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건 구속은 일제시대이래 이어져 온 후진적 수사 악습이다. 검찰이 원래 노리는 본건 혐의의 입증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입증이 쉬운 다른 별건의 혐의를 먼저 적용해 체포.구속으로 신병을 확보하고 나서 본건에 대해 수사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지난해 9월12일자 <검찰, '별건구속' 수사 악습 없앨 때 됐다>라는 사설 일부이다. 별건 수사는 일제시대 독립군을 때려잡던 악습 중 악습이라는 설명이다. 검찰이 선진화를 얘기하기 전에 일제시대 폐단부터 없애야 한다는 언론의 지적이 적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사설이 나온 지 2주 가량 지난 이후인 2009년 9월29일 김준규 검찰총장은 전국검사장 회의에서 검찰 수사 악습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문화일보는 9월29일자 1면 <검찰 "별건표적수사 안한다">라는 머리기사에서 "검찰이 그동안 표적수사 논란을 빚어왔던 '별건 수사'를 하지 않고 대검찰청 평검사 인력 20%를 전국 검찰청에 배치해 일선 수사인력을 확충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 지난해 9월29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검사장회의에서 김준규 검찰총장과 검찰 간부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도 9월30일자 5면 <검, '털어서 먼지 안 나오나'식 강압적 수사 관행 없앤다>라는 기사에서 "검찰의 변신 선언은 피해갈 수 없는 수순이었다. 검찰의 '먼지떨이식' 수사 관행 등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을 때 다른 혐의를 찾아내 압박하는 행위는 언론에서 후진적 폐습, 일제시대 악습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9월12일자 사설에서 "본건 수사가 원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자 수사에 착수한 체면을 생각해 다른 혐의를 찾아내 구속하는 경우도 별건 수사로 볼 수가 있다"고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이 별건 수사는 헌법 12조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영장주의 원칙과 적법 절차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다. 일본은 본건 수사를 위한 별건 체포와 구속은 위법하다는 판례가 확립돼 있다. 그런데도 우리 검찰엔 그 악습이 여전하다"고 우려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의 검찰 악습 개선 약속은 지켜졌을까.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며 건설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검찰이 중요한 선고공판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압박성 압수수색을 단행한 일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법조계 반응이다. 검찰이 법원에 의한 '무죄' 가능성이 커지자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채 무리수를 뒀다는 분석이다.

   
  ▲ 조선일보 2009년 9월12일자 사설.  
 
한겨레는 9일자 사설 제목을 <'정치검찰'의 막장 추태>라고 뽑았다. 검찰 위신이 땅에 떨어질만한 자극적인 사설 제목이 뽑힌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은 조선일보가 지닌해 9월 지적했던 일제시대 후진적 수사 악습을 재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행위는 어떤 문제가 있다는 얘기일까. 문화일보는 지난해 9월30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별건 수사는 실체적 진실에 앞서 절차의 정의를 앞세워야 할 검찰이 편의를 좇아 영장의 특정성까지 외면하면서 본건과 별건을 뒤섞어온 탈법 관행이다."

검찰이 정치적 후폭풍을 감내하며 '무리수'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야권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를 상대로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검찰의 막장추태라는 치욕스러운 비판을 들으면서 서울시장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건은 서울시장이다." 야당의 핵심 관계자는 지난 8일 지방선거 승부처를 이렇게 진단했다. 서울시장 선거는 한나라당이 반드시 잡아야 할 선거이다. 한나라당은 한명숙 전 총리를 무너뜨려야만 서울시장 선거 승리 가능성이 커진다.

서울이 야당 승리로 돌아가면 지방정부 정권교체라는 상징성을 띨 수밖에 없다. 이런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악몽이다. 검찰이 '막장추태'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무리수를 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정치검찰' 얘기를 듣고 있는지 의문도 자연스럽게 풀린다.

대법관을 지낸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9일 당5역 회의에서 지적한 내용은 검찰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

"선고를 앞두고 검찰이 별건 수사를 발표한 것은 법관의 심증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라고 의심 받기에 충분하다. 왜 검찰은 이렇게 졸렬한 짓을 하는가. 죄를 지었으면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무죄를 받을까봐 부랴사랴 별건을 조사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공정하지도 못하고 정의롭지도 못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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