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애국보수' 대통령 후보로 나설까. 선거 관리 책임에 등을 돌리고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나오는 희극적인 상황을 낳으면서까지 명분이 적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감행할까라는 질문이다.

황 권한대행은 대선 불출마 의사를 뚜렷하게 밝힌 적이 없다. '출마하지 않겠다'라고 한마디 하면 될 것을 단 한번도 불출마에 무게를 둔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간을 보면서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황 권한대행이 박근혜 파면 당일 10일 오후 국정관리에 충실하고 국정공백이 없도록 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출마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런데 박근혜 탄핵 이후 사흘간 공식일정을 잡지 않았다는 점, 청와대 수석 인사들이 사표를 제출했는데도 반려하고 유임을 결정했다는 점, 5월 9일 대선일이 유력한데도 확정해 공고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을 봤을 때 황 권한대행이 대선에 출마하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다시 돌고 있다.

황 권한대행이 10일 내놓은 입장문을 꼼꼼히 뜯어보자. 황 권한대행은 입장문 발표 말미에 "저는 지난 3개월 동안 국정의 공백을 최소화 하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 많은 현장을 찾아 여러 분들로부터 의견을 들었다"면서 "전 내각과 함께 혼신의 노력으로 국정을 챙기기 위해서 힘써 왔다. 국민 여러분의 협조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적극 도와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파면됐으니 국정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끝을 맺으면 되는데 황 권한대행은 굳이 그동안 대행으로서 했던 역할을 강조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 것이다. 향후 대통령 출마를 염두에 둔 메시지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반대로 황 권한대행이 정치인의 길을 걷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건 쉽사리 공직자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과거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3월3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불법사금융피해자 및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3월3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불법사금융피해자 및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황 권한대행은 지난 2005년 12월 14일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 때 5개월 동안 X파일 사건을 맡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끄러울 것 없는 수사를 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황 대행의 답변에 재차 '정말 하늘 아래 부끄러움이 없느냐'고 물었고 황 대행은 단호하게 "그렇다"라고 말했다.

X파일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간의 대화를 담은 녹취록에는 삼성이 검찰 조직에 돈을 뿌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세상을 뒤흔들 충격적인 내용이었지만 X파일 사건 수사 결과는 초라했다.

X파일이 안전기획부가 불법 녹취한 결과물이란 게 드러나자 검찰은 불법 도청된 증거물이기 때문에 수사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놨다.

검찰은 운 좋게 녹취록을 불법 증거물이라고 내세울 수 있게 되면서 검찰 조직과 삼성의 치부를 가릴 수 있게 됐다. 자금 제공을 지시했다는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본부장, 그리고 홍석현 사장은 무혐의를 받았고, 되려 녹취록을 폭로했던 이상호 MBC 기자는 불구속 기소됐다. '부끄럼이 없느냐'고 물었던 기자의 질문은 이 같은 배경을 담고 있다.

X파일 사건은 삼성에 면죄부를 준 것뿐 아니라 재벌권력에 무력화된 검찰 조직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후회나 반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X파일 사건은 황 권한대행의 발목을 잡았다. 이듬해 2월 검사장 승진 대상자에서 황 권한대행이 낙마한 것이다. 당시 천정배 법무부장관은 검찰조직 인사에서 신상필벌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눈길은 사시 23회 출신 중 누가 검사장으로 오를 것이냐로 쏠렸는데 황 권한대행이 미끄러진 것이다. 서울지검 1~3 차장 중 유일하게 황 권한대행이 낙마한 것도 눈에 띄었다.

황 권한대행 입장에선 공안통 검사로서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검사장 승진이 누락되면 검찰 조직을 떠나기도 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대표적이다. 우 전 수석은 검사장 인사에서 고배를 마시자 2013년 4월 사표를 냈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2011년 부산고검 검사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2013년 법무부장관에 올라 박근혜 정부 최장기 장관이 됐고 우여곡절 끝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다.

황 권한대행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면 소수의 보수층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겠지만 공직자로서 명예로운 퇴진은 물 건너가게 된다. 황 권한대행이 섣불리 대통령 후보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황 권한대행이 대통령 후보로 나설 가능성은 남아있다. 검찰이 박근혜를 소환하고 구속 수사 움직임을 보이면 극렬 보수층이 반발하고 이 같은 반발 여론을 빌미로 박근혜 정부 적자임을 내세워 출마를 감행하는 도박을 할 수 있다.

황교안 권한대행의 선택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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