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지주가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했다. 특히 하나금융지주는 고소를 하기 전 해당 언론사 기자와 접촉해 억대의 광고협찬비와 하나금융지주 자회사의 임직원 자리를 줄 수 있다며 비판적 기사를 쓰지 말 것을 회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디어오늘은 하나금융지주 인사와 기자가 나눈 대화 녹취록을 입수했다.

하나금융지주 및 KEB하나은행은 업계 내에서 공격적인 언론관리로 유명하다. 비판적인 기사를 쓴 매체와 접촉해 광고비‧협찬을 내세워 기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일이 많다는 증언과 정황이 있었지만 이처럼 직접적인 증언과 녹취록으로 드러난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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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위원장 허권)은 지난 10일 “KEB 하나은행의 광고비를 하나금융지주 혹은 김정태 회장에 대한 비판언론 통제에 사용하였고, 그 중에서도 대부분의 광고비가 김정태 회장 연임을 위한 비판기사 삭제 및 홍보기사 게재를 위해 지출되었다는 점을 확인했다”면서 금융감독원에 하나금융지주와 KEB 하나은행 등 자회사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노조는 A매체 사례를 들어 KEB하나은행이 억 단위의 금전 지급과 자리보전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언론을 통제했다고 주장했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A매체는 지난해 11월말 법무법인 김앤장을 내세운 하나금융지주로부터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이에 대해 A매체는 KEB하나은행 홍보부 전무이자 하나금융지주 그룹변화추진총괄 전무 겸직을 맡고 있는 안아무개씨가 기사를 쓴 기자와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혐의가 있었다면 왜 하나금융지주 소속 인사가 해당 기자를 만나 기사 삭제 등을 요구하며 회유를 했느냐며 혐의를 반박할 증거로 대화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한 것이다.

A매체는 하나금융지주의 중국 특혜투자,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와 김정태 회장 아들의 거래관계, 하나금융지주 투자사가 김정태 회장의 아들을 지원한 정황 등 김 회장과 관련한 비위 내용을 특별취재팀을 꾸려 집중 보도했다. 김정태 회장의 각종 비리가 해소되지 않은 이상 사실상 금융지주 회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지적하는 내용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12일 A매체는 “하나금융지주가 지난해 직원 복지를 이유로 사들인 물품이 사외이사가 주주로 있는 회사 제품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회사 소유주인 사외이사의 적격성 논란을 보도했다.

A매체는 “하나금융지주는 자회사 등을 통해 지난해 8월 물티슈를 구매했다. (물티슈 제조)유아용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 사외이사는 지난 2013년부터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를 맡아왔다”고 보도했다.

김정태 회장과 박 사외이사는 특수 관계다. 올해 김정태 회장의 연임이 걸려 있는데 회장 선출 기구인 회장추천위원에 박 사외이사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A매체는 또한 박 사외이사가 운영하는 유아용품업체의 제품을 판매해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 업체의 대표가 김정태 회장의 아들 김아무개씨라고 보도했다.

A매체는 법무법인 관계자 말을 인용해 하나금융지주와 박 사외이사가 대표로 있는 유아용품업체, 그리고 김정태 회장 아들 김모씨의 온라인 쇼핑몰이 특수 관계로 볼 수 있어 부당지원 행위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매체의 보도가 나간 이후 하나금융지주는 급하게 움직였다. 관련 내용이 확산되면 김정태 회장의 연임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A매체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와 KEB하나은행은 수차례 A매체의 관련 기사 삭제를 요청했지만 A매체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기사 삭제가 이뤄지지 않자 KEB하나은행 홍보부 안아무개 전무는 A매체 특별취재팀 책임자인 B부장을 만나 ‘특별한 내용’을 제안한다.

미디어오늘이 재판부에 제출된 녹취록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안아무개 전무는 지난해 11월 13일과 14일 이틀 연달아 B부장을 만나 비판적인 기사를 쓰지 말 것을 요구하며 돈으로 회유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안 아무개 전무는 A매체 사무실을 직접 찾아 B부장을 만나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 아무개 전무 “…서류 가지고 와서 김앤장하고 정리하자, 이렇게”

B부장 “정리는 나랑 어떻게 해야 돼요? 명확하게 다시 한번”

안 전무가 말하는 서류는 하나금융지주와 박 사외이사가 소유주로 돼 있는 유아용품업체와의 거래금액과 관련한 A매체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며 상법상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법률상 해석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안 전무 “예? 2개”

B부장 “2개?”

안 전무 “앞으로 안 쓰는 걸로”

B부장이 ‘2개’가 뜻하는 게 무엇인지를 묻자 안 전무는 “2억, 2억, 2억 줄게”라고 말한다. 김정태 회장과 관련한 기사를 삭제할 것과 앞으로 관련된 기사를 쓰지 마라는 조건으로 2억원의 액수를 제시한 것이다.

▲ 하나금융지주 김정태 회장의 인사말. 사진=하나금융그룹 홈페이지
▲ 하나금융지주 김정태 회장의 인사말. 사진=하나금융그룹 홈페이지

그리고 안 전무는 다음날인 14일에도 B부장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소재한 한 식당에서 만난다. 기사삭제 요구를 A매체가 계속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 전무는 B부장에게 자리보전을 약속한다.

안 전무 “내가 좋아하는 형이 행장인데, 그 형이 행장 되면”

B부장 “아니, 그러니까 그”

안 전무 “나는 행장 안되고 계열사 사장될 거야”

… 중략 …

안 전무 “내가 다 추진하고 할 테니까 하고. 내가 우리 계열사 감사든, 내가 책임질게, 니가 해.”

안 전무는 또한 자신이 A매체를 고발하는 것을 막았다며 은연 중에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고발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안 전무는 “내가 (고발을)막았어. 거짓말 아니라”라고 말하자 B부장은 “김앤장하고 한번 싸울게요. 우리”라며 끝까지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후 하나금융지주는 지난해 11월말 A매체 두 건의 기사가 사실이 아닌 의혹일 뿐이라면서 형사고발했다. 또한 특별취재팀 기자 4명과 B부장, 편집국장, 대표, 법인이 연대해 3억원의 배상 책임을 지라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나금융지주는 기사 두 건의 게재를 막아달라며 기사 삭제 가처분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A매체는 충분히 의혹을 제기할만한 수준의 내용이며 기사 삭제는 지나친 처분이라고 주장하고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덧붙여 안 전무로부터 회유 및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한 증거로 녹취록을 첨부했다.

B부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의혹조차 제기하지 말라는 건데 우리가 쓴 기사 문제로 박 사외이사는 지난해 12월에 자진사퇴까지 했다”며 “하나금융지주가 고발한 것은 의혹을 더 이상 제기하지 말고 아예 언론사 문을 닫으라고 한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B부장은 안 전무와 나눈 대화 내용과 관련해 “모멸감이 들었다. 우리 언론이 적폐라는 소리를 듣는데 이게 현실이고, 이렇게 언론을 핸들링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며 “기자는 글로 쓰고 반론을 받으면 된다. 반론을 실어주기로 수차례 말했는데 ‘마지막 카드’라는 말을 쓰며 협박했다”고 말했다.

B부장은 “왜 언론이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될 것 같아서 회사의 동의 하에 고소고발에 대해 적극 대응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에 조사요청서를 제출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도 해당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노조는 공격적인 언론보도 관리가 가능한 배경으로 KEB하나은행이 지출한 광고비에 주목하고 있다.

닐슨코리아가 매년 각 은행별 매체광고비를 추정한 자료(노출 매체별 표준단가 적용)에 따르면 지난 2016년 KEB하나은행이 지출한 광고비 총액은 85억 원이었고, 신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7억여 원이었다. 그런데 2017년 들어 11월까지 KEB하나은행 광고비 지출은 무려 198억원이 증가한 283억 원으로 집계됐다. 신문광고 지출비만 따로 떼놓고 보면 17억여 원에서 227억 원으로 210억 원이 증가했다.

노조는 A매체의 사례는 하나금융지주 및 KEB하나은행이 수백억 원의 광고비를 ‘돈줄’로 삼아 김정태 회장과 관련한 비판적인 기사를 막으려고 시도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조사요청서에서 “KEB하나은행의 광고비를 자신(김정태 회장)에게 비판적인 기사 삭제 및 홍보기사 게재에 사용하게 한 행위는 은행의 대주주가 대주주 개인의 이익을 취할 목적 하에 반대급부의 제공을 조건으로 다른 주주와 담합하여 그 은행의 경영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라며 △은행법 위반 가능성 △업무상 횡령죄 성립가능성 △배임증재죄 성립가능성 등을 제기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EB하나은행 지부 관계자는 “금감원에 제출한 광고비 조사요청을 계기로 하나금융지주와 KEB하나은행의 언론을 통한 이미지 관리와 비판적 언론에 대한 갑질이 드러난 것”이라며 “기자들을 만나면 하나은행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나올 때 ‘장이 섰다’라고 말할 정도다. 얼마를 주고 기사를 내렸다라는 말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진보언론을 제외하고 김정태 회장과 관련한 이슈를 제기하면 수 분 만에 기사가 내려간다”며 “의혹은 가지고 있었지만 증거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일련의 과정을 보면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것으로 본다. 이번 기회를 통해 금융기관이 돈을 무기로 언론을 상대로 회유하고 협박해 관리하는 금전적 유착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안아무개 전무는 A매체 B부장과 나눈 대화 녹취록 속 회유 발언에 대한 미디어오늘의 반론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안 전무는 ‘나중에 다시 연락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기사 수정 : 1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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