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신임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과거 참여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후보자는 지난 2004년 9월 서울신문에 기고한 <국가보안법과 한국인의 의식>이라는 글에서 “이제 진정으로 자유롭게 사고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국민을 가진 사회를 이룩하려면 국가보안법이라는 자유사고에 대한 족쇄는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참여정부는 사립학교법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를 4대 개혁입법으로 포함시켰고 이에 야당인 한나라당이 강하게 반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TV에 출연해 국가보안법을 “지금은 쓸 수도 없는 독재시대에 있던 낡은 유물”이라고 규정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주권시대, 인권존중의 시대로 간다면 그 낡은 유물은 폐기하는 게 좋지 않겠나,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겠나”라는 의견을 밝혔다.

박 후보자는 기고글에서 “한국사회가 바뀌었고 남북관계도 그동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진전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며 “법의 존재 형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합리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56년의 세월이 가져온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박상기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27일 오후 4시 서울 적선현대빌딩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박상기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27일 오후 4시 서울 적선현대빌딩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러면서 박 후보자는 “이 법의 존재로 한국인의 의식세계에 사상의 자기검열이라는 인식체계가 자리잡게 됐다”며 “국가안보가 특별법 조문 몇 개로 튼튼하게 지켜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기본적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희망하고 사랑하는 구성원이 다수일 때 국가안보는 지켜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대에 맞지 않고 자기검열 체계로 작용하고 있으며 형법에서도 충분히 처벌가능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사실상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04년 당시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이기도 했던 박상기 후보자는 한국형사법학회와 비교법학회와 함께 ‘국가보안법 논쟁에 대한 전국 형사법 전공교수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가보안법의 주요 내용은 현행 형법으로도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세 학회는 “보안법이 폐지되면 '적전에서 무장이 해체'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어떤 이론적 근거가 없다”면서 “이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도 형벌에 의한 처벌 공백이 발생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어떤 형사실체법도 행위가 아닌 사상을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국가보안법은 사상을 옥죄는 법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박 후보자는 형법 연구학자로서 국가보안법은 형법으로 대체가능해 폐지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개혁 뿐 아니라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참여정부는 4대 개혁입법 과제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야당이 반발하면서 국정운영 동력 확보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당시 TV 토론회에서 “국보법 폐지는 남북관계의 긴장이 해소되고 대화국면으로 들어갈 때 할 얘기”라며 신중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박상기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27일 오후 서울 적선현대빌딩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후보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박상기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27일 오후 서울 적선현대빌딩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후보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박 후보자는 국가기관의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히 처벌하고, 권력에 맞서 공익에 부합한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나왔다.

일례로 지난 2015년 6월 세월호 참사 추모대회에서 태극기를 태워 국기모독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논란이 벌어질 때 박 후보자는 “김씨의 경우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아니라 경찰의 집회 진압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태극기를 태운 것으로 보인다”며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기모독죄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 개입 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하자 박 후보자는 “국정원의 정치 관여는 결국 대선의 당락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 것일 텐데, 그 부분이 왜 무죄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대선 결과의 공정성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타협점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핵심 피의자에 대해 검찰이 국가보안법상 무고 및 날조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유씨의 간첩 혐의는 수사기관의 의심에 불과할 뿐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증거를 바탕으로 유죄 판결을 확정받기 전에는 무죄추청이 원칙임에도 검찰이 유씨의 간첩 혐의를 전제로 보안법상 날조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정치자금을 이회창 후보 측에 전달한 내용을 담은 대화를 당시 안기부가 도청 녹음한 것을 2005년 이상호 MBC 기자가 공개한 이후 불법도청 자료 보도를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자 박 후보자는 “이 기자의 보도를 통해 국가의 불법도청 행위와 공익에 부합하는 내용들이 세상에 알려졌다”며 “기자의 보도 행위 자체는 위법성이 없는 업무행위로, 형법에 나와있는 정당행위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박 후보자는 박근혜와 독대한 재벌들이 미르 재단에 출연한 것에 뇌물죄를 적용한 것을 두고 대통령에 공갈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박 후보자는 지난 1월 문화일보에 기고한 <특검, 뇌물죄보다 공갈죄 검토해야>라는 글에서 “청와대에서는 기금 출연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기업별로 금액을 할당하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대단히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통령의 행위는 공갈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후보자는 “대통령의 요구와 재벌기업의 자금 출연이 뇌물죄 성격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대통령이 특정 재벌기업의 최고책임자를 상대로 자금 제공을 요구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입장에선 공갈죄 구성요건인 협박에 더 해당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밝혀, 삼성 등 기업의 뇌물죄 적용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자는 “기업 측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요구하는 금액을 맞춰서 갖다 바쳤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며 “물론 기업 측에서는 이러한 기회를 이용해 자신들의 현안을 청탁했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업 측의 이러한 청탁은 청탁의 기회를 제공한 대통령 측에서 사전에 기업 측의 현안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해결해 주는 사후적 배려 차원이 아니었을까”라고 밝혔다.

박 후보자는 1998년 언론 기고글에서 사법개혁과 관련해 “법조비리사건은 제도적 개혁의 필요성과 함께 법조인들 스스로에게 맡기는 법조개혁은 더 이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유례없이 폐쇄적인 사법체제로 인해 우리의 사법제도는 법조인들의 독점적 영역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법조개혁은 언제나 법조인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법조 밖에 있는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에 의해서 해결돼야 한다”며 “법조비리가 발붙일 수 없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경쟁력이 필요한 법률시장, 개방적인 사법제도, 직업윤리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법조진입의 높은 장벽을 헐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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