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수 YTN 기자는 2008년 낙하산 사장 선임에 반대했다. 이명박 대통령 대선 후보의 방송 담당 특보를 지낸 구본홍 사장 선임에 맞선 그와 그의 동료들은 그해 10월 해고됐다. 2009년 3월 YTN 총파업을 앞두고는 구 사장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긴급 체포됐다. YTN 공정방송 투쟁 선두에 서있던 그가 복직하기까지는 무려 9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지난해 8월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가 복직했을 때 동료 언론인들은 “꽃길만 걷자”라는 팻말과 스티커로 환대했다.

“꽃길만 걷자”는 다짐은 1년이 채 못 되어 암초에 부딪혔다. 최남수 YTN 신임 사장 퇴진을 기치로 내건 전국언론노조 YTN지부는 내달 1일 파업에 돌입한다. 지난 8일부터 시작한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은 3주가 넘었다. 지난해 12월 언론노조가 중재자로 나선 노사 협상에서 이뤄진 노종면 보도국장 지명 합의는 파기됐다. 최 사장은 “긍정적으로 여지를 준 건 맞지만 인사권자로서 최종적 답을 준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난 24일에는 출근 저지 투쟁에 참가한 조합원을 상대로 업무방해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2008년 때와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최 사장은 28일 “2008년 공정방송 투쟁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소중한 가치와 명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현덕수 YTN 기자는 2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우리의 주인인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건 10년 동안 피폐해진 언론 환경을 정상화시키는 것”이라며 “하지만 최남수씨는 무너진 보도에 책임을 져야 할 소위 사내 언론 부역자들과 결탁해 그들의 논리에 이끌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이상엽 YTN 기자
▲ 현덕수 YTN 기자는 2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우리의 주인인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건 10년 동안 피폐해진 언론 환경을 정상화시키는 것”이라며 “하지만 최남수씨는 무너진 보도에 책임을 져야 할 소위 사내 언론 부역자들과 결탁해 그들의 논리에 이끌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이상엽 YTN 기자
현덕수 기자는 2008년 3월 당시 YTN 기자였던 최 사장을 찾아 퇴사를 만류했다. “회사가 흔들리지 않게 선배들이 중심을 잡아 달라”, “회사 나갈 생각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최 사장은 회사를 떠났고 그해 10월 대규모 해고 사태가 벌어졌다. YTN 사장 공모가 이뤄지기 전인 지난해 8월 현 기자는 SNS 메신저를 통해 최 사장에게 “오늘 지라시에 선배 이름이 나오네요. 계신 곳에서 최선을 다하시길 바랄게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답변은 없었다. 최 사장에 대해 할 말이 많았을 그를, 지난 29일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서 만났다.

- 내달 1일 파업을 앞두고 있다.

“파업을 하는 근본 이유는 ‘노동 조건의 개선’이다. 2012년 MBC 파업에 대해 법원은 ‘공정방송은 언론 노동자들의 중요한 근로 조건’이라고 판시했다. 최남수씨가 있는 한 공정방송은 요원하다. 지난 8일부터 진행된 출근 저지 투쟁은 공정방송에 대한 우리 조합원들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투쟁을 한 단계 높여 사장 퇴진을 이뤄내고 공정방송을 회복하는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 최남수 사장에 왜 반대하는가.

“이미 여러 논란이 확인됐다. 지난 10년 동안 그가 걸어왔던 길과 개인적 자질에 비춰봤을 때 공영 언론 사장으로서 부적격이다. 내부 구성원뿐 아니라 우리의 주인인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10년 동안 피폐해진 언론 환경을 정상화시키는 것. 하지만 최남수씨는 무너진 보도에 책임을 져야 할 소위 사내 언론 부역자들과 결탁해 그들의 논리에 이끌리고 있다. 공정 언론으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와 맞지 않는 인사다.”

- 2008년 3월 그를 만나 퇴사를 만류했었는데.

“그의 퇴사는 ‘YTN에선 기댈 것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회사를 떠났으면 그곳에서 잘하면 되지.(웃음) 9년 만에 YTN에 돌아와서 이런 일을 일으키는지…. 최남수씨가 사장 공모에 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염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장은 대표 사원이다. 회사가 어려울 때는 사원들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이해관계로 2번이나 회사를 떠났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위기 시 구성원에게 어떻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겠나. 어떻게 힘을 한 방향으로 모을 수 있겠나. 보도국부터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했던 동료들의 충정이나 진의를 존중하지만 최남수를 상수로 둔 합의는 무망하다고 봤다.”

▲ 현덕수 YTN 기자가 지난 29일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상엽 YTN 기자
▲ 현덕수 YTN 기자가 지난 29일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상엽 YTN 기자
- 최 사장은 자신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임명됐음을 강조한다. 노조의 퇴진 요구를 “비민주적 압박”이라고 말한다.

“언론노조가 중재에 나섰던 지난해 12월 노사 합의를 파기한 것은 최남수 사장이다. 합의한 대로 지키면 될 일을 일주일도 안 되어 파기했다. ‘최남수로 YTN 개혁은 어렵다’는 여론이 컸는데도 반발을 무릅쓰고 노조는 협상에 나섰다. 보도국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노사 합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파업까지 오게 된 것 아닌가. 또한 YTN 사장후보추천위원회나 이사회에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단순히 주식회사가 아니라 준공영언론 YTN 대표이사로서 공공의 이익을 수호할 수 있는 인물인지 검증이 필요했다. 결격 사유가 이후에 심대하게 드러났다. ‘민주적 절차’라고 그는 주장하지만 과정 자체가 공정하지 않았다.”

실제 최 사장이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본부장 시절인 2009년 MB의 재산 헌납 발표를 “이번 실천은 부인할 수 없이 위대한 부자의 아름다운 선행”이라고 높게 평가하거나 2010년 간호사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트위터 논란 등은 그가 YTN 사장에 내정·임명된 뒤 미디어오늘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사추위와 이사회의 검증이 부실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 사장은 지난 28일 “최근에 제 자질과 관련돼 언급된 이슈들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뒤돌아보고 있다”면서도 “사장직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흠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을 공정방송을 실현하고 회사가 미래를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제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 지난해 5월 조준희 전 YTN 사장이 자진 사퇴하면서 YTN 정상화가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김호성 상무 책임이 적지 않다고 본다. 노조는 지난해 김 상무에게 ‘사장에 뜻이 있다면 상무를 맡지 말고 후보로 나서라’, ‘상무를 맡는다면 관리 업무에만 충실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둘 중에 하나만 명확히 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는 그해 5월 상무이사가 되고 6월 중순 사장에 응모했다가 내부 반발로 스스로 접었다. 이 시기 그가 합리적으로 판단했다면, 그래서 노사가 같이 해법을 모색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상황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내에서는 김 상무에 대해 구본홍·배석규(전 YTN 사장) 시절의 간부와는 다르지 않느냐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그도 조준희 체제에서 2년 반 동안 회사 중요 업무를 했었던 인사이기 때문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 상무가 사장직에 욕심을 내고 지난 시기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행보를 해왔기 때문에 어려워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복직 기자들은 TF를 꾸리고 뉴스 혁신안에 주력했다. 어떤 내용이었나.

“지금 종편을 중심으로 ‘평론 뉴스’가 대세인양 자리 잡고 있다. 평론가들을 출연시켜 평론 뉴스를 하는 것이 제작비도 적게 드니 취재 현장에 대한 투자는 이뤄지지 않는다. YTN도 그런 평론식 보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편승했다. 이런 보도가 YTN 취재력과 브랜드 힘을 약화시켰다. 뉴스 혁신안을 만들며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했다. 우리 취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보도 조직을 개편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보도국장이 책임과 권한을 공유할 에디터 4명을 제시하는 등 보도 책임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취재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YTN 해직기자 3명은 지난해 8월28일 복직했다. 2008년 10월 해직된 지 무려 3249일 만이었다. MB정부의 낙하산 사장에 맞서 공정방송 투쟁을 하다가 해고됐던 조승호·현덕수·노종면 YTN 기자(왼쪽부터)들이 복직 후 첫 출근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YTN 해직기자 3명은 지난해 8월28일 복직했다. 2008년 10월 해직된 지 무려 3249일 만이었다. MB정부의 낙하산 사장에 맞서 공정방송 투쟁을 하다가 해고됐던 조승호·현덕수·노종면 YTN 기자(왼쪽부터)들이 복직 후 첫 출근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해 “꽃길만 걷자”는 동료들의 환대 속에 복직했을 땐 지금과 같은 상황을 기대하진 않았을 텐데.

“복직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또 언론이 암울했던 시기 권력에 부역했던 사내 적폐 인사들이 현업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 정상화가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지난 9~10년 동안 무너진 보도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은 스스로 한 발 물러나 YTN 개혁과 혁신 과정에 임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선배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억울해할 뿐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사장 선임 과정에서 그런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고 그들은 적폐의 길로 향했다. 아직도 보직과 사내 권력을 틀어쥐고 놓지 않으려는 행태가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해직 PD 출신 최승호 MBC 사장이 임명된 뒤 MBC는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누가 지난 시기에 책임이 있는지 리더 스스로 명확하게 판단하고 있어서다. 최남수씨는 이 부분에서도 결격 사유가 있다. 내부 적폐를 구분 못하는 인사로는 개혁이 어렵다.”

- 지난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MB 언론장악 주역으로 꼽히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을 마주했다. 최남수 YTN 사장 퇴진 피켓팅을 하러 찾은 현장이었는데 어떤 느낌이 들었나.

“의외였다. 촛불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었는데 언론장악 주범이 그런 자리에 와있다는 사실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우리를 빤히 쳐다보더라. 기이한 그림이었다.(웃음) 우리 앞에 있던 사람으로 인해 공영방송과 YTN이 무너진 것 아닌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분노가 일었다. ‘어떤 자리라고 여기에 있느냐’, ‘언론장악에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까닭이다.”

- 이효성 방통위원장에게도 ‘사장 퇴진’ 유인물을 전하며 YTN 사태를 알렸는데.

“이 정부는 촛불 혁명을 통해 탄생했다. 문재인 정부가 단순히 민주당 정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국민들은 현 정부가 촛불 민심과 정신을 구현하길 바라고 있다. 그 바람은 ‘적폐 청산’이라는 단어로 상징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9년의 언론장악은 언론 정상화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 때문에 방통위가 지금부터라도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방통위가 KBS 이사를 해임하고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를 새로 임명하면서 공영방송이 제자리를 찾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는 법에 정해진, 응당 해야 할 역할이었다. YTN 지분을 공기업이 갖고 있는 것이 한전KDN과 한국인삼공사, 한국마사회 이익에 복무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공익적 지배 구조여야 뉴스 전문 채널로서 공익에 복무할 수 있다는 필요에 따른 것 아닌가. 정부와 방통위가 지금과는 다르게 어떻게 YTN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지, 어떤 방식이 공공의 역할에 부합하는 것인지 진지한 고민을 해줬으면 한다.”

▲ 언론노조 YTN지부의 사장 출근 저지 투쟁 첫째날인 지난 8일 최남수 YTN 사장이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앞에서 노조 조합원들에 막혀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언론노조 YTN지부의 사장 출근 저지 투쟁 첫째날인 지난 8일 최남수 YTN 사장이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앞에서 노조 조합원들에 막혀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쉽지 않은 파업이 될 것 같은데.

“3월에 정기 주주총회가 있다. 그전까지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YTN 이사회도 현재 YTN 상황을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조 결속은 강고해진다. 이번 파업은 YTN 언론인들이 올바른 언론 노동자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노력 없이 해법을 바라는 것은 사치다. 연차가 낮은 후배들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후배들 입장에서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2008년 낙하산 반대 투쟁 때 우리도 그랬다. YTN에선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이었다. 이번 파업은 준공영언론 종사자로서 공정방송에 대한 가치관을 탄탄하게 만드는 작업이 될 것이다. 회사 설립 근거에 따라 민영이냐, 공영이냐를 구분하곤 하지만 회사 구성원이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느냐가 공영 여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최 사장은 지난 28일 “지금 노조가 벌이고 있는 일들은 공정방송 투쟁이 아니”라며 “노조 측이 사장이 안 됐기 때문에 사장이 갖고 있는 권한을 최대한 빼앗아 사장 권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절차적 정당성을 가지고 사장으로 취임한 제가 비민주적 압박과 집단의 힘에 의해 중도 하차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사퇴 요구 거부 의사를 밝힌 뒤 “물리력과 폭언에 무릎 꿇을 수 없다. 그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현 기자는 “YTN이 지금 혼란을 겪는 것은 공영언론으로서 감내해야 할 운명이자 사명”이라며 “과거 우리는 사주 이익에 복무하지 않아도 됐고 사주 논리에 휘둘리지 않아도 됐다”며 “그런 취재·보도의 자유를 누려왔기 때문에 어려워도 적폐 청산의 길을 받아들여야 한다. 시청자들과 시민들은 ‘YTN은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하실 수 있지만 공영언론의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선 우리의 주인인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여론 향배에 따라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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