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업계는 새해에도 진보-보수진영으로 나뉘어 한바탕 전투를 치를 듯 싶다. 각 신문사들은 새해 휴일 관계로 하루 일찍 나온 신년호 사설에서 겉으로는 '상생' '통합' '포용'을 강조했지만 지향하는 바는 저마다 크게 달랐다.

겉모습은 '포용' '통합'이지만… 

각 조간신문의 신년사설을 한 문장씩으로 응축하면 다음과 같다.

경향 <'진실과 희망'으로 함께 가는 대한민국> - 상식으로 돌아가자
국민 <모두가 기쁘고 행복한 새해되길> - 대화로 상대를 포용하자
동아 <대한민국 자존하자> - 체제수호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
서울 <한국, 우리의 가슴은 따뜻합니다> - 포용과 배려·정직을 앞세우자
세계 <깨어 있는 국민이어야 한다> - 기득권 파괴 현실을 직시하라
조선 <2006년, 세계의 시간과 한국의 시간> - 과거 성과 파괴 묵과 않을 것
중앙 <편 가르기 그만하고 통합으로 나아가자> - 혹독한 '경험' 잊지 말자
한국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 공동체가 합의한 원칙을 중시하자
한겨레 <신뢰 틀 새로이 다져 희망을 일궈내자> - 사회 구성원이 나서 신뢰 회복

신문사들의 신년사설을 세세히 들여다보면 꽤 많은 닮은꼴을 찾아낼 수 있다. 먼저,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지금보다 성숙하기 위해서는 헤게모니 싸움으로 인해 무너진 '원칙=상식'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 경향신문 2006년 1월1일자 신년사설
구체적으로 경향신문은 "우리는 이미 '빨리빨리 증후군'의 치명상을 입었던 서너 차례의 선험을 잊을 수 없다…(그러한 증상의)자승자박이 과학계 차례가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원칙과 상식으로 돌아가면 풀리지 않을 문제는 없다. 고질적인 이데올로기의 예종(예속과 종속)에서도 벗어날 때다"라며 가는 해에 대한 반성과 새해의 소망을 함께 담았다.

   
▲ 한국일보 2006년 1월1일자 신년사설
한국일보도 "공동체가 합의한 원칙을 중시하고, 각자 본분에 충실한 정직한 사회를 먼저 이뤄야만 어두운 과거를 딛고 밝은 미래를 지향할 수 있다"고 충언했다.

한겨레는 두 신문의 사설보다 좀더 '포지티브'한 모습이다. 한겨레는 진보진영을 향해 "스스로의 무기력과 게으름을 반성하고 현실적 대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은 주목할 현상"이라는 말로, 또 보수진영에게는 "케케묵은 냉전수구 논리로는 사회통합을 이뤄낼 수 없다고 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바람직하다"며 '뼈있는 덕담'을 내놨다.

한겨레는 모든 신문 사설이 우려한 올해의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서로 합리적 대안을 놓고 겨루면 논쟁의 수준이 높아지고 그 결과물이 실효 있는 정책으로 사회에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가 가동될 수 있다"고 '희망'을 담았다.

조선·동아 "과거세대 깎아내리지 말라"…위기의식 반영?

이에 반해 보수진영의 대표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신년부터 꽤 전투적이다. 두 신문의 신년사설은 경향-한국의 사설만큼 닮아 있다.

   
▲ 동아일보 2006년 1월1일자 신년사설
동아일보는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기까지 산업화 세대가 흘린 피땀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미 지난 3년간의 정체 때문에도 대한민국은 더는 과거를 먹고 살 수 없는 나라가 됐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이에 덧붙여 "본보는 대한민국 체제를 흔드는 세력에 끝까지 맞설 것"이라며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지킴이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했다.

이같은 동아일보의 '결기'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곧 노무현 '참여정부'의 레임덕과 맞물려 대선의 전초기지가 될 것을 감안할 때 신년 초부터 보수진영, 나아가 기득권층의 단결을 호소하는 듯하다.

   
▲ 조선일보 2006년 1월1일자 신년사설
조선일보도 동아일보와 주장하는 바가 비슷하다. 조선일보는 "세계 역사 어디에도 과거를 바로 세워 현재와 미래를 일으켰던 나라는 없다. 세계의 중심 국가들은 현재와 미래를 개척함으로써 과거의 역사에도 영광의 옷을 입혔던 나라"라며 "결국 올 한 해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의 성패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키워낸 앞선 세대가 물려준 미래라는 '21세기의 표준시간'을 과거라는 '변방의 시간'으로 되돌리려는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느냐에 달린 셈"이라고 강변했다.

올해를 관통할 사회적 화두의 하나가 '과거사 정리'인 점을 감안하면 두 신문의 사설내용과 조선일보의 남미·남아공 '관용' 탐방기획 등은 모두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듯 싶다.

반면 중앙일보는 신년사설에서 "단축달성의 후유증"이라는 말로 과거사 문제만큼은 동아·조선일보와 일정한 선을 그었다. 중앙일보는 "새해를 맞아 모든 믿음이 무너져 내린 사회에 신뢰를 재구축하고, 갈가리 찢어진 사회에 통합을 가져다주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혔지만 스스로의 '멍에'인 'X파일' '황우석 파동'의 책임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했다.

한편 세계일보는 "깨어 있는 국민이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한미 동맹 강화 △한일관계 조율 △교육·노동에 있어 시장경제 규범 더 존중 등 보수진영이 실제 하고 싶었던 신년 인사말을 가장 직설적으로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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