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2010년 3월2일).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2010년 6월3일). 국가정보원이 청와대에 보고했던 문건 제목이다. 국정원 개혁위원회 적폐청산TF가 밝혀낸 이명박·박근혜정부 국정원의 공영방송 장악은 구체적이고 치밀했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KBS·MBC 파업이 17일차를 맞은 가운데 국정원에 협력했던 방송사 내부 ‘부역자들’을 찾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김재철 이후 프로그램 폐지와 출연진 교체, 국장, 부장 인사 등 MBC내부의 모든 진행상황은 청와대와 국정원의 작품이었다. 김재철은 자신에 대한 임면권을 가진 방문진 이사들에게도 오만하게 굴었다. 당시 우리가 봐도 좀 지나치다 싶었는데 역시 국정원이 뒤에 있었기 때문”이라며 분노했다.

MBC 전직 노조간부는 “국정원 문건에 드러난 이아무개 간부 평가의 경우 구성원 다수가 몰랐던 부분까지 짚어낼 정도로 매우 정확해서 MBC 내부자의 세밀한 정보보고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1년 MBC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소위 ‘소셜테이너 출연금지법’과 관련해선 실무자가 당시 김동효 정책기획부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MBC내부에선 “김동효씨가 그런 법안을 직접 만들 능력이 없다”며 누군가에게 법안의 초안을 전달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김동효씨는 미디어오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국정원 문건에 명시된 ‘노영방송 잔재 청산’, ‘고강도 인적쇄신’, ‘편파프로 퇴출’이란 목표에 맞게 공영방송사 간부들은 수년간 부당노동행위를 반복해왔다. 부역자들은 여전히 내부에 있다. KBS의 한 중견 PD는 “이병순 사장 이후 국정원 직원이 KBS 내부를 돌아다니며 명함을 돌리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나도 봤다. 그 전에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MBC에서도 엄기영·김재철 사장 시절부터 국정원 직원이 회사에 출입하는 장면이 많이 목격됐다는 전언이다.

2014년 길환영 사장 퇴진투쟁에 나섰던 권오훈 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김인규 사장 시절 KBS 본관 6층 임원실에 국정원 직원들이 자주 출입했다고 들었다. 간부들 중에 자신이 좌파로 찍혔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국장급 간부 성향까지 청와대에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KBS 간부들은 국정원의 ‘분위기’에 민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정봉 전 KBS보도본부장은 수년 전 KBS사장 출마 당시 국정원 측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정봉 전 본부장은 “사장 되려고 할 때 국정원 사람들을 만나 2시간 동안 식사하며 분위기를 봤더니 날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그는 사장공모에서 탈락했다.

▲ MBC와 KBS사옥.
▲ MBC와 KBS사옥.

이제 여론의 관심은 언론인의 탈을 쓴 채 국정원에 부역했던 이들의 정체로 향하고 있다. 현재 KBS와 MBC는 노동조합과 직능단체를 중심으로 지난 프로그램 불방 및 제작진 퇴출 등 탄압과정을 복기하며 당시 주도자들을 중심으로 국정원 연계가능성을 추적하고 있다. MBC에선 김재철 전 사장과 더불어 MB정부 언론장악 주역이던 이동관 전 홍보수석과 서울대 정치학과 동기인 전영배 전 MBC보도본부장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2010년 3월 김재철 사장 취임당시 39일 파업을 이끌었던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전영배씨가 김재철 사장시절 기획조정실장과 보도본부장을 거치며 회사 실무를 총괄했던 핵심요직에 있었다. 당시 노조의 단체협약 협상파트너였는데 집요하게 국장책임제 폐지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 신인수 변호사는 “블랙리스트에 의한 출연자 배제는 근로조건 침해 사안이다. 국정원 직원들은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며 국정원과 공모했던 부역자들 또한 국정원법상 공동전범으로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블랙리스트 피해당사자들과 함께 민·형사 대응을 논의 중이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19일 “언론장악세력과 결탁해 밀정역할을 한 부역자들은 이제라도 범행을 자백하고 사죄하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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