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역사는 한국 언론의 역사다.”
김정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현 채널A 보도본부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9월 한국여기자협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워크숍 ‘기자가 되는길’에서 이처럼 말했다. 이날 방청석의 예비 언론인들은 김 전 국장이 소개하는 동아일보의 역사를 주억거리며 지켜봤다.
그는 이날 강연 모두(冒頭)를 영화 ‘1987’로 열었다. 배우 이희준이 연기한 동아일보 고 윤상삼 기자는 1987년 1월 고 박종철을 응급조치한 내과전문의를 인터뷰해 물고문 사실을 세상에 알린 기자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보도는 동아일보의 ‘영광의 역사’다.
그러나 예비 언론인들이 알아야 할 동아일보 역사는 백지광고 사태 전후로 더 있다. 김 전 국장이 말한 백지광고 사태 직전 동아일보 기자들은 언론을 틀어막은 유신 체제를 상대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부르짖었다. 백지광고 사태는 이에 대한 독재의 반동이었다. 백지광고 사태가 동아일보의 빛나는 역사인 이유는 기자들의 저항 정신에 국민들이 연대로 보답했다는 데 있다. 김 전 국장이 강연에서 빠뜨린 건 ‘기자 정신’이었다.
동아일보는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1975년 3월 기자와 PD(동아방송) 250여명을 쫓아냈고 이 가운데 절반을 상회하는 130여명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 44년이 지난 오늘까지 ‘거리의 언론인’으로 남아있다.
1년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강연이 떠오른 건 동아투위의 18일자 입장문(‘동아일보 김재호 사장에게 보내는 공개장’) 때문이었다. “(해고 당시 사장이었던) 김상만은 물론이고 경영권을 물려받은 장남 김병관, 그리고 현재 사장인 장손 김재호는 1974년 10월24일 발표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기폭제로 기자·PD·아나운서 등이 과감하게 추진한 운동을, 그들이 해직된 뒤 경영진의 ‘업적’으로 날조하는 범죄적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내년 4월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동아일보 사주들은 오랜 세월 동아투위의 사죄 요구에 침묵하고 있다. 지난 2010년 4월 창간 90년 사설은 “민주화 과정에서 동아일보는 유신독재를 비판하다 정권의 광고 탄압에 의한 백지광고 사태라는 유례없는 고초를 겪었다. 그때 수많은 국민이 ‘동아일보여 힘내라!’며 광고를 대신 채워주셨다”고 밝혔다. 창간 100주년 사설에 백지·격려광고만 부각하는 편취의 역사 대신 해직 언론인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를 담는다면 그것 역시 ‘동아일보 역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