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이버 북풍’ 논란으로 번진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의혹은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건 전개 흐름과 유사한 점이 많다. 디도스 공격은 한 사이트에 동시에 수백만 대의 컴퓨터를 접속시켜 비정상적으로 트래픽을 늘림으로써 해당 사이트를 마비시켜 버리는 해킹 방법이다.

지난해 7월7일 청와대 국회 한나라당 국방부 네이버 조선닷컴 등 주요 인터넷사이트가 디도스 공격을 받고 접속 장애가 발생하자 정치권과 언론은 범인 색출 작업에 들어갔다. 정치권 안팎에서 북한 개입 의혹이 일었다. 국가정보원에서 북한 개입설을 흘리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중앙일보 지난해 7월11일자 1면 <“북 정찰국 110호 연구소가 배후”>라는 기사에서 “국가정보원은 ‘이미 지난달 초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산하 110호 연구소에 남조선 괴뢰 통신망을 순식간에 파괴하라’는 공격 명령이 하달됐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10일 국회에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도 같은 날 1면에 <북 해커조직 IP 확인됐다>는 기사를 올렸다.

   
  ▲ 중앙일보 2009년 7월11일자 1면  
 
북한 개입설이 급속도로 확산됐지만, 야당과 경향신문, 한겨레 등 일부 언론은 신중론에 무게를 실었다. 한겨레 7월10일자 <앞뒤가 바뀐 국정원의 성급한 배후 추정>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한겨레는 7월11일자 사설에서도 “미군 당국자들이 북한 관여설에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과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해군 초계함 사건에 대해 국방부 쪽과 일부 보수신문이 북한 개입설을 띄우고, 미국 정부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유사한 흐름이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내용이 언론에 증폭되자 해명자료를 발표했다. 국정원은 7월11일 “배후가 북한이라는 여러 가지 증거를 가지고 정밀 추적과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며, 아직 북한의 소행임을 최종 확인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럼에도 일부 언론이 마치 확인된 것처럼 단정해서 보도한 데 대해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천안함-디도스’ 북풍 닮은꼴

디도스를 둘러싼 의혹은 널뛰기 흐름으로 이어졌다. 경향신문은 7월15일자 2면 <“사이버 공격 진원지는 영국”>이라는 기사에서 “지난 7일부터 4일 동안 이어진 사이버 공격 진원지가 영국인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북한 개입설에 제동을 걸었다. 경향신문은 7월28일자 12면 <‘디도스 대란’ 61개국 서버 확인 ‘북은 없네’>라는 기사에서도 “지난 7일부터 나흘 간 청와대 국가정보원 등 국가 주요기관을 상대로 지속된 분산서비스거부(DDoS)공격에는 악성코드 유포자의 추적이 어렵도록 해외 61개국의 서버가 대거 동원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수사 3주일이 지나도록 북한 관련 흔적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3개월가량 지난 이후 국정원이 다시 뉴스메이커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중앙일보 10월30일자 1면 <‘DDOS 테러’ 진원지는 북 체신청>이라는 기사에서 “지난 7월 청와대 국방부 홈페이지 등에 대한 사이버 테러에 동원된 IP(인터넷 주소)가 북한 체신청이 사용해온 IP라는 사실이 29일 확인됐다”면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국정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IP 추적 등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보고했다고 복수의 국회 정보위원들이 전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개입설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은 정리된 것일까.

‘북한 엮기’관행, 때로는 황당 결과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보도를 살펴봐도 사건의 실체는 혼란의 연속이다. 실제로 국정원은 북한개입과 관련해 뚜렷한 결론을 발표한 일이 없다. 중앙일보 12월8일자 6면 취재일기를 통해 “국정원은 7월 정부 전산망이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을 받자 북한 소행으로 단정했다. 하지만 구체적 조사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12월11일자 8면 기사는 디도스를 둘러싼 언론의 고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동아는 “5개월이 지난 지금도 누가, 왜 공격을 감행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설명했다.

   
  ▲ 경향신문 2009년 7월28일자 12면  
 
북한의 사이버 공격설이 나온 지 5개월이 됐고 실제로 보수신문이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이러한 흐름으로 몰아갔는데도 보수신문 스스로 “누가, 왜 공격을 감행했는지 확실치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

검찰 수사 결과는 더욱 허탈한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일보는 12월29일자 14면 <‘디도스’ 사이버 테러에 중·고생 20명 가담>이라는 기사에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위재천)는 인터넷을 통해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을 벌인 중·고생 20명을 적발하고 입건 유예했다고 28일 밝혔다”면서 “검찰에 따르면 적발된 학생들은 인터넷에서 200여대의 컴퓨터에 디도스 공격용 프로그램을 유포한 뒤, 1~20여 차례에 걸쳐 디도스 공격을 실행했다”고 설명했다. 7월7일 디도스 공격의 실체가 100% 밝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회 정보위원회 관계자들도 사건의 실체에 대해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디도스 공격의 주체가 밝혀졌느냐는 질문에 “답변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디도스 사태가 남긴 교훈은 북한부터 엮고 보는 ‘북풍 몰이’는 때로는 황당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시사점을 남기는 대목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