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언론은 ‘워딩’ 뒤로 숨었다. 그것이 ‘균형’인양 네거티브를 받아썼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교란시키려 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됐던 색깔론을 꺼내들어 국민들을 선동했던 것도 언론이었다. 막판까지 선거 주판알을 튕기며 보수 결집에 사활을 걸었던 보수 언론은 대통령 확정 후 ‘통합과 협치’를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를 꼽을 수 있다. 대선 직전 자사 보도를 보다 못한 연합뉴스 기자들이 폭발했다. 대선 국면에서 ‘최악의 보도’로 뽑힌 지난 2일자 SBS 리포트를 사실상 그대로 받았던 데 따른 분노였다. SBS ‘8뉴스’는 2일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라는 제하의 리포트를 통해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을 고의적으로 미뤄오다 차기 정부 눈치를 보고 인양을 시작했다는 정황을 보도했다. 이 보도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해수부가 마치 거래를 통해 인양을 늦춘 것처럼 비춰져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지부장 이주영) 소속 한 조합원은 4일 노조 게시판에 “매일 아침 ‘신중한 선거 기사’를 주문처럼 외워온 연합뉴스는 ‘얼씨구나’하는 것처럼 SBS가 저질러 놓은 불에 열심히 부채질을 해대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SBS 보도를 매개로 문 후보 측을 비난했던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발언을 인용 보도한 자사 보도를 문제 삼았다. 아울러 “연합뉴스를 당신들의 마지막 몸부림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며 보도 책임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성기홍 연합뉴스 정치에디터가 “대선 보도를 하는 정치부원들의 사기를 현저히 꺾는 데다 (연합뉴스의) 대선 보도 편집 방향을 왜곡하는 글”이라고 비판·반박했으나 기자들은 “연합 정치부는 필터링 기능이 없는가. 주장이라고 다 써주는 게 기사인가”, “양측 의견을 균형 있게 다룬다는 미명 하에 우린 너무 망가졌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첫 번째 인사 후보자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첫 번째 인사 후보자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영방송 MBC는 선거 전날까지 자유한국당에 발을 맞추는 듯한 모습을 보여 도마 위에 올랐다. ‘친박 집회’ 연사로 나서는 등 MBC에서 극단적 행보를 보인 최대현 앵커가 8일 오전 “프랑스 대선에서 통합을 외친 마크롱이 당선됐다. 우리나라 대선에서는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패륜집단이라며 편가르기까지 나오고 있다”며 “선택은 국민 여러분의 몫이다. 내일 소중한 한 표 행사해 달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더불어민주당 측 문용식 전 가짜뉴스 대책단장이 페이스북에 “PK 바닥 민심은 패륜집단”이라고 언급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MBC 리포트에서 문 전 단장의 해명을 다뤘음에도 최 앵커는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패륜집단이라며 편가르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성일 선거방송심의위원은 “해당 클로징 멘트는 일방적 의도를 가지고 했다고 해석돼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언론 통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대선 후보에는 침묵을 지켰다. 지난 3일과 4일 유세에서 홍 후보가 SBS를 향해 “내가 집권하면 SBS 8시 뉴스 싹 없애겠다”, “SBS 사장과 보도본부장 목을 다 잘라야 한다”고 폭언을 쏟아낸 것에 KBS ‘뉴스9’은 무보도로 일관했다. JTBC가 “가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특정 언론의 뉴스를 없애겠다는 발언은 지극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JTBC ‘뉴스룸’은 지난 4일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의 SBS 항의 방문에 “언론 자유를 후퇴시킨 장본인들이 SBS를 다시 겁박하고 있다”는 언론노조 SBS본부 입장을 담아 보도했다.

색깔론의 정점은 찍은 것은 중앙일보 칼럼이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는 지난달 13일 “한 달 후 대한민국”이라는 칼럼을 썼다. “이건 그냥 상상이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전제를 달았지만 문 후보의 햇볕정책이 미국을 자극해 전쟁 위기에 처하게 되고 문 후보는 허둥지둥한다는, 사실상 소설을 써내 논란을 불렀다. 중앙일보는 “안보 이슈 공론화 촉구를 목적으로 ‘상상’이라는 전제 하에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 칼럼 형태로 작성했다”고 해명했으나 인터넷선거보도 심의위원회와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경고’ 제재를 내렸다.

대표 공영방송인 KBS의 경우 대선 내내 ‘문재인 때리기’와 ‘보수 결집’에 사활을 걸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KBS 대선 보도를 감시해온 정수영 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KBS 보도는 ‘문재인 때리기’와 ‘반문세력 결집’으로 요약할 수 있다”며 “여기에 더해 톱뉴스부터 내리 8꼭지를 북한 보도로 메우는 등 KBS는 끊임없이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보도를 쏟아냈고 반기문, 황교안 등을 띄우는 데 주력했다”고 총평했다.

대선 기간 내내 대결과 갈등을 부추기던 언론은 이제 ‘협치와 통합’을 주문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0일자 사설에서 “지금 문 대통령을 찍지 않은 많은 국민은 앞으로 ‘노무현2기’가 펼쳐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면서 “거의 매일 갈등과 분열로 지고 샜던 당시로 돌아간다는 것은 역사의 퇴행이다. 문 대통령이 그 시대를 넘어서서 통합하고 협치하는 새로운 대통령상을 보여준다면 문 대통령을 찍지 않은 국민들도 곧 성공을 응원하게 될 것”이라고 훈수를 뒀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현재 조선일보는 물론이고 종편들도 통합을 운운하며 촛불 개혁의 민심을 왜곡하고 있다”며 “대통령 당선자의 의례적인 멘트를 부각하면서 차기 정권의 개혁을 막아보려는 사실상 겁박에 가까운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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