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비서 성폭행 파문으로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8일 예정된 입장 발표를 돌연 취소한 후에도 기자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카메라 기자들은 혹시라도 후속 발표가 있을까 봐 포토라인을 유지했다.
이날 오후 3시 충남 홍성군 충남도청 1층 로비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됐던 안 전 지사의 입장 발표 2시간여 전인 12시57분경. 한준섭 충남도청 공보관만이 로비에 설치된 연단 앞에 섰다. 안 전 지사 측 신형철 전 비서실장이 한 공보관에게 12시56분 보낸 문자를 대독하기 위해서였다.
안 전 지사는 애초 검찰에 출석하기 전에 국민과 충남도민 앞에서 머리 숙여 사죄하고자 했지만,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대신 검찰 수사를 성실히 받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는 도청 공보관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검찰에 출석해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이 국민 앞에 속죄하는 우선적 의무라고 판단해 기자회견을 취소하기로 했다”며 “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나를 소환해달라.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청 측에선 이날 많은 기자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돼 기자회견 장소를 인원수용 한계가 있는 브리핑룸 대신 1층 로비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취재·카메라 기자 등 100여명의 취재진이 대기했다. 예정대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면 안 전 지사는 A4 3장 분량의 기자회견문을 약 1~2분가량 발표한 후 취재진과 질의응답 없이 입장 발표를 마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7일 오후 JTBC ‘뉴스룸’에 지난 5일 김지은 정무비서가 폭로한 추가 피해자 관련 보도가 나온 후 안 전 지사의 생각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자회견을 취재하러 온 복수의 기자들도 안 전 지사의 입장 발표 취소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이날 새벽 4시에 서울에서 출발했다는 한 일간지 방송팀 기자도 “나도 도청에 아침 6시에 도착했다. 기자들이 이미 다 자리 잡고 아침부터 계속 자리를 바꿔가며 어떻게 찍을지 고민하고 있었다”면서 “안 전 지사가 직접 와서 사죄를 하던지 입장을 밝히길 바랐는데, 그냥 이렇게 문자 하나 딱 보내고 나타나지 않으니 너무 허탈하고 짜증도 난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안 전 지사는 오지 않았다. 1층 로비에 모인 취재진은 설치돼 있던 연단과 안전대, 방송 장비 등을 도청 직원들이 치우고 나서야 하나둘 철수하기 시작했다.
안 전 지사 측은 현재 도청 공보관과도 연락이 되지 않고 다시 잠적한 상황이다. 아침부터 일반인 출입을 통제했던 도청 출입문도 정상화 됐다. 안 전 지사는 이제 도청의 수장이 아니지만 그가 남기고, 벌이고 간 일들의 수습은 온전히 도청 공무원들의 몫이 됐다. 이제 검찰 포토라인에서야 그를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