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이 재판의 독립성을 존중해주기는커녕 거꾸로 침해한 사실이 대법원 진상조사단에 의해 확인됐다. 3월16일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신영철 대법관에게 제기된 재판 개입 의혹의 상당 부분을 “법관의 독립 침해 행위”로 규정했다. 또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에 일부 자신의 생각을 더해 “작문”을 한 뒤, 이를 마치 대법원장의 말인 것처럼 판사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고 조사단은 밝혔다.

   
   
 
진상조사단이 밝힌 신영철 대법관의 행태는 충격적이다. 판사 개개인의 재판의 독립성을 보호해줘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거꾸로 다양한 방법으로 재판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고 이메일을 보내고 직접 소집까지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것 같다. 오죽하면 내부의 판사들조차 공개적으로 ‘사법부를 흔드는 두가지 손’이라는 제목으로 항의성 공개글을 게시판에 올렸겠는가.

전화 걸고 이메일 보내고 소집하고…

울산지법 민사2단독 송승용 판사는 지난 3월2일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린 '사법부를 흔드는 두 가지 손'이라는 글에서 촛불재판과 관련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해명, 그리고 일부 언론의 사법부 길들이기에 대해 엄정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가지 손중 하나인 내부의 손은 대법원이 당초 무시전략에서 진상밝히기로 급선회 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법관 스스로 후배 판사들의 재판에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한 대가로 대법관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게 됐다. 더구나 대법원장의 발언에 일부 자신의 발언을 가미해 ‘작문’까지 했다고 할 정도면 아주 작정하고 나섰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일선 판사들의 불만과 문제제기는 정당한 것이고 차제에 어떤 형태로든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문제는 또 하나의 손이다. 바로 본질을 흐리고 모든 사회현안을 좌우익 이념대립으로 몰고가는 신문사들이다.

송판사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흔드는 두 가지 요소로 내부의 의혹제기와 함께 일부 언론의 보도를 거론했다. 직접적으로는 동아일보의 ‘사법부를 흔드는 판사들의 가벼운 입’(2월28일자)제하의 칼럼을 겨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역시 ‘좌파’ 색칠을 더하며 ‘법복을 벗어라’고 호통쳤다. 판사의 얼굴사진과 실명을 공개하며 이념공세에 보조를 맞췄다.

추상적인 이념대립은 밑도끝도 없다. 조선, 동아일보는 사회의 모든 악을 ‘좌파’ ‘좌익’ ‘친북좌파’ 등으로 몰아붙인다. 여기에는 가려야 할 쟁점도 없고 오직 처단해야 할 ‘빨갱이 집단’ ‘친북좌익집단’만이 존재할 뿐이다. 한국을 과잉이념사회로 몰아가는데 매우 나쁜 역할을 하며 사회를 통합하기는커녕 분열을 조장한다.

조선 동아, 모든 사회악을 좌파로 몰아붙여

이번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사법부의 문제점, 쟁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혀냈다. 사법부를 흔드는 것은 ‘판사들의 가벼운 입’이 아니라 대법관의 부당한 재판개입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대법원 치부를 대법원 스스로 밝혀냈다는 점에서 진실의지와 용기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여기에 무슨 이념타령이 나올 수 있나. 사법부를 제대로 감시하지못한 언론의 역할을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법원장의 말을 작문수준으로 이용해서 일선 판사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것 역시 대법원 스스로 밝혀냈다. 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가. 일선판사들이 재판의 독립을 요구하고 부당한 외부개입중단을 호소하는데 신문이 거꾸로 일선 판사들을 향해 ‘입다물라’ ‘옷벗어라’하는 식은 언론의 횡포이자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한 행위가 된다.

   
   
 
모든 길은 ‘좌파’ ‘친북좌파’로 통하는 일부 신문사들의 지면제작행태는 안타깝다. 사법부 내부의 손은 척결되겠지만 또 다른 한 손은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않는다. 선출되지않은 권력, 언론은 본질을 흐리고 쟁점을 피하는 방법으로 권력집단과 비위를 맞추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금은 사법부의 독립을 촉구하고 대법관, 법원장 등 법원 내부의 부당한 재판개입에 대한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여기는 좌파도 우파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 민족의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 동아일보가 이념으로 민족을 분열시키고 사법부의 독립을 방해한다면 역사의 죄를 짓는 결과가 된다. 진정으로 ‘민족의 신문’은 어떤 신문이 돼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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