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이자 여성인권·평화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김 할머니는 숨을 거두기 5시간 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 달라.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을 나를 대신해 끝까지 지원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암 투병 중이던 김 할머니는 지난 11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고 김복동 할머니는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14살이 되던 해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돼 일본군의 침략 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가 됐고, 8년이 지난 22세에 돌아왔다. 66세이던 1992년 3월 처음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공개하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김 할머니는 전 생애에 걸쳐 세계인권대회와 유엔인권이사회 등에서 증언하며 여성인권·평화운동 캠페인을 했다. 정대협과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세우고, 세계 무력분쟁 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해 정의기억연대 여성인권상 상금을 기부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지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 고 김복동 할머니. 사진=민중의소리
▲ 고 김복동 할머니. 사진=민중의소리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한 이튿날 정계와 사회 각계 인사들이 김 할머니의 빈소를 찾았다.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역할을 맡았던 배우 나문희씨가 이날 오전 이곳을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이후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문재인 대통령 등이 차례로 조문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평화운동가 동료 길원옥 할머니(91)와 이용수 할머니(91)도 김 할머니의 빈소를 찾았다.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이 아직도 전쟁범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박근혜 정부가 강행한 ‘12‧28 한일합의’가 철회되지 않은 데 분노를 표했다. 

▲ 28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은 이용수 할머니. 사진=김예리 기자
▲ 28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은 이용수 할머니. 사진=김예리 기자

이용수 할머니는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8년 동안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그런데 대통령 비서실장과 일본이 비밀협상을 하고 우리는 듣지 못했다. 우리는 그것이 너무 억울해 세계를 돌아다녔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용수 할머니는 “왜 10억 엔을 받아 우릴 팔아먹느냐. 자유한국당에서 혹시라도 조문 깃발이 오면 던져버리고 싶다”며 “200살까지 살아 반드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겠다”고 말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두고 일본의 전쟁범죄와 법적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채 10억 엔의 ‘위로금’을 받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해 비판을 샀다. 

▲ 28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사진=김예리 기자
▲ 28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사진=김예리 기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장례식장을 찾았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고인을 애도한다면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반대한 12‧28합의를 두고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외교적으론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할머니들의 의견을 모으지 않은 건 당시에도 잘못됐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12‧28 합의 논란 당시 ‘외교적으론 잘한 협상’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 앞은 40여명의 기자들로 붐볐다. 세브란스병원 측은 빈소 출입구를 피해 벽쪽에 원형 포토라인을 쳤다. 포토라인이 지켜지지 않자 병원 측은 거듭 통로를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조문의 발길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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