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 3기 임기가 종료된 가운데, 인터넷 게시글을 삭제하고 사이트를 차단할 수 있는 통신심의소위원회(이하 통신소위)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모호한 심의 기준을 삭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방통심의위의 소위원회 중 하나인 통신소위는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이라는 모호한 기조 아래 인터넷 표현물의 삭제와 차단 권한을 갖고 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14일 성명을 내고 3기 방통심의위 통신소위가 정치심의와 ‘꼰대’심의를 자행해왔으며 4기 통신소위가 폐지되지 않을 것이라면 3기 심의와 같은 심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통신심의의 대상은 불법정보에 한정되지 않으며, 방통심의위 통신소위 위원들 5명 중 3명이 건전하지 않거나 유해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표현물은 삭제, 차단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심의, 꼰대심의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방통심의위의 무분별한 사이트 차단, 게시글 삭제 등 ‘통신심의’에 대해서 “폐지하고 사업자 자율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적 있다.

오픈넷이 꼽은 통신소위의 정치심의 사례로 △고 유병언 회장의 부패한 시신 사진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정보’로서 삭제된 건 △세월호 사건에서 당시 대통령 및 여당의 무능함과 후속조치를 비판한 글에 일부 욕설이 섞여있다는 이유로 삭제된 건 △세월호 관리·감독에 국정원이 개입돼 있다고 주장한 글이 삭제된 건 △메르스의 확산이 특정 세력들에 의해 조작,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글들이 ‘괴담’이라는 이유로 삭제된 건 △2015년에 있었던 연천 포격이나 목함 지뢰 폭발 사건 등이 국정원이 조작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의 게시글들이 삭제된 건△사드 전자파의 유해성을 언급한 게시글들이 삭제된 건 등이 있다.

▲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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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넷은 통신심의가 ‘정치심의’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심의위원 9인 중 6인은 정부 여당 측 추천, 3인은 야당 측 추천으로 이루어지는 구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오픈넷은 “정치심의 의혹이 제기된 글들은 대체로 경찰청의 신고로 이루어졌으며, 국가가 공표한 사실과 다른 내용의 의혹을 제기하면 ‘괴담’으로 치부하고 ‘사회적 혼란’을 운운하며 검열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며 “방통심의위의 ‘유해정보’ 심의 권한이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청와대가 방통심의위 통신심의를 통해 게시물을 삭제하게 할 수 있도록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통신심의 규정은 게시물에 등장하는 본인이 직접 신청을 하지 않는 한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었으나, 2015년 7월 제3자의 신고만으로도 게시물이 삭제될 수 있도록 규정이 개정됐다. 지난해 드러난 ‘김영한 비망록’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한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 김영한 비망록에 담긴 2014년 10월2일 메모.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 게시물을 주시해온 청와대가 당사자의 직접 민원이 있어야만 게시물이 삭제된다는 점을 알게 됐다. 공교롭게도 이듬해 제3자의 민원만으로도 명예훼손성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심의규정 개정이 추진됐다. 자료=진보네트워크센터
▲ 김영한 비망록에 담긴 2014년 10월2일 메모.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 게시물을 주시해온 청와대가 당사자의 직접 민원이 있어야만 게시물이 삭제된다는 점을 알게 됐다. 공교롭게도 이듬해 제3자의 민원만으로도 명예훼손성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심의규정 개정이 추진됐다. 자료=진보네트워크센터
정치심의 외에도 심의위원들의 고령화와 비전문성으로 인한 ‘꼰대심의’도 문제가 됐다. 오픈넷은 △게임 중계 등을 하는 인터넷 개인방송에 대해 ‘과도한 욕설, 저속한 언어 사용’을 이유로 규제한 다수 사례 △‘대세는 백합’이라는 웹드라마에 동성 간 키스 장면 시정요구 결정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 차단 사례를 대표적인 꼰대심의로 꼽았다.

오픈넷은 “3기 위원은 평균 나이 약 58세 전원 남성들로, 인터넷 전문가가 아닌, 심지어 인터넷 세대도 아닌 이들은 인터넷 통신 메커니즘이나 서비스 형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모습을 보였다”며 “젊은이들이 주로 소통하는 자유로운 인터넷 문화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잣대를 들이댔다”고 밝혔다.

너무 많은 양의 심의를 진행하는 탓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도 통신심의의 문제로 지적됐다. 3기 방통심의위는 연 평균 약 15만 건을 심의했고, 보통 30분 내외에서 진행되는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평균 약 1600여건, 일주일에 약 3200여건을 심의했다. 영국인 기자가 운영하는 북한의 IT 이슈 전문 사이트 노스코리아테크(northkoreatech.org)를 북한을 미화하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이트로 차단했다가 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3기 통신소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오픈넷은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심의 기준을 ‘불법성이 명백한 정보’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에는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심의 근거 규정으로서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해 필요한 경우’ 부분을 삭제하는 내용의 방통위설치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기도 하다.

오픈넷은 “행정기관이 국민의 표현물을 검열하는 것은 위헌적이므로 통신심의 권한을 민간으로 이양해야 한다고 UN과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만큼, 근본적으로는 통신심의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라며 “그러나 당분간 제도 개편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적어도 위원 구성을 전문성 있고 다양한 위원 구성으로 이루어지게 하고, 심의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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