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대표 황상기)이 리영희상을 수상했다. 리영희재단은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일생을 바쳤던 언론인 리영희의 정신을 기려 해마다 리영희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인물이나 단체에 리영희상을 시상해왔다. 지난해에는 이용마 MBC기자가 수상했다. 리영희상 수상자로 언론인이 아닌 시민단체의 수상은 상징적이다. 그만큼 삼성의 산업재해 이슈에서 언론이 무기력했다는 뜻이다.
신인령 리영희상 심사위원장은 “반올림’이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거짓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자 한 리영희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단체”라며 수상이유를 밝혔다. 반올림은 지금껏 100여명의 첨단 제조업의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산업재해 신청을 도와 그 가운데 34명이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지난해엔 산업재해판단에 있어 피해 노동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내 피해자보호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2014년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주연배우 박철민씨는 극중 연기했던 황상기씨에 대해 “소주 한 잔 하면서 세 네 시간 이야기한 뒤 안심할 수 있었다. 너무나 꿋꿋하게 세상을 이겨낸 단단한 분이었다. 그럼에도 여느 동네 아저씨와 같았다. 넓은 인품을 느꼈다”고 말했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려했던 ‘유미 아버지’는 올해 삼성의 피해보상과 공식 사과를 받아내며 비로소 진실을 쟁취했으며, 승리했다. 다음은 황상기 반올림 대표의 수상소감 전문.
찾아온 삼성 직원에게 유미가 화학약품을 쓰다가 백혈병에 걸렸으니,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이 반도체 공장에서 화학약품을 쓰지도 않고 아예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미가 했던 일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그 직원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삼성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더 있었지만, 삼성은 알려주지 않고 없다고만 했습니다. 그 뒤에 피해자들이 계속 나올 때도 삼성은 늘 그 사람들이 전부라고만 했습니다.
치료비를 주겠다며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유미의 사인을 받아가고선, 그 약속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백혈병이 재발해서 유미가 병원에 있을 때 찾아와서는 백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을 주면서, 이거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치료비가 급해서 그 돈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유미가 병에 걸려서 힘들게 고생하고 있을 때 제가 유미한테 약속한 게 있습니다. 유미의 병은 유미 스스로 걸린 게 아니고, 반도체 공장 화학약품 때문에 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병에 걸린 원인을 꼭 밝히겠다고 했습니다. 2014년 소송에서 유미의 병이 직업병이라는 판결을 받아서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번 삼성과의 합의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유미 말고도 산재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졌고, 법도 좋게 바뀌었고, 삼성에서도 폭 넓게 보상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보상이 모두 마무리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유미한테 큰 소리로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너무 자랑한다고 얘기할지는 모르겠는데,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아빠가 이 문제 해결했다!’ 하고요.
저는 배운 게 별로 없는 촌사람입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의사선생님들, 변호사님, 노무사님, 교수님들 그리고 일마다 도와주신 분들, 천 일 넘게 농성장 같이 지켜주신 분들.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문제 해결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그저 오랜 세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왔었고, 다들 도와주신 덕분에 좋은 결과가 있었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이 ‘진실’을 소중히 생각했던 언론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삼성 직업병 문제에서도 ‘진실’을 소중히 여기는 언론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삼성을 위해서 기사를 쓰는 언론이 많았지만,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들 덕분에 삼성 직업병 문제를 많이 알릴 수 있었습니다. 유미가 병에 걸린 원인을 밝히려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인데, 이렇게 상을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