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정치적 프리즘이 깔린 사안이었고, 어떤 언론사가 어떤 걸 뽑아 쓰는지 다시 한 번 극명히 갈린 사건이었다."(9일 한 언론사 법조출입기자)

"어떤 언론이 '건강한' 언론인지는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보도만 봐도 안다."(다른 한 언론사 편집국장)

지난해 11월6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대한통운 비자금 횡령 혐의로 곽영욱 전 사장을 구속하면서 시작된 한명숙 전 총리 수뢰 의혹 수사가 9일 서울중앙지법의 무죄 선고로 일단락됐다. 검찰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지만 곽 전 사장 구속부터 다섯달, 한 전 총리 뇌물수수 의혹 제기부터 넉 달여동안의 언론보도는 역사에 남게 됐다.

한 전 총리의 수뢰 의혹이 실명으로 언론에 공개된 것은 조선일보가 지난해 12월4일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하면서부터다. 한국일보는 이에 앞선 11월13일 이 의혹을 보도한 바 있지만, 한 전 총리의 실명을 적시하지 않았다.

 

   
  ▲ 9일 오후 한명숙 총리의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지지자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한 전 총리가 같은 달 7일 이를 반박하고 나섰지만 검찰은 두 번의 출석 통보에 불응한 한 전 총리를 그달 18일 강제 구인했다. 일부 언론의 요구대로 불구속 기소에 이은 재판부 배당까지 신속하게 진행되던 검찰 수사의 반전은 한국일보가 지난 1월15일 "검찰이 곽씨를 상대로 '정치인에게 돈을 건넨 사실을 진술하지 않으면 불법 재산을 전액 환수하겠다'고 압박했다고 들었다"는 이른바 '빅딜 의혹'을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이를 즉각 부인했지만, 곽 전 사장은 이후 공판에서 "검사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며 뇌물 공여와 관련된 애초 진술을 번복했다. 지난 1월15일 한국일보 보도 직후에도 타사 법조 출입기자는 "단순히 대한통운 횡령 사건이었다면 처음부터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나섰겠느냐"며 "금액이 오고 간 증거도 없는 마당에 곽 전 사장의 진술은 검찰로선 매우 고마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조선일보 2009년 12월4일자 1면.  
 
그리고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형두 부장판사)는 1심 공판에서 한 전 총리의 무죄를 선고했다. 한 언론사 법조출입기자는 "검찰이 계속된 헛발질끝에 참패한 것"이라며 "단순히 무죄 선고뿐만 아니라 골프채 등으로 제시한 여러가지 정황증거도 재판부가 인정할 수 없다며 선을 그은 것이 검찰의 헛발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언론사의 법조출입기자는 "재판부의 판결문 내용을 살펴보면, 이번 사건은 검찰이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사건을 곽 전 사장을 거의 협박하다시피 해서 기소했다는 것"이라며 "검찰의 완패"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뇌물 사건은 주로 준 쪽의 진술에 의존하는데, 곽 전 사장의 진술에 워낙 신빙성이 없어 기자들도 대부분 무죄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며 "골프채 등 공소 외의 사실이 얼마나 한 전 총리를 흠집낼 수 있을 것인지가 또 다른 관심이었는데, 재판부가 아예 말이 안된다고 정리해 줬다"고 평가했다.  

검찰의 기소가 무리했다는 것은 보수성향 언론사의 일선기자들도 알고 있었다. 보수성향 언론사의 한 기자는 선고를 앞두고 "결국 받았나 안받았나는 밝혀질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사건이 미궁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건 우리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일선기자들과 소속 데스크 간 갈등도 종종 드러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선기자가 한 전 총리 쪽의 반박을 중심으로 기사를 보내면 해당 데스크가 '왜 자꾸 (한명숙 전 총리) 변호인단 쪽 얘기를 갖고 기사를 쓰느냐'고 질책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난 넉달여의 관련수사와 재판에 대해 또 다른 법조출입기자는 "1심 선고 후 '앞으로 부패사건 수사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보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며 "한 전 총리가 모 건설업자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언론에 확산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편 이 기자는 "한 전 총리는 검찰 수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공판에서도 변호인의 '감수' 끝에 검찰이 질문할 수 있었다"며 "이번 사건은 이런 의혹으로 기소된 다른 사건에서도 '아, 이렇게 대응할 수도 있구나'라는 한 예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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