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조연출 PD들이 일을 책임지지 않아 현장에서까지 고 이한빛PD가 많은 업무를 책임져야 했다.”(‘혼술남녀’ 외부업체 최 아무개씨)
tvN ‘혼술남녀’ 고 이한빛PD의 유가족과 CJ E&M 측이 고인의 자살한 이유를 두고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가족과 청년유니온 등 시민단체는 고인이 목숨을 끊은 이유를 tvN의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군대식 조직문화로 규정하고 ‘사회적 타살’로 보고 있다. 그렇기에 CJ E&M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CJ E&M 측은 “드라마 현장 특성상 특별한 업무강도가 아니고, 고 이한빛PD의 근무태만이 갈등을 불렀다”고 주장한다.
CJ E&M 측이 18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러한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CJ E&M 측은 18일 공식입장을 통해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이한빛님에 대해 큰 슬픔을 표한다”, “어떠한 말도 닿을 수 없는 유가족의 아픔에도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하면서도 “사망에 대한 경찰의 조사 이후 그동안 유가족과 원인 규명의 절차와 방식에 대해 협의를 해왔지만 오늘(18일)과 같은 상황이 생겨 매우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혔다. CJ E&M 측은 “당사 및 임직원들은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 임할 것이며, 조사결과를 수용하고 지적된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가족과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고인은 △‘혼술남녀’ 제작 과정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업무부여 및 심각한 노동강도 △언어폭력과 괴롭힘 등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 ‘혼술 남녀’ 제작과정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
애초에 혼술남녀의 촬영기간은 2016년 7월6일부터 10월21일까지 109일이었다. 이 중 촬영일수는 65일이었다. 혼술남녀는 전체 16회 중 절반인 8회분을 사전 촬영할 계획이었으나, 전체 촬영분의 사분의 일이 제작된 8월12일 촬영팀 외주업체 및 소속 스탭이 교체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8월27일 촬영이 재개되며 실질적인 제작기간이 당초 예상보다 축소됐다. 노동환경이 악화됐다고 볼 수 있는 증거다.
이 과정에서 고 이한빛PD는 자신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념과 다른 업무를 하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 PD는 대학시절 단과대학 학생회 집행부 등을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및 사회적 약자의 현실에 대해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급여를 416연대, KTX 해고 승무원, 빈곤철폐연대, 사회진보연대 등에 기부하기도 했다.
고인은 유서에 “촬영장에서 스탭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다”면서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썼다. 이 유서에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떠밀고” “내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다”는 내용도 담겼다.
CJ E&M 측은 “촬영팀 교체가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작품을 위해 간혹 발생하는 일이고, 불가피하게 촬영팀을 교체한 것은 사실”이라며 “교체결정은 tvN제작본부 기획제작2CP 책임PD가 결정했으며 진행은 메인PD인 최 아무개씨가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갈등관계가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2.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업무부여 및 심각한 노동강도
이한솔씨는 “특정 시점 이후 형은 딜리버리, 촬영준비, 영수증, 현장준비 등 분담할 수 있는 업무조차 홀로 맡는 구조가 됐다”면서 “계속된 밤샘 촬영에 쉬는 날은 자료정리까지 일임하게 돼 잠도 못자고 출근만 해야 했다”고 말했다.
대책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면 촬영이 재개된 8월27일부터 고 이한빛PD가 실종된 10월20일까지 55일동안 그가 쉰 날은 단 2일이었다. 55일 동안 발신통화 건수는 1547건이었다. 하루 최대 발신건수는 94건이었고 1일 평균 발신건수는 28건이었다. 그가 하루에 전화를 약 100통 정도 할 만큼 업무강도가 셌다는 증거다.
이에 대해 CJ E&M 측은 “조연출 가운데 신입PD 그룹으로서 4명이 2명2교대로 근무하였으며, 함께 업무했던 신입PD그룹의 조연출들과의 인터뷰 결과 타 프로그램 대비 근무강도가 특별히 높은 편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3. 언어폭력과 괴롭힘
고 이한빛PD의 녹취록, 메신저 등의 내용을 토대로 대책위원회가 정리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나온다.
“이한빛 개새끼야로 시작해서, 씨제이 안에 씨발놈들아”, “니네는 드라마할 기본 자세도 안돼 있는 놈들이고, 이팀은 다 병신이고” (회식자리 녹취록)
“너한테 일이 막 몰리고 지치는 거 나도 알거든. 근데 이 회사에 정직원이고 씨제이인이고 하면 니가 일을 더 해야돼. 진짜 한 대 후려갈길 뻔했다. 너 퇴사에 대한 고민하고 있으면 지금 나가라. 일이 몰리긴 뭘 몰려. 원래 신입사원은 그런 일 하는 거야.”(선임PD와의 면담)
“이한빛, 정신 안차리냐? 현장에서 뭘 어떻게 하길래 스탭들에게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데. 아침에 내가 그지랄 하는데 쌩까고 지나가냐? 생각할수록 존나 열받네. 앞으로 남는 촬영 방송기간 동안 진짜 꼬투리 잡힐 짓 하지마라.”, “이한빛 너는 왜 촬영 나가니?”, “당신 때문에 우리가 다 힘들어 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조연출 그룹 카톡방)
이뿐만 아니라 고 이한빛PD가 마지막 촬영을 불참하고 실종된 10월21일부터 10월26일까지 5일 동안 고인과 함께 6개월을 보낸 연출팀은 적극적으로 그를 찾지 않았다. 메신저 상에서 고인의 실종에 대한 걱정보다 그가 소지하고 있었던 법인카드의 행방을 언급하며 비아냥하고 욕을 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또한 캡처된 카톡창을 보면 고인이 실종 중임에도 연출팀 내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다른 화제로 쉽게 전환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CJ E&M 측은 여전히 개인의 근무태만으로 인하 갈등이 있었고, 대책위원회 측의 조사 외에 경찰 등의 조사에만 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책위원회는 19일부터 CJ E&M 사옥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시작했다. 고 이한빛PD의 동생인 이한솔씨가 가장 먼저 시위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