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재판 시작과 함께 ‘정치 재판’ 프레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재판거래가 있었단 확증도 없는데 검찰이 기획된 수사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단 것이다. 정치적 싸움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삼권분립 훼손이란 본질을 가리는 시도다.

급기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무고한 희생자로 본 사설도 나왔다. 지난 22일 조선일보 사설이다. “애초 성립불가능한 혐의를 갖다 붙인 엉터리 수사로 누명 쓴 피해자가 얼마나 많겠냐”고 했다. 조선일보는 정치재판 프레임을 주도하는 대표 언론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년 간 기사 헤드라인에 ‘삼권분립’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란 말을 올린 적인 한 번도 없다.

▲ 경향신문·조선일보 '사법농단 보도' 헤드라인 비교. 디자인=이우림 기자
▲ 경향신문·조선일보 ‘사법농단 보도’ 헤드라인 비교. 그래픽=이우림 기자
▲ 12월22일 조선일보 사설
▲ 12월22일 조선일보 사설

“검사 50명이 5개월 이 잡듯 뒤졌지만 엉터리 수사”

지금은 ‘엉터리 수사’ 주장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경향신문이 “사법농단 재판은 역사와 시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정의 실현 과정으로 기록돼야 한다”(11월16일 사설)고 적을 때 조선일보는 지난 22일 “검사 50명이 5개월 이 잡듯 뒤져 만든 공소장이 38곳 틀렸다”는 사설을 썼다. 조선일보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부가 공판준비기일에 30여분간 공소장 정정·설명을 요구한 것을 두고 ‘엉터리 수사가 확인됐다’고 단언했다.

지나친 과장이다. 재판부가 지적한 30여 군데는 혐의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내용이었다. 절반 이상이 오기·비문 정정이나 내용 추가 요구였다. 검찰 오류도 있었지만 범죄사실 자체를 뒤집을 내용은 아니었다. 재판부의 공소장 확인은 공판준비기일에서 으레 이뤄지는 절차이기도 하다.

▲ 12월8일 조선일보 2면
▲ 12월8일 조선일보 2면

법원의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구속영장 기각을 두고 ‘사법 신뢰 내팽개친 방탄법원’ 비판이 거셀 때, 조선일보는 부실수사를 탓했다. ‘4차례 소환조사와 판사 80명 이상의 진술을 받았고 가장 수사를 잘한다는 특수부 검사 수십 명을 투입해도 범죄 혐의 입증조차 제대로 못한 것’이라 지적했다.(12월8일 2면)

‘대한민국 국민의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 삭제

9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중 사법농단 보도를 가장 많이 낸 언론사는 경향신문이다. 올해 경향신문은 470건을, 조선일보는 199건을 냈다. 둘 논조는 확연히 다르다. 사법농단 정황이 속속 드러난 상반기부터 두드러진다. 경향은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 비서 역할을 하며 타락”(1월24일)한데다 “국민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1월27일)며 강제수사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12월4일 조선일보 11면
▲ 12월4일 조선일보 11면

조선일보는 1월 ‘집안(법원) 싸움’ 지적만 했다. 법관 모임 중 개혁성향이 강한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들이 목소리 높이면서 법원 내부가 둘로 갈라졌다”는 것이다. 헌정질서 훼손을 지적한 보도는 없다. 농단 자체는 다루지 않고 농단을 둘러싼 법관들 반응만 때린 셈이다.

이마저 고위 법관 입장만 주로 보도됐다. 중견 법관인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들, 전국 법원장, 대법관들은 수사는 사법권 침해라거나 재판거래 의혹은 근거없다는 입장만 내놨다. 판사 평의회 격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신뢰 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를 촉구할 때였다. 문건으로 확인된 30여개 사건 중 일본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재판거래 혐의 하나만 봐도 증거와 정황은 확보됐다. 법원행정처와 청와대가 사전 교감한 문건이 있고 청와대가 원했던 제도 개정, 재판연기도 실제 이뤄졌다.

▲ 7월5일 조선일보 33면
▲ 7월5일 조선일보 33면
▲ 6월11일 조선일보 30면
▲ 6월11일 조선일보 30면

“자유민주국가에서 명확한 근거 없이 검찰이 최고 재판 기관을 수사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느냐.”(7월5일 33면) 조선일보는 한 대법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 최고 기관의 운명이 검찰의 칼끝에 놓였다”며 사법부 권위가 무너졌다고 했다.(6월19일 10면) 대법관 수사가 사상 초유인 이유는 사법농단 사태가 사상초유일 만큼 중차대하기 때문인데 원인 분석은 빠졌다.

이회창 전 대법관은 6월11일 조선일보에 “대법관회의가 사법파동을 끝내야 한다”고 특별기고했다. 그는 “대법관은 자신이 관여한 판결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했는지 안 했는지 누구보다 확실히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며 수사를 반대했다. 시민사회가 법원을 향해 ‘고양이에 생선가게 맡긴 격’이라고, 경향신문은 “시민 분노에 눈 감고 귀 막은 법원장들의 보신주의”라 질타할 때였다.

재판거래 혐의, 한낱 ‘거짓선동’ 취급

조선일보 입장은 6월11일 사설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조선은 재판거래 의혹을 거짓선동으로 본다. 조선은 “대법원장이 '재판 거래'라는 거짓 선동에 편승하다니” 제목을 붙이고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특조단이 재판 거래가 없었다고 하는데도 거래가 있었던 양 여론몰이를 하고 수사와 구속을 요구하는 것은 노골적인 거짓 선동”이라고 썼다.

▲ 6월1일 조선일보 사설
▲ 6월1일 조선일보 사설

결국 훼손되는 건 알 권리다. 법원행정처가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재항고를 둘러싸고 고용노동부를 지원한 정황, 가토 다쓰야 산케이 지국장의 명예훼손 무죄 선고문이 법원행정처 문건과 흡사한 의혹, 헌법재판소 평의내용 기밀 유출 등 헌법 위반 정황 십수개가 수년 간 이어졌음에도 조선일보 독자들은 ‘재판거래는 거짓선동으로, 법원 내 개혁은 정치세력 싸움으로, 검찰 수사는 편파수사’로 사법농단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조선은 고위 법관의 주장을 비판없이 받아쓰면서 사법부 감시도 져버렸다. 헌법 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정한다. 재판개입, 재판거래, 법관사찰 정황이 문건·증언으로 드러났다. 일반 국민에게 ‘재판거래는 없었다’는 고위 법관 입장은 주장일 뿐 설득력이 없다. 조선은 이 반대편에 선 고위법관 시선으로 사법농단을 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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