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안익태 선생의 유족들이 애국가 저작권을 한국에 넘기겠다는 뜻을 지난 18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을 놓고 SBS가 메인뉴스를 통해 '유상양도'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면서 최근 불거졌던 '애국가 저작권 논란'이 안익태 선생 유족들에 대한 반감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정서에 반한다고 하더라도 안익태 선생 유족들이 애국가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이를 납득시켜야 할 언론이 오히려 저작권 문제를 '유상양도'라는 돈 문제로 접근해 혼란을 부추기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SBS는 20일 <8뉴스>에서 "유상으로 넘기겠다" 제목의 꼭지를 통해 "최근 불거진 애국가의 저작권 논란과 관련해 고 안익태 선생의 유족들이 애국가의 저작권을 한국에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무상 양도하겠다는 뜻은 아니어서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 SBS 8시뉴스 2월20일자
SBS는 이어 "현지 공관은 유족들이 '유상 양도'를 원한다고 밝혔다"며 스페인 대사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저작권을 넘기겠다는 것은 늘 하던 얘기다. 문제는 얼마나 원하느냐가 문제다. 무상으로 넘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고 전해 유족들의 저작권 행사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덧칠했다.

SBS는 또 "양도 조건에 대해 유족들이 구체안을 내놓지 않았지만 문화관광부는 1억원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애국가를 돈주고 산다는 데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적지 않아 정부의 결정이 주목된다"는 말로 뉴스를 마무리했다.

SBS의 이런 보도는 "유족들이 저작권에 대해 한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애국가의 저작권 일괄구입문제도 곧 해결될 것"으로 전망한 같은 날 KBS, MBC 보도와 대비된다.

돈 문제에 초점 맞춘 보도 후 네티즌 유족 비난 나서

SBS뉴스만 놓고 보면 안익태 선생의 유족들이 애국가의 저작권을 무상으로 한국정부에 양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또 의도와 상관없이 유족들이 저작권을 한국에 넘기겠다고 밝힌 것이 돈을 요구하기 위한 것처럼 비춰질 우려마저 있다. 이런 우려를 증명하듯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제공된 SBS 기사 아래에는 유족들을 힐난하는 댓글이 1000여개 넘게 달리고 있다.(21일 오후 4시40분 현재)

   
▲ 네이버 리플
그러나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저작권이 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현실에서 애국가에 대한 권리를 무상으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은 개인재산을 침해하는 문제라는 것이 대다수 언론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경향신문은 애국가 저작권료 문제가 처음 불거진 이후 지난 14일자 사설에서 "애국가는 고 안익태 선생이란 개인이 1930년대에 '한국 환상곡'의 일부로 만든 곡으로, 우리가 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국가로 사용해왔다. 따라서 저작권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저작권료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같은 주장과 정부에 애국가의 저작권 일괄구입을 요구했었다. 애국가 저작권 논란의 책임을 저작권을 가진 유족들이 아닌 그동안 이 문제를 방기한 정부에 화살을 돌린 것이다.

조선일보도 21일자 사설에서 유족들의 결정을 환영하며 "인터넷에서는 유족들더러 저작권을 포기하라는 요구부터 애국가를 새로 만들자는 주장까지 올랐다. 애국가 저작권료가 국민 정서에 맞지 않을 수는 있지만 세계적인 지적재산권 보호 추세에 비추어 적법하다는 점이 무시된 채였다"고 밝혔다.

문화부·대사관 "유상양도 결정된 것 아니다"

또 SBS가 안익태 선생의 유족들이 저작권의 유상양도를 우선하는 것처럼 보도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유족들이 유상양도를 원한다고 해도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는 정당한 것이지만, 유족들이 협상의 우선 조건으로 유상양도를 바란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SBS는 "(저작권을) 무상으로 넘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공관 관계자와 안익태 선생의 외손자 미구엘 익태 안 기옌(27)씨의 "저작권료를 어느 정도로 할지는 제가 말씀드릴 수 없다"고 발언을 토대로 유족들이 유상양도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22일자 동아일보 기자칼럼에서는 미구엘 익태 안 기옌씨가 20일 "한국에 저작권법이 존재하는데 유족들이 무상으로 저작권을 한국 정부에 양도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애국가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가? 한국 정부가 이에 대해 명백한 답을 준다면 무상 양도도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어 '유상양도' 논란을 무색하게 한다.

SBS 보도가 나온 다음 날 오전 노컷뉴스와 브레이크뉴스가 각각 <애국가 저작권 '유상 양도' 가능성 시사 논란 예상> <유상양도 파문, 애국가 돈주고 사가라?> 제목의 기사에서 '유상양도'에 초점을 맞춰 논란으로 처리했지만, 이들 기사에서도 유족들이 유상양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은 없다. 유상양도를 시사하는 표현이 모호한 발언이 있었다는 것이고 또 "아직 유족 측에서 돈을 요구한다거나 혹은 포기한다거나 하는 얘기가 없다. 아직까지는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이 없다"는 대사관 관계자의 답변도 들어있다.

외교통상부와 문화부 관계자 역시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지 공관을 통해 유족의 진의를 파악하고 있다.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이와 함께 문화부가 양도조건으로 1억원 안팎을 생각하고 있다는 SBS 보도에 대해서도 "언론에서 지난 몇 년 동안의 애국가 저작권료를 추산해 만든 액수일 뿐 문화부는 수치를 명기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담당기자 "무상 아닌 유상양도 가능성 지적한 것"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기사를 작성한 SBS 기자는 유상양도에 초점을 맞춘 것에 대해 "유족들이 밝힌 내용만 보고 당연히 무상양도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유족들은 사실 유상양도를 포함한 협상을 해보겠다는 것이었다"며 "유족들과 정부의 저작권 협상(유상양도)은 예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유족들의 협상태도에는 변화가 없으며 이들이 밝힌 성명이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