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담당 기자에게 2012년 MBC 170일 파업은 언론사 파업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갈등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던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다.
1월30일 파업 시작 무렵은 추웠다. 붉은색 목도리를 입고 여의도 MBC 로비 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김태호 조합원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미 24주 연속 결방을 예상했었는지 표정은 굳어있었다. 로비 앞 흡연구역에서는 노사가 뒤섞여 연신 담배를 피웠다. 그래도 그 때는 여유가 있었다. 3층 복도에선 최일구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가 보직사퇴 후 파업에 동참할지를 놓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조합 집행부가 해고되고, 총선이 지나도 별 다른 해법이 나오지 않자 조합원들은 초조했다. 적금을 깼다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복귀 시점이 모두의 관심사였다. 그러던 중 MBC기자들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한 권재홍 보도본부장의 ‘허리우드 액션’ 사건이 벌어졌다. MBC기자들이 자사의 ‘권재홍 부상’ 보도가 불공정했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내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방송문화진흥회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노사 갈등이 길어지며 성명만 쌓여갔고 성명에 등장하는 단어는 점점 험악해졌다. 이런 가운데 KBS는 업무에 복귀했고 MBC는 기약 없는 파업을 지속했다. 조합원들은 연신 담배만 폈다. 올라가야 한다는 쪽과 끝까지 남아야 한다는 쪽 모두 맞는 주장이었다. 정답은 없었다. 나는 이 무렵 결혼을 했고 축가로 YB의 ‘흰수염 고래’를 택했다. 그 노래는 내게도 특별한 주술 같았다.
잔인했던 여름, 파업이 끝나던 그날을 기억한다. 7월18일 화요일이었다. 조합원들의 표정은 정말 좋지 않았다. 그들은 훗날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변한 MBC를 예견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부당징계를 받고, 보도국과 시사교양국에서 쫓겨났다. MBC파업을 응원했던 사람들 사이에선 “이제 MBC는 비평할 가치가 없다”, “MBC를 이제 포기하자”와 같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었다.
170일 파업의 내상이 커서, 앞으로 MBC는 절대 파업에 나설 수 없을 거라는 말을 MBC 안팎에서 수십 차례 들었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 MBC본부 노조는 그저 노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정도로 버거웠다. 조합을 탈퇴하고 보직을 받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파업 당시 사귀었던 MBC취재원들은 내게 살아내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들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자신들의 취재원에게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잊혀진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요즘 MBC 집회현장에선 5년 전 집회현장에서 마주쳤던 조합원들을 다시 보고 있다. 다들 눈빛이 살아있다. 이번 파업은 지난 5년간 각자가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되살리는 시간이다. 또 다시 ‘무한도전’ 결방을 각오한 김태호 PD는 8월24일 통화에서 “이번 파업은 단순히 누군가를 내보내는 싸움이 아니라 지금까지 제작현장을 비롯한 MBC의 체질을 바꾸고 MBC를 재건하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다.
이번 싸움으로 부디 많은 언론인들이 지난 시간의 슬픔들을 떨쳐내길 바란다. 그리고 며칠, 혹은 몇 달이 되어도 좋으니 이번에는 꼭, 다함께 웃으면서 손잡고 올라가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 5년 전의 우리에게 ‘반드시 정의는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