은 노무현 정부의 상징적 인물인 한명숙 전 총리에게 범죄 혐의를 씌워 엮으려 했지만, 법원으로부터 굴욕적인 판결을 받아야 했다. 한명숙 전 총리가 5만 달러를 받았다는 주장은 혐의가 없다는 판단을 들어야 했고, 검찰 수사가 강압 부실 수사라는 질책을 들어야 했다.

검찰의 굴욕, 체면 땅에 떨어져

   
  ▲ 경향신문 4월10일자 4면.  
 
경향신문은 4면 <부실수사·억지 기소…예고된 무죄 '검찰의 굴욕'>이라는 기사에서 “검찰은 김준규 검찰총장 취임 후 벌인 최대의 특수수사에서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책임론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검찰 체면은 말이 아니다. 언론이 전하는 쓴소리는 정도를 걷지 않은 검찰의 행동에 경고의 메시지로 다가오고 있다. 국민일보는 <'한명숙 무죄' 검찰 체면 말이 아니다>라는 사설에서 “한 전 총리를 아무런 물증 없이 기소한 것은 '짜맞추기 수사' ‘표적수사’라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한명숙 무죄, 정치검찰 유죄>라는 사설에서 “이번 판결이 주는 메시지는 법 논리와 사법정의 대신 정치적 계산만 앞세운 억지 기소는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일보 "검찰이 한명숙 밀어준 셈"

   
  ▲ 조선일보 4월10일자 4면.  
 
한국일보는 <한 전 총리 검찰 수사는 결국 무리였다>는 사설에서 “유독 한 전 총리의 주변을 집중 수사하는 의도와 배경에 의문의 여지가 많다. 일부에서는 정치 검찰의 부활을 우려하는 시각도 엄존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도 검찰 행동에 쓴소리를 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한 전 총리는 민주당의 6.2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유력한 정치인이다. 검찰이 그런 그를 법정에 세우면 아무리 단순한 형사 사건이라도 정치 사건으로 변질되고, 재판 결과가 6.2 지방선거에 영향을 주리라는 건 불 보듯 한 일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다른 어떤 사건 때보다 빈틈없이 수사하고 신중하게 기소 여부를 결정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의 지적은 검찰 부실수사가 지방선거를 흔들었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조선일보는 4면 <민주 서울시장 후보 검찰이 한 밀어준 셈>이라는 기사에서 “민주당이나 한 전 총리는 이미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라며 “결국 한 전 총리를 최종 후보로 선택할 경우, 서울시장 선거는 지지층 결집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 비상, '한명숙 바람' 지방선거 요동

   
  ▲ 한국일보 4월10일자 4면.  
 
경향신문도 5면 <'정치보복·야당탄압' 부각…민심 출렁일 듯>이라는 기사에서 “한 전 총리의 본격적인 선거행보가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와 맞물리면 파괴력은 더욱 강해질 수 잇다. 그렇잖아도 친노의 대표 정치인 격이던 한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과과 '검찰 수사'와 '정치 보복'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게 된 셈”이라며 “한나라당으로서는 비상이 걸렸다”고 전망했다.

국민일보는 1면 <지방선거 정국 '한풍'에 요동>이라는 기사에서 “민주당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인 한 전 총리가 무죄로 판명됨에 따라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한 지방선거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일보도 4면 <한 '무죄 날개'…선거 판세 바꾸나>라는 기사에서 “여권 내부에서조차 '무죄 선고가 야권을 결집시키면 서울시장 선거뿐 아니라 전국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검찰의 새로운 수사 칼날?

한명숙 전 총리 무죄 선고는 여권에 대형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한명숙 전 총리는 10일 이희호 여사와 권양숙 여사를 차례로 만나기로 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와의 인연을 강조하는 정치 행보이다.

지방선거는 눈앞으로 다가왔다. 공식 후보자 등록은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여권에서는 ‘한명숙 바람’이 서울을 넘어 전국에 영향을 줄 가능성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물론 변수는 있다.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 무죄 판결이 있기 하루 전날 다른 의혹을 제기하며 다시 수사의 칼날을 세웠다. 법조계 안팎에서도 이례적인 검찰의 행동에 말이 많다. 무죄가 확실시 되자 검찰이 다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동아일보, 검찰 수사에 기대와 우려 교차

   
  ▲ 동아일보 4월10일자 사설.  
 
검찰의 이러한 행위에 힘을 실어주는 언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신문은 <한명숙 전 총리 1심 무죄판결에 담긴 뜻>이라는 사설에서 “검찰이 밝힌 대로 고발성 제보를 받고 내사해 온 것이든, 다른 의도가 있든 그냥 덮을 일은 아니다”라며 “이번 판결은 1심에 불과하고 또 다른 사안인 정치자금 수사 사건도 향배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9억 원 수사'는 5만 달러 부실수사와 달라야>라는 사설을 실었다. 검찰에 대한 격려와 경고가 교차한다. 일말의 기대감도 담겨 있다. 동아일보는 “의혹이 불거진 이상 진상을 규명하는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이번에도 5만 달러 수사처럼 부실수사 논란을 부른다면 스스로 명예를 실추시키고 불필요한 정치적 의혹만 증폭시키게 된다”면서 “한 전 총리의 5만 달러와 9억 원 수수 여부는 법리와 증거에 따라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중앙일보, 검찰 섣부른 재수사 우려

   
  ▲ 중앙일보 4월10일자 사설.  
 
그러나 검찰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보를 놓고 보수신문 쪽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5만 달러 무죄 선고' 하루 전 또 불법자금 수사라니>라는 사설에서 “(판결 선고 하루 전날 다른 수사를 시작한 것은) 검찰로선 아무리 사법적 당위성에 따른 정당한 수사래 해도 하필 이런 시점과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수사 착수는 적정성 논란과 야당의 반발을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한명숙 무죄…검찰 할 말 없게 됐다>라는 사설에서 “이번 무죄 판결을 만회하려고 먼지떨이식 수사나 보복 수사로 몰아가서는 결코 안 된다.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고려도 금물이다. 이번 수사를 놓고 일각에선 '검찰이 야당을 도와주려고 기획한 것'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고 비판했다.

검찰이 유력한 야당 서울시장 후보에 대해 다시 망신주기 흠집내기식 수사를 벌인다면 부글부글 끓고 있는 민심을 폭발하게 할 수도 있다. 이는 여권에 더욱 좋지 않은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검찰의 모습은 여권의 오만과 독선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한명숙 무죄…'정치 검찰' 개혁 더 미룰 수 없다>라는 사설에서 “누가 봐도 야당 인사들을 겨냥한 표적수사요, 강압수사다. 이런 진술조차 법정에서 번복돼 급기야 뇌물수수 사건이 아닌 '봉투 분실 사건'이란 조롱까지 들었으니 이런 망신이 없다”면서 “검찰이 부끄러운 줄조차 모르고 있으니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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