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고용 노동부의 보고서 공개 결정에 대해 삼성은 행정심판과 소송까지 제기하며 이를 막으려 합니다. 수많은 언론들은 고용노동부를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보고서가 무엇인지 그동안 이 보고서와 관련하여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 필자 주
지난 2월18일 고용노동부가 삼성 공장의 ‘작업환경 보고서’를 유족에게 공개하겠다고 발표하자, 50여개의 관련 기사가 나왔다. 기사 내용은 대체로 고용노동부 보도자료를 인용한 것이었고 기사 제목도 “고용부, 삼성전자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 공개 결정” 정도로 평이했다.
‘작업환경 보고서’가 영업비밀이다?
이 보고서의 정식 명칭은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다. 말 그대로 삼성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을 ‘측정’한 ‘결과’를 담고 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이 ‘영업비밀’이라는 것은 삼성전자의 아주 오래된 주장이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만으로 어떤 자료가 영업비밀로서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 보고서처럼 공공기관(고용노동부)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에 대해서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영업비밀의 보호 범위가 정해진다. 결국 지금의 논란은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가 정보공개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하는가’에 대한 고용노동부와 삼성전자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법률해석에 대한 분쟁이 생기면 최종적인 판단은 법원이 한다. 그런데 이미 법원은 삼성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보고서’는 정보공개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고용노동부의 보고서 공개 결정은 그 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많이 언론이 이 보고서를 두고 “삼성의 영업비밀”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의 주장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여러 건의 산재 소송과 정보공개 소송에서 여러 번 다투어졌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은 주장이다. 그럼에도 삼성은 여전히 같은 주장을 하고 있고, 안타깝게도 우리 언론은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 적고 있다.
이 보고서가 “삼성의 영업비밀” 나아가 “반도체 핵심 기술”, “핵심 레시피”, “삼성의 30년 기술 노하우”라고 말하는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이 보고서의 형식과 내용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제42조와 그 하위 법령들을 살펴보았는가. 고용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를 뒤져 보면 이 보고서에 기재되는 각 항목의 의미와 작성요령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 자료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들여다 본적이 있는가. 이도저도하기 싫었다면 올해 2월에 이 보고서의 공개를 명한 대전고등법원 판결문은 꼼꼼하게 읽어 보았는가.
직업병 피해자들에게는 ‘작업환경 보고서’가 제공되었다?
명백하게 거짓된 기사들도 많이 보인다. 물론 삼성의 거짓말을 받아 적은 것이겠으나,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면 결국 당신들의 거짓말이다.
요컨대 이런 내용들이다. 지금의 논란은 ‘직업병 피해자’가 아닌 ‘제3자’에 대한 보고서 공개가 문제인 것이고, 삼성은 직업병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이 보고서를 포함하여 산재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제공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삼성은 산재 피해 당사자에게는 산재를 입증할 충분한 자료를 제공할 예정이다. 공장 내 인력 운용 현황과 공장 공기에 대한 화학물질 분석,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전체는 내놓겠다는 것이다.”(한국경제)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작업장 내부의 대기질과 화학물질 종류 등 산업재해와 관련된 사안은 모두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쟁사로 넘어가면 피해가 발생하는 영업비밀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코노믹리뷰)
“삼성전자는 산업재해 당사자가 요청할 경우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실제 반도체 생산의 핵심 정보가 모두 담긴 정보를 이미 정부에 제출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조선비즈)
“삼성전자 관계자는 ‘산재 신청 당사자에게는 외부 유출 방지를 전제로 자료는 물론 현장까지 충분히 보여줄 용의가 있지만, 이해 관계자가 아닌 시민단체를 비롯한 3자에게 보여주는 건 핵심기술 유출 위험이 커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먼저 지금의 논란이 ‘제3자’에 대한 보고서 공개 때문에 발생했는가? 삼성이 제기한 행정심판과 소송이 ‘제3자’에 대한 보고서 공개를 막기 위한 것인가? 아니다. 현재 삼성전자가 행정심판과 소송을 통해 가로막고 있는 정보공개 결정은 총 6건이고, 그 중 5건은 ‘직업병 피해 당사자’와 그 법률대리인들이 제기한 것이다. 즉 지금 삼성이 보고서 공개를 막고 있는 주된 대상은 직업병 피해 당사자들이지 제3자가 아니다.
그리고 산재 신청 및 소송 절차에서는 이 보고서가 모두 공개되었다? 산재 피해자에게 산재 입증에 필요한 자료는 충분히 제공될 거다? 삼성은 과연 그 피해자들 앞에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 직업병 피해자들이 삼성 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와 ‘특별감독 보고서’를 처음 보게 된 때는 지난해 11월이고, ‘작업환경 보고서’를 처음 보게 된 때는 올해 2월이다. 모두 피해자들 스스로 오랜 시간에 걸쳐 정보공개 소송을 벌인 끝에 겨우 받아낸 자료다.
기사 내용처럼 산재입증에 필요한 자료가 잘 제공되어 왔다면 피해자들은 왜 정보공개 소송까지 제기야 했을까. 나는 지금까지 삼성 직업병 피해자 30여명의 산재 심사 및 소송에 직접 관여해왔다. 단언컨대, 삼성은 직업병 피해자들에게도 ‘작업환경보고서’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고, 산재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제공한 적도 없다.
삼성의 이러한 자료은폐 문제는 지난 11년간 직업병 피해가족들과 반올림이 수많은 기자회견과 토론회, 기고글, 인터뷰 등을 통해 거듭 밝혀왔던 문제다. 지금 삼성의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고 적고 있는 기자들은 그 반대편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귀기울여 본적 없는걸까.
삼성 사장의 발언은 받아적기 바쁘고, 피해자들 목소리에는 11년째 귀닫고
지난 4월6일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의 발언이 화제였다. 그는 어느 공개석상에서 “작업환경 보고서에 우리의 30년 노하우가 담겨있다”며 “절대 공개해선 안된다”고 말했고, 많은 언론이 이 발언을 크게 보도했다. 물론 이번에도 그 “30년 노하우”가 ‘작업환경 보고서’의 어느 대목에 어떻게 담겨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 반대편에 선 직업병 피해가족들의 목소리에 함께 귀 기울이는 언론도 없었다.
이제 피해가족들은 또 다른 싸움을 해야 한다. 최근 대전고등법원 판결로 일단락되는 줄 알았던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문제를 놓고, 삼성이 다시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삼성은 그 판결은 ‘온양공장’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니, 다른 사업장 보고서까지 보려면 다시 소송에서 이겨 보라고 한다. 피해가족들은 이 싸움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자신들의 직업병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서다.
언론은 현재 삼성이 ‘영업비밀’을 주장하는 정보가 “산재 입증과 관련 없는” 부분이라고 하지만, 이 또한 삼성이 제출한 행정심판 서면을 한번 확인해 보지도 않고 하는 소리일 것이다. 이를테면 삼성은 지금 이 보고서에서 ‘유해물질 측정 대상 공정’ 항목이 비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반도체 공장 안에서 유해물질이 노출될 수 있는 ‘공정’ 즉 ‘장소’를 의미한다. 이것이 산재 입증과 관련 없는 부분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결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직업병 피해가족들은 별 수 없이 다시 길고 고된 소송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지금 언론의 모습은 어떠한가. 싸움이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삼성 편에 줄지어 섰다.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피해가족들을 “산재와 무관한 제3자”라 하고, 산재입증에 필요한 정보를 “산재입증과는 무관한” “30년 반도체 노하우”라 한다. 심지어 피해가족들의 요구에 따라 이 보고서가 공개되면 “반도체 핵심기술이 줄줄 새어나가” 경쟁국인 “중국만 웃게 될 것”이라고 한다. 차라리 언론이 피해가족들의 정보공개 싸움에 무관심했을 때가 낫다. 삼성도 삼성이지만 당신들도 참 너무들 한다.
[관련기사]
1.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이야기 ➀-
삼성전자가 직업병 피해 유족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합니다
2.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이야기 ②-
삼성이 끝내 은폐하려는 이 보고서, 대체 무엇이길래
3.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이야기 ③-
삼성이 ‘영업비밀’이라 하자, 언론은 ‘30년 노하우’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