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지도부는 언론개혁에 관심 없다.”
앵커 시절 날 선 클로징 멘트로 화제가 됐던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당을 향해서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 처리가 어려운 근본적인 원인은 당의 소극적인 대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친정인 MBC는 그가 떠난 뒤 급변했다. 신 의원은 MBC ‘뉴스데스크’ 앵커였지만 “현재 MBC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영방송 개선법이 통과되면 ‘노영방송’이 될 것이라는 여당의 우려에 “오히려 MBC는 지금껏 ‘청영방송’을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공영방송법 자체는 큰 개혁이 아닌 최소한의 응급수술”이라고 강조했다.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 신상진 미방위원장 불신임 결의안을 내기에 이르렀는데.
“공영방송법 처리에 대해 여야 간사 합의가 안 됐으니 계속 기다린다는 게 위원장의 입장이다. 19대 국회는 양당제였기 때문에 두 당의 합의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교섭단체만 4당이다. 여당은 더 이상 다수당도 아니고 ‘미디움’당이 됐다. 그런데 여당 간사 한명과 그 당 소속 위원장이 ‘짬짜미’해서 원천봉쇄하고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 법안을 통과시킬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정상적인 절차가 원천 봉쇄됐다. 그래서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했지만 이번에는 여당이 위원추천을 하지 않으면서 막고 있다. ‘패스트트랙’으로 가자니 최장 300일 걸린다는 점이 문제다. 남은 건 직권상정인데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국회에 와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절망스럽다.”

- 민주당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당에 있다. 지도부와 대선주자들이 말로는 ‘방송이 중요하다’, ‘언론개혁을 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립서비스’에 그친다. 진짜 의지가 있었다면 원내1당이었던 우리가 미방위원장을 절대 양보하면 안 됐고,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여야 5:5로 구성해서도 안 됐다. 당시 원구성 협상에 들어간 사람에 따르면 청와대가 미방위원장을 양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이 사실을 공개해서 비판하거나 최소한 밀고 당기기라도 했어야 한다.”

- 공영방송 개선법이 만능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여야 이사의 3분의 2가 동의해야 하는 특별다수제로 뽑힌 사장은 부역자를 솎아내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집권을 염두에 두고 만든 법안이 아니다. 집권 생각하면 이 법을 추진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 자칫하면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닌 무색무취한 사람, 중간정도 능력 갖춘 사람이 사장으로 뽑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최소한 절대 방송사 수뇌부 근처에 얼씬거려서는 안 되는 김재철, 고대영 같은 사람은 막을 수 있다. 거창한 개혁을 하자는 게 아니다. 심각하게 망가졌기 때문에 최소한의 ‘응급수술’부터 하자는 거다. 근본적인 개혁안은 그 이후에 추진하는 게 맞다.”

- 자유한국당은 이 법이 통과되면 ‘노영방송’이 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데.
“사실은 반대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느낀 점은 MBC는 지금껏 ‘공영’이 아니라 ‘청영방송’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나마 김대중 정부 때는 소신 있거나 괜찮은 인사를 사장이나 이사장으로 보냈는데, 이명박 정권 이후에는 정부 마음에 드는 인사를 밀어붙이기식으로 선임했다. 청영방송 구조에 조금이라도 손을 대야 한다.”

- 자유한국당은 노사가 표결을 통해 편성을 결정하는 ‘노사동수 편성위원회’에 반감이 크다. 반면 ‘노사동수 편성위원회’를 구성해도 사측이 노측 주장을 무시할 경우 처벌 조항이 없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편성위원회는 노조의 목소리를 편성에 반영하는 개혁에 가까운 개선조치다. 특별다수제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사측이 노조 의견을 무시할 수 있지만 의견을 들어주는 공식적인 채널이 법적으로 보장된다는 점 자체가 상당한 진전이다. ‘가부동수’는 부결이기 때문에 노조 의견이 무시당하는 수가 있지만, 표결만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질 것이다.”

- 종합편성채널 등 민영방송에 ‘노사동수 편성위원회’를 강제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공민영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 법으로 종편이 더 좋아져 지상파를 위협하게 될지도 모른다. 종편의 질을 떨어뜨리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엉터리 패널들이 장악한 게 큰 문제다. 이 법으로 그런 패널들을 막을 수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편향적으로 정치심의를 하는 상황에서 외부의 심의제도만 갖고는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

-친정인 MBC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소극적으로 보도하거나 정부에 편향적인 보도가 문제가 됐다.
“MBC에서 30년 일했지만 지금 MBC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을 잘 알지 못한다. 체질개선이 완벽하게 됐다는 의미다. MBC의 미래는 암울하다. 지금 사장후보가 누가 돼도 MBC의 미래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사장 후보자 최종 3인, 후보자 14인을 잘 안다. 경악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지원했을까. 이 사람들만 나가도 MBC가 좋아질지 모른다. 이는 정권교체 이후 MBC를 다시 공영방송답게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 최근 MBC가 MBC 청문회와 공영방송법에 대한 경영진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메인뉴스에 내보내고 있다.
“중앙일보 기자들이 ‘사장 힘내세요’(1999년 보광그룹 탈세사건 당시 검찰에 소환되는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을 향해 중앙일보 일부 기자들이 도열해 이렇게 외쳤다)라고 할 때 우리가 그렇게 비판하지 않았나. 그런데 MBC가 똑같이 됐다. 민영방송도 이러면 안 되는데 공영방송이 사영화 돼 전파낭비를 하고 있다. 이런 보도야말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해야 하지 않나.”

- 김장겸 정치부장(현 보도본부장) 시절 MBC는 신 의원이 ‘지역비하 막말’을 했다고 보도했는데, 법원에서 허위보도임이 밝혀졌다. 이후 개인적으로 사과를 받았나.
“사과 받은 적 없다. 당시 2000만 원의 벌금을 MBC가 냈는데 정치부장과 취재기자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MBC가 구상권을 청구해 정치부장과 기자가 물어내도록 해야 한다.”

▲ 2012년 10월16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신경민 막말파문'은 결국 허위로 밝혀졌다.
▲ 2012년 10월16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신경민 막말파문'은 결국 허위로 밝혀졌다.

- 이후 또 보도를 통해 보복을 당한 적 있나.
“그 뒤에도 계속 당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는 ‘막말 의원’에 굳이 나를 넣더라. 며칠 전에는 상임위에서 MBC 문제 얘기했더니 ‘야당의 방송장악’ 케이스에 나를 또 집어넣었다. 슬픈 건 MBC를 보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나에게 ‘어제 뉴스에서 봤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정보위원회 간사 직책 때문에 아침 라디오 대담프로그램마다 출연했는데, MBC는 손석희 앵커가 진행할 때 말고는 나간 적이 없다. MBC판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것 같다.”

- 박근혜 정부 미디어 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나.
“미래창조과학부는 포장은 그럴 듯하게 했는데 실제로 한 일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역마다 만들어 재벌들한테 뜯어낸 것이다. 요즘은 ‘4차산업혁명’이라고 말은 근사하게 하는데 미래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고민이 없었다. 통신분야는 진흥은 미래부가, 규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하도록 나눴는데 규제와 진흥이 모호한 상황에서 교통정리만 하다 4년이 지나갔다. 방통심의위는 정치심의를 하고 있다. JTBC의 ‘태블릿 PC보도’처럼 심의거리라고 보기 힘든 사안을 심의하려고 달려든다.”

▲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 어떻게 개선을 해야 하나.
“사실 차기정부는 인수위원회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대폭 개편하면 또 다시 교통정리만 하다 시간을 흘려보낼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부처별로 흩어진 기능을 다시 모으는 개편은 불가피하다. 당에서 거론되는 미디어부와 ICT부를 신설해 각 정부부처에 나눠진 미디어·ICT 관련 기능을 일원화하는 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 종합편성채널의 특혜 환수를 위한 야당의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전 현직 의원들이 출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제 특혜 환수나 퇴출 의지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범 이후 상당한 시점이 지났는데, 특혜가 과도하게 많은 건 사실이다. 특혜 하나 정도는 반납할 때가 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종편 재승인 심사 때 방송사 하나 정도는 탈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하는데, 한번 만들어진 기관은 없애기 힘들다. 원칙은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인 편성이 아닌 종편 설립 취지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 지난해 ‘케이블 권역 폐지’ 법안을 내놓았다. 케이블이 IPTV와 같은 조건으로 경쟁하게 만들면 케이블이 일방적으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술발전 흐름에 볼 때 시장을 통합하는 건 피하기 어려운 추세라고 본다. 케이블 사업자가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거스르려고 해도 못 막는 측면이 있다. 찬반논란이 있어 고민이 많이 들었는데, 일단 법안을 내보고 한번 토론을 해보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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