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구속기소)가 재임 시절 삼성그룹 현안을 꼼꼼히 챙겨왔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수주 도와줄 것”이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특검은 이를 대통령이 삼성그룹 측 금전 지급에 대한 대가로 제공한 정책적 지원으로 보고 있다.

특검은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35회 공판에서 안종범(구속기소) 전 정책조정수석 업무수첩 일부를 공개했다. 안 전 수석은 1~2주 단위로 교체한 손바닥 크기의 얇은 유선 노트 앞편에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등을 기록했고 뒤편에 대통령 유선·대면 지시를 메모했다.

안 전 수석 수첩 2016년 5월22일자 면엔 “1.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수주 도와 줄 것”이라고 적혀 있다.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의 지시’였다며 “(대통령이) 아프리카 등 3개국을 순방하기 전인데 삼성전자가 (아프리카에) 상당히 많이 진출했고 실적을 올렸다. 수주를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고 법정에서 말했다.

▲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2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민중의소리
▲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2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민중의소리

이밖에도 삼성그룹 현안은 업무수첩에서 수 차례 등장한다. 2016년 8월21일 안 전 수석은 수첩에 “21. 바이오”를 적고 그 아래에 ‘전문인력부족’, ‘아일랜드 연수 시도’ ‘의약품 임상실험 신약 바이오시뮬러’ 등의 문구를 적었다. 바로 아래 “22. 삼성바이오로직스” 아래엔 ‘바이오협회’ ‘인력 교육기관 부족’ 등을 기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 차세대 산업으로 육성하려 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된 현안이다.

이재용 부회장과 대통령이 단독 면담한 2016년 2월15일에는 현안 관련 문구가 더 많이 적혀 있다. ‘기후변화 ESS’ ‘바이오신산업’ ‘외투기업 세제혜택’, ‘싱가폴 아일랜드 글로벌 제약회사 유치’ ‘환경규제’ ‘바이오 개방대형회사’ ‘클러스터센터’ 등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이슈들로서 상당히 구체적인 사항이 적시돼있다.

이와 함께 ‘금융지주회사’, ‘글로벌 금융’, ‘은산분리’ 등도 적혀 있다. 2016년 1월부터 3월까지 삼성생명이 추진한 금융지주회사 전환 건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안 전 수석은 당시 대통령이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고 정부의 은산분리 취지에도 부합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 밝혔다.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및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 등에 대해 지원을 직접 요구한 정황도 있다. 2015년 독대가 이뤄진 7월25일 안 전 수석 수첩엔 ‘스포츠담당, 김재열, 황성수 메달리스트 빙상협회 후원 필요’ 등이 기재돼있다.

특검은 이를 최순실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센터에 대한 대통령의 금전 요구로 보고 있다.

‘승마협회 이영국 부회장·권오택 총무 → 교체, 김재열 직계 전무’ 부분은 대통령이 대한승마협회 임원 교체를 직접 지시한 정황이다. 이는 최씨의 요구사안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실제로 이영국 부회장을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로, 권오택 총무이사를 김문수 삼성전자 부장으로 교체했다.

2015년 8월9일 자 업무수첩엔 ‘5. 동계스포츠선수양성’ ‘스케이트 스키 영재 발굴’ ‘삼성 스케이트 5억 지원’ 등이 적혀 있다. 2016년 2월26일자 수첩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관련해 ‘동계영재센터 박재혁 회장, 이규혁 전무. 24~26 춘천 피규어 꿈나무 캠프. 계약서 송부. 9.7억’이 기재돼있다.

삼성전자는 2015년 10월 영재센터에 1차 후원금 5억5천만 원을 입금했다. 2016년 3월경엔 9억7천여 만원에서 부가세 10%를 추가한 10억7800만 원을 입금했다.

박씨는 재임 당시 종합편성채널 JTBC에 대한 반감도 안 전 수석에게 드러냈다. 2016년 2월16일 수첩엔 ‘2. 이재용 부회장’이라 적힌 문구 아래에 ‘JTBC 홍석현·도영심, 교문수석 → 이재용’이 적혀있다.

안 전 수석은 바로 전날인 2월15일에 JTBC가 적힌 것에 대해 “대통령이 정부에 대한 비판 기사가 많이 나온다며 외삼촌인 홍석현 회장을 만나 얘기를 잘 해보라는 취지로 말해서 기재했다”고 말했다.

2월16일자 메모에 대해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이 홍석현 JTBC 회장, 청와대 교문수석 등 메모에 나온 인물이 같이 만났던 것을 언급하며 “정부에 비협조적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안 전 수석은 4일 ‘삼성 뇌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8시간이 넘는 증인 신문에 임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