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가 지난 24일 총파업 찬반투표에 돌입한 가운데 본부노조 소속 라디오PD 40명이 28일 오전 5시부로 제작을 중단했다. 28일 오전부터 프로그램 진행자 없이 음악만 나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며 ‘별이 빛나는 밤에’와 ‘두시의 데이트’ 등 많은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제작·비제작부서를 막론하고 기자·아나운서·PD들이 제작중단에 동참하는 가운데 파업 시 방송에 미칠 파장이 큰 라디오 PD들도 일손을 놓았다.

28일 기자회견에 나선 라디오 PD들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우리는’ 코너 중간에 손정은 아나운서의 방송분이 있었는데 4월 중순 손 아나운서 목소리를 다 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에 대해 한재희 MBC 라디오 PD는 “짧게 3초에서 5초 정도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것마저 빼게 했다”고 폭로했다.

앞서 지난 22일 MBC 아나운서의 출연·업무 중단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손 아나운서는 “라디오국에서 절 DJ로 추천했을 때 위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제외가 됐다”며 “라디오국에서는 아나운서국에서 거절했다고 말했고 아나운서국에서 제가 들은 답변은 그런 이야기(추천)를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22일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정은 MBC 아나운서는 한 고위 간부가 임원회의에서 '손정은이 인사를 하지 않았다'며 방송에서 하차시켰다고 폭로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22일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정은 MBC 아나운서는 한 고위 간부가 임원회의에서 '손정은이 인사를 하지 않았다'며 방송에서 하차시켰다고 폭로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2012년 파업이 끝난 후 오상진, 박혜진, 문지애 등 간판급 아나운서의 MBC 라디오 출연은 사실상 제외됐다. 최근 퇴사한 김소영 아나운서의 경우 지난해 9월 가을 개편 당시 ‘두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에서 해외토픽을 소재로 한 오락코너 진행자로 섭외됐으나 임원회의 과정을 거치며 배제됐다.

한 PD는 “시사프로그램에 (압박이) 집중됐는데, 특히 부당 검열이 극심했던 아이템은 세월호와 위안부”라고 말했다. 라디오 PD들에 따르면 세월호 1주기인 2015년 4월16일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이 사람이 사는 세상’ 제작진은 세월호 참사 당시 20여명을 구조한 어민을 만나 취재했지만 노혁진 당시 라디오국장은 사전 시사를 요구해 3차례에 걸쳐 내용을 수정했다.

라디오 PD들에 따르면 1차로 ‘정부’라는 단어를 삭제했고, 2차로 ‘해경’과 ‘헬기’를 삭제했다. 또한 세월호에서 기름이 유출돼 피해를 입은 어민의 사연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수정 지시가 있기도 했다. MBC에서 만연한 ‘세월호 혐오’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세월호 기록단 활동을 한 박민규 다큐멘터리 감독 인터뷰와 관련해 노혁진 당시 라디오국장이 ‘그건 이렇습니다 이재용입니다’ 프로그램 담당PD에 “이 사람 내가 아는데 위험한 사람”이라며 인터뷰 취소를 지시했다고 라디오 PD들은 전했다.

또한 세월호 1주기날 ‘양희은 강석우의 여성시대’에서 진행자 강석우씨가 “빨리 수습이 돼야 할텐데…대통령은 어디 밖에 나가신다고 하고, 국무총리는 이상한 일에 연루돼 공백 상태가 될 거 같고, 그럼 이거 해결 되겠습니까?”라고 즉석 멘트를 했다. 한 PD는 “멘트가 나가자 담당부장이 스튜디오로 뛰어와 발언 경위가 뭐냐고 묻는 등 곤혹을 치렀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후 개인적 이유로 해당 프로그램을 떠나 CBS 클래식 프로그램 진행자로 갔다.

▲ 28일 서울 상암동 MBC에서 MBC 라디오 PD들이 제작중단을 선언하며 제작자율성 침해사례를 밝히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28일 서울 상암동 MBC에서 MBC 라디오 PD들이 제작중단을 선언하며 제작자율성 침해사례를 밝히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PD들은 위안부 문제도 대표적인 ‘금기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1년간 ‘시선집중’은 3회, ‘세계는 우리는’은 2회 밖에 해당 아이템을 다루지 못했다. 같은 기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위안부 관련 총 20회를 방송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해서도 철저히 여야, 탄핵 찬반 등 공방 사안으로 처리했다. 한 예로 지난 1월4일 시선집중 제작진이 덴마크 현지에서 정유라를 추적 보도한 박훈규 독립PD와의 인터뷰를 예정했지만 전날 오후 갑자기 취소했다. 시선집중 제작진은 박 PD 대신 조류 독감과 관련해 전날 인터뷰했던 농장 주인을 또 인터뷰했다.

반면 MBC 경영진이 직접 특정 인사에 대한 출연을 지시한 사례도 있다. 2014년 초 김도인 당시 라디오국장(현 MBC 편성제작본부장)은 ‘굿모닝FM 전현무입니다’에 2007년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 메이크업을 담당한 김아무개씨 출연을 지시했다. 담당 PD는 고정 출연은 어렵다며 1회 출연시켰다. 김씨는 2014년 가을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 패션 관련 코너 고정 출연자로 3개월 동안 출연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뉴라이트 인사들과 정치 팟캐스트를 진행했던 C씨는 2015년 가을 개편에서 담당PD 의사가 배제된 채 주말정보 프로그램 새 MC로 선정돼 현재까지 진행을 맡고 있다.

C씨는 지난해 가을 다른 정보프로그램 코너 속 고정 출연자로 약 6개월 간 방송하기도 했는데 당시 국장 지시를 받은 담당 부장이 C씨에게 고정 코너를 지시한 것이라고 PD들은 전했다.

PD들은 부당노동행위 및 인권침해 사례도 공개했다. 2015년 11월27일 아무개PD는 소속 부서 부장으로부터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려진 세월호 리본을 내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 지난 3월 진도 팽목항 세월호 팽목분향소 모습. MBC 라디오 PD들은 세월호와 위안부가 금기아이템이었다고 말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3월 진도 팽목항 세월호 팽목분향소 모습. MBC 라디오 PD들은 세월호와 위안부가 금기아이템이었다고 말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그 외에도 2015년 9월 입사 면접 당시 임원들이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대한 생각을 묻거나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관련 MBC 보도에 대한 입장을 묻기도 했고 노혁진 국장이 2015년 11월 신규 입사자들을 회의실로 불러 언론노조를 비판하며 노조 가입을 방해하기도 했다고 PD들은 증언했다.

라디오 PD들은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이 최근까지도 시사프로그램 PD나 작가진에게 직접 카카오톡(SNS) 메시지로 ‘방송 오프닝이 과하다는 지적’, ‘진보 성향 출연자 인터뷰에 대한 경고’, ‘뉴데일리, 문화일보 등 특정 기사를 포워딩하며 특정 인물 추천’ 등을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MBC 편성규약 제5조 3항에 따르면 편성, 보도, 제작상 실무 권한과 책임은 관련 국장에게 있고 경영진은 국장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김도인 본부장의 행위는 MBC 편성규약 위반 소지가 크다.

‘세계는 우리는’ 연출을 맡은 용승우PD는 “제작진 의도는 배제된 채 ‘검사 맡기’식 제작이 이뤄져 왔다. 국민의 알권리를 제대로 충족시켰는지 자괴감을 느낀다”며 “이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작자율권을 되찾고 싶다”고 밝혔다.

라디오 PD들은 김장겸 사장, 백종문 부사장, 김도인 본부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이 싸움은 MBC라디오가 잃어버린 청취자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는 첫 걸음”이며 “망가진 MBC라디오를 다시 세우는 긴 길의 시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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