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도 후배들도 감독관도 모두 ‘여성’

혹시나 올해는 여학생만 찍는 수능 수험생 사진기사 관행이 바뀔까 기대했지만 역시나 그대로였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예비소집일 다음날인 15일과 수능 다음날인 16일 아침종합일간지만 보면 수능을 치른 학생도, 선배 수험생을 응원하는 학생도, 수능을 끝내고 나오는 딸을 안아주는 학부모도, 심지어 시험 감독관까지도 모두 여성이다.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유독 여학생 위주로 사진을 찍는 이유는 업계 용어로 ‘그림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능 수험생들뿐만 아니라 대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등에서도 사진기자들은 여성을 피사체로 두고 찍는 걸 더 선호한다.

지난해 미디어오늘이 2008년~2017년까지 수능 다음날 주요 일간지 1면 사진 50장을 분석한 결과, 수능 사진을 실은 일간지 모두 여성 수험생이 등장하는 사진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험생 성별도 치중돼 있었지만 수험생의 보호자 성별도 여성에 치중돼 있었다.

[관련기사 : 왜 수능 다음날 1면은 모두 여학생 사진일까]

15일과 16일 아침종합일간지에 실린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생 사진들.
15일과 16일 아침종합일간지에 실린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생 사진들.
한 사진기자는 “사진데스크가 100% 남성인 것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며 “사진 기자들 사이에서는 ‘여성, 아기, 반려동물 사진은 언제나 실패하지 않는다. 독자들도 더 선호한다’는 식의 선입견이 있어서 정형화된 사진이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사진기자들도 “촛불을 들고 있어도 아저씨가 아니라 예쁜 여자 분이나 아이들을 찍는 게 더 잘 먹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눈물이나 포옹 같은 것들이 독자의 감정을 건드린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사진을 찍는 것 같다”고 했다.

‘만학도 도전’ 다룬 국민일보, 중앙일보 “수능 기사 집단 오보의 기억”

이색적인 수능 수험생을 다룬 기사도 있었다. 국민일보는 16일 지면에 못다한 배움의 뜻을 펼치기 위해 수능시험에 도전한 만학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올해 수능을 치른 최고령자는 78세 유영자씨였다. 유씨는 수능을 보는 일 자체가 평생의 꿈이었다고 한다.

유씨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이 60이 넘으니 건강이 악화됐는데 한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며 “날고 싶고 뛰고 싶은 욕망이 컸다. 말없이 웃음 없이 살았는데 학교 다니고서 우울증도 나았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국민일보는 가세가 기울면서 남자 형제에게 배움의 기회를 양보하고 세 딸이 모두 직장인이 된 후에야 공부에 도전한 최영란(64)씨와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평생교육기관을 다닌 백중선(67)씨, 21년째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과 19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돌보며 수능을 준비한 김경숙(63)씨 등의 사연을 전했다.

20181116_중앙일보_[분수대] 수능의 기억_오피니언 31면.jpg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은 이날 ‘수능의 기억’이라는 칼럼에서 수능 난이도 예측과 관련한 언론의 관행적 보도가 바뀌는 사례를 소개했다.

김 위원은 “2003학년도 수능 다음날 각 언론은 ‘평균 10~15점 오를 듯’이라는 대동소이한 수능 난이도 기사를 내보냈다. 입시전문기관들의 분석과 전망을 인용한 관행적인 보도였다”며 “그러나 다음날 평가원의 표본 채점 결과 오히려 평균 2~3점 떨어진 것으로 나왔다. 결과적으로 집단 오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 수험생이 낙담해 자살했다. 자성 분위기 속에 교육부 기자단과 입시기관 평가실장들이 만나 ‘수능 예상 점수 보도 중지’를 합의했다. 수십 년간 지속돼 온 입시 보도 관행이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SKY 콤플렉스 던진 서울신문 사회부장의 다짐

서울신문 이창구 사회부장은 “59만명의 청춘들이 수능을 치른 날, 학벌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밝혔다. 이 부장은 기자가 된 후 동료 기자들과 출입처에서 겪었던 일들을 소개하며 “SKY(서울대·고대·연대)를 나오지 않은 나는 입사 이후 종종 이런 경험을 하면서 자격지심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이 부장은 “정부 기관이든 민간 기업이든 출입처 홍보팀의 기자단 명단표에는 어김없이 출신 대학이 적혀 있었다. 장관이나 CEO가 기자단과 오·만찬을 할 때에도 학벌이 적힌 명단표가 헤드테이블에 놓였다. 기사로 기자를 판단하기보다는 출신대학 파악이 우선인 듯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애착을 갖고 시민운동을 취재하던 2000년대 초반 박원순, 김기식, 이태호 등 당시 참여연대 핵심 멤버들이 전부 서울대 출신임을 알았을 때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도, 한국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도 온통 서울대 출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고도 했다.

20181116_서울신문_[데스크 시각] 수능일의 다짐, SKY 콤플렉스를 던져 버리겠다_오피니언 30면.jpg
2016년 방송기자연합회가 KBS·MBC·SBS·YTN 기자 1287명의 출신 학교를 전수조사한 결과 SKY 출신이 60.1%였고, 2003년 발간된 ‘학벌 리포트’에 따르면 서울·경향·한겨레·조선·중앙·동아일보의 부장급 이상 간부 263명 중 67.3%가 SKY 출신이었다. 이 부장은 “이 비율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SKY 출신들이 언론사 입사 시험에 강한 측면도 있겠지만, 언론사가 SKY 출신을 선호한 결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학벌로 인생이 결정되는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아이들을 지옥에서 구출할 방법이 없다. 학벌 타파에는 정부의 역할만큼 학부모 개인의 각성과 행동도 중요하다”며 “그래서 나는 앞으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대접받고 살려면 SKY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은 다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그는 “나는 후배들의 출신 대학을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서울신문이 다양한 출신들로 채워지는 언론사가 되도록 힘을 보탤 것이다. 기성 언론이 도태되는 이유 중 하나는 비슷한 대학, 비슷한 경험, 비슷한 사고를 하는 기자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