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기아차 사장  
 
"기소유예, 기소유예..."
검찰의 기소유예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그것도 국회의원과 재벌을 상대로 '죄는 맞지만 용서한다'는 법적 특혜를 검찰이 베풀고 있는 것이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 이용훈 대법원장의 '화이트 칼라에 대한 엄중 처벌' 주장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검찰은 정치적 판단을 통해 힘있는 죄인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있다. 검찰의 정치적 판단이 잦아지면 법치사회는 멀어지는 법.

검찰은 최근 박성범 한나라당 국회의원 부인 신은경씨가 5.31지방선거 과정에서 공천과 관련하여 1400만원 상당의 8종 명품세트를 받은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어 열흘도 지나지 않아 6월10일에는 현대차그룹 비자금 조성비리 혐의자 정의선 사장에 대해서도 기소유예했다.

도대체 검찰의 기소유예란 무엇이고 어떤 경우에 내려지는가. 검찰의 이같은 기소유예 처분에 문제는 없는가.

대검찰청 홈페이지는 기소유예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기소유예는 죄는 인정되지만 피의자의 연령이나 성행,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나 수단,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하여 기소를 하여 전과자를 만드는 것보다는 다시 한번 성실한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고 용서해 주는 것."

이런 기소유예가 어떤 경우에 내려지는가.

법률관련사이트에 의하면, 기소유예는 죄는 인정되지만 이번 한번만 용서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피의자가 초범이고 고소인이나 피해자와 합의가 되어야만 기소유예를 할 수가 있고, 전과가 있다거나 고소인이나 피해자와 합의가 안됐으면 기소유예를 해주지 않는 것이 검찰실무의 관례라고 한다.

뜻과 취지는 좋다. 전과자를 만드는 것보다 다시 한번 성실한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해 검찰선에서 너그럽게 용서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소유예는 법의 특혜, 법의 은전을 받는 것으로 범죄혐의자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인 셈이다. 죄의 유무죄 판단을 법원에서 해야하는 것이 정상인데 검찰 손에서 죄는 인정되지만 한번 용서해준다는 식으로 사건을 백지화하는 것. 이런 것이 검찰을 힘있는 권력기관으로 만든다.

문제는 검찰의 이런 기소유예 대상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죄질이 과연 검찰에서 기소유예 판단을 내릴만큼 경미한 사건에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검찰이 잇달아 기소유예 결정을 내린 최근 두 사건에 한정해서 살펴보자.

먼저 신은경씨의 공천비리와 관련한 고가의 사치품 수수행위. 국가에 대해 청렴의무가 생명인 현역 국회의원의 부인이 공천과 관련해 1000만원이 넘는 사치품을 받았다면 소위 선진국에서는 즉각 사법처리감이다. 더구나 돌려줬다고는 하지만 케이크 상자에 담긴 21만달러(약2억1000만원)수수 혐의도 자신이 속한 한나라당에서 납득할 수 없어 검찰에 수사의뢰하면서 내용이 알려진 것이다. 박의원이 속한 한나라당에서 막아주고 보호해줘야할텐데 오죽하면 검찰에 고발까지 했겠는가.

그런데 검찰은 이렇게 '죄는 되지만 용서한다'고 법원에 재판조차 받지않도록 배려를 해줬다. 만원짜리 밥한끼 얻어먹었다고 50배를 물리는 무시무시한 세상에 어쩌면 국회의원 부부에게는 이렇게도 친절하고 자상할까.

재벌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수백억원대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 등과 관련한 현대비자금 사건의 당사자 정의선 사장의 기소유예는 또 어떤가. 역시 '죄는 맞지만 우리가 용서해준다'고 검찰은 기소유예했다. 그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했지만 궁색하다.

"주책임자인 정몽구 회장을 구속한 상황에서 부자를 법정에 함께 세우는 것은 가혹하고 현대차의 경영공백 가중 우려를 고려해 정사장을 형사입건 후 기소유예 처분했다."

역시 자상하고 친절한 검찰의 설명이다. 부자를 법정에 세우는데 대해 가슴앓이하는 검찰, 현대차의 경영공백을 걱정하여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검찰. 검찰이 법적 판단에 충실하기 보다 정치적 판단을 내리게 되면 '정치검찰'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된다. 검찰의 기소유예는 재벌과 국회의원들에게는 참으로 편리하다. 그러나 이럴수록 한국의 법치사회는 멀어져갈 뿐이다. '원칙'을 유난히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의 사법동기생이 검찰총장으로 있지만 도대체 그 원칙이 무엇인지 국민은 납득하기 힘들다. 이미 국민의 납득여부는 관심밖인지 월드컵의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속에 '기소유예'만 소리칠 뿐이다.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가끔 기소유예가 내려진다. 여기에도 복잡한 사연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논지가 흐려질 수 있어 생략한다. 변호사 출신 최재천 국회의원(열린우리당)에 의하면, 검찰의 기소유예 권한은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최의원은 검찰의 권력남용에 대해 크게 우려를 표명했다.

"현재는 검찰권력을 감시,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 노 대통령이 검찰수사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으니 검찰의 독립성은 보장되지만 검찰권의 독주는 막을 길이 없다.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라도 이런 견제역할을 해줘야하지만 이것조차 여의치않은 것 같다."

이용훈 대법원장, 천정배 법무부 장관 등이 올상반기 잇달아 '화이트칼라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강조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먹혀들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검찰은 재벌과 정치권에 대해서는 여전히 눈치보기, 솜방망이처벌을 무슨 관행처럼 반복하고 있다. 대신 힘없는 국민에 대해서는 '무서운 눈'을 부라리며 '준법'을 소리치고 있다. 누가 검사들에게 현대자동차 경영공백을 우려하라고 했나. 누가 검사들에게 부자를 함께 법정에 세우는 것은 안된다고 속삭였나.

장기간 수사하는데만 지친 검사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검사는 오직 법의 논리로 수사에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닌가. 설혹 누가 국가경제를 생각하라고 요구해도 혹은 재벌 부자는 함께 법정에 세우면 안된다고 꼬드겨도 그 판단은 법원에 맡겨야 하는 것 아닌가. 검찰 스스로 기소유예권을 너무 편의적으로 자의적으로 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할 때다.

그러나 검찰이 스스로 편리하고 막강한 특권, 기소유예권한을 포기하거나 제한할 것 같지 않다. 검찰이나 고위공직자들을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든가 기소유예권한을 제한해야 할 것이다.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받는 미래의 한국 검찰을 위해서라도 견제, 감시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줘야 할 것이다.

바로잡습니다

"만원짜리 밥한끼 얻어먹었다고 50배를 물리는 무시무시한 검찰이 어쩌면 국회의원 부부에게는 이렇게도 친절하고 자상할까..."라는 표현은 댓글의 지적처럼 실제 벌금을 부과하는 곳은 선거관리위원회이기 때문에 검찰로 표현한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법집행의 형평성과 공정성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며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선관위가 하든 검찰이 하든 문제가 있다고 느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다만 표현상 선관위 부분을 검찰이 부과하는 것처럼 기술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이 있어 자발적으로 바로잡고자 합니다. / 필자(6월14일)


   
 
 
김창룡 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지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 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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