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로써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향해 마지막 수사의 매듭을 짓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16일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위증 혐의로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며 “국가경제에 미치는 상황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삼성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에 준 뇌물 금액을 약 430억원대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삼성이 2015년 8월 최씨의 독일 회사인 비덱스포츠(옛 코어스포츠)와 맺은 220억원대 규모의 컨설팅 계약, 최씨와 그의 조카 장시호씨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원 가량,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40억원 등이 모두 포함됐다. 특검은 삼성이 건넨 뇌물의 대가를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정부의 도움으로 보고 있다.

▲ 한겨레 1면 기사 갈무리.
특검팀은 뇌물공여 수수자를 의율하는 혐의 적용과 관련해서 이 부회장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 204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준 후원금 16억여원은 제3자 뇌물제공 혐의를, 코레스포츠 계약금 213억원은 단순 뇌물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에 기재했다.

또한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 코레스포츠에 실제 보낸 80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여원 등 총 96억여원은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라는 사적인 목적을 위해 회삿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횡령혐의를 적용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 공여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혐의가 공식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향신문은 “공무원이 아닌 최순실씨에게는 뇌물죄가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삼성의 혐의가 뇌물 공여라면 수수자에는 박 대통령도 포함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겨레는 제3자 뇌물제공 혐의와 단순뇌물 혐의라는 ‘투트랙’을 택한 것은 영장심사에서의 안전장치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특검팀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은 제3자 뇌물공여로 봤다. 최씨 모녀가 대주주인 독일 코레스포츠에 지원을 약속한 213억원은 뇌물공여로 판단했다.

제3자 뇌물공여는 최소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므로 뇌물죄보다 법원이 요구하는 입증 정도가 깐깐하다. 한겨레는 뇌물 수사에 밝은 검찰 관계자의 입을 통해 “특검팀이 법원의 영장 발부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법리적,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각각 200억원 이상이니 어느 한 쪽만 인정되더라도 영장 발부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특검팀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코레스포츠에 실제 보낸 80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여원 등 총 96억여원의 횡령혐의 및 청문회 위증 혐의도 적용했다.

삼성 측은 이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합병이나 경영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삼성 측은 지원금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강제 지원이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는 18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삼성 구속영장 청구에 “경영 타격” 우려하는 일간지들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청구 관련 소식을 전한 일부 주요 조간지의 경우 삼성의 경영에 타격이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삼성 측의 우려섞인 분위기를 전하며 ‘사상 초유의 리더십 공백’이라는 점과 해외 신인도 추락 등을 걱정하고 나선 것이다. 이와 함께 일부에선 사법부의 엄정한 판단을 요구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 간의 관계에 선긋기 하는 모습도 보인다.

▲ 세계일보 2면 기사 갈무리.
국민일보는 “향후 이재용 부회장이 유죄판결을 받게 되면 미국 등 해외에서 삼성의 사업 기회가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대한상의와 경총 등 경제 단체들이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전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세계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삼성은 박 대통령의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고 주장한다”며 “박 대통령 처벌을 위한 짜맞추기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면 경제도 잃고 사법정의도 잃는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특검이 우리 사회의 반(反)대기업 정서와 ‘불구속=무죄’로 인식되는 현실을 핑계삼아 영장청구를 강행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우리는 형사사건의 경우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의 명백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앞으로 법원이 정치권과 광장을 휩쓰는 반대기업 정서에 흔들리지 말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 조선일보 4면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 역시 사설에서 “이 부회장 구속 여부는 국민이 주목하고 세계 업계가 지켜보고 있다”며 “대통령의 죄를 입증하기 위한 부수적 필요성 때문에 다른 사람을 억지로 옭아매는 일도 막아야 한다. 법원이 다른 어떤 고려도 없이 오직 확인된 증거와 법리만을 놓고 판단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최순실 “이권개입 없다” 되레 목청높여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심판 출석을 거부하는 가운데 16일 증인으로 나온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탄핵 소추 사유를 부정하고 나섰다. 6시간 동안 진행된 증인신문에서 최씨는 국회 소추위원 대리인과 맞서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요 혐의에 대해서는 “모릅니다”와 “어제 일도 기억 안납니다” 등으로 부인하거나 답하지 않았다.

최순실씨는 이날 5차 탄핵심판 변론에 출석해 “대통령은 그럴 분이 아니다”라며 적극 보호에 나섰다. 대기업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삼성·롯데의 추가 지원 등은 뇌물이 아니라 문화·스포츠 융성을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최씨는 “대통령께서 돈 없고 힘든 학생들을 올림픽에 내보내 국위를 선양하고자 해서 만든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 한국일보 1면 사진 기사.
박 대통령이 삼성과 롯데의 청탁을 받고 재단 출연금과 추가지원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도 “삼성그룹 합병은 지금 설명 들어도 모를 것 같다”며 “삼성에 아는 사람도 없고 정유라가 탈 말을 부탁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최씨는 청와대 문서 유출과 공무원 임명 등 ‘국정농단’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최씨는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메일과 인편으로 문서를 보내와 수정해 보낸 적은 있다”면서도 “(고위 공직자) 인사안은 모르겠고 연설문의 감성적 표현만 봤다”고 답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 역시 강하게 부정했다. 최씨는 국회 소추위원 대리인에게 “어떤 이권인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며 “정부로부터 어떤 이권도 받은 적 없고 대통령도 그런 분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며 항변했다.

최씨는 고영태 전 더블루K이사 등이 내놓았던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에 대해서는 작심한 듯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회 소추위원 측이 정부비판적 단체나 인사를 특정해 알아보라고 한 적 있느냐고 묻자 최씨는 “고영태의 증언 자체는 완전 조작”이라고 답했다. 의상실 영상과 관련해 고영태의 명의로 빌려 의상실을 사용했다는 질문에도 “고영태의 진술은 진실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최씨는 검찰과 특검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최씨는 “검찰과 특검 수사가 너무 강압적이라서 사람이 거의 죽을 지경”이라며 “특검도 못 나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최씨는 “저 나름대로는 충신으로 남고자 했는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증인 신문 도중 정유라씨가 최씨의 친 딸이 아니라는 세간의 의혹이 언급되자 최씨는 또 한번 울먹였다.

안종범 “총수사면·재단 인사 관여, 모두 대통령 지시”

안종범 전 수석 역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사건 5차 변론에 출석했다. 안 전 수석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기업 총수의 사면과 미르·K스포츠재단의 인사에 관여한 사실을 재차 인정했다.

▲ 한국일보 5면 기사 갈무리.
안 전 수석은 “SK이노베이션 김창근 회장으로부터 최태원 회장 사면 부탁을 받고 박 대통령에게 건의한 뒤 대통령 지시로 광복절 특사 사실을 SK측에 미리 알려줬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안 전 수석은 또한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문제 관련해서도,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지난해 검찰의 롯데그룹 압수수색 직전 K스포츠재단에 대한 롯데그룹의 70억 추가 지원을 중단하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전했다. 안 전 수석은 “(작년) 4월 박 대통령에게 (롯데의 지원 중단을) 건의했다”며 “나중에 (박 대통령이) ‘중단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 지시로 황창규 KT 회장에게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의 지인을 채용해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인정했으며 박 대통령이 미르재단 설립 전 재단 이름과 임원 명단을 미리 알려줬고 재단임원으로 내정된 사람들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사드 부지 교환 난항, 롯데 중국 보복 의식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부지 확보를 위한 국방부와 롯데 측의 부지 교환 계약 체결이 난항을 겪고 있다. 사드 배치 부지인 경북 성주군 롯데스카이힐골프장(성주골프장) 소유주인 롯데 측이 부지 제공을 앞두고 중국의 보복 조치가 가시화하자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롯데 측이 17일 국회와 언론에 감정평가액을 공개하자는 국방부 제안에 반대하고 내부 이사회도 개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국방부와 롯데 측은 성주골프장과 경기 남양주에 있는 군용지를 교환하기로 합의하고 두 땅의 가치를 산정하는 감정평가 작업도 마무리했다. 롯데 측이 이사회를 열어 감정평가액과 교환계약을 승인하는 절차만 남았는데, 롯데 측이 이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

또한 경향신문에 따르면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의 회동을 제안했지만 롯데 측이 응하지 않았다. 다만 국방부 대변인은 “한 장관과 신 회장의 접촉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서도 “이미 결정된 사안인만큼 롯데 측이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의 입을 빌려 “롯데 입장에선 ‘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로 그룹 경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데다, 사드 문제로 면세점 등 대중(對中) 사업에도 지장을 겪고 있고, 정권 교체 가능성이 상당한 상황에서 현 정권의 사드배치에 비판적인 야권의 눈치도 봐야 하는 ‘3중고’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사드 배치에서 또 다른 변수는 정치권의 상황이다. 한국과 미국 당국은 사드 배치를 앞당겨 오는 7~8월 쯤 끝낼 수 있도록 합의한 바 있는데 이보다 전에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정권교체가 이뤄지게 되면 사드 배치 합의 자체가 뒤집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일보는 정부 소식통을 통해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사드 배치 절차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무리하게 추진하다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사드배치 문제가 여론에 떠밀려 가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지난 14일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 건물에 ‘노 사드’라는 문구를 레이저로 쏜 것을 사례로 들며 “최근의 헌재의 탄핵 심리나 특검 수사만이 아니라 한·일 관계 등 외교 문제에까지 정부 기관들이 대중 정서에 떠밀려 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어떤 법적 위임도 받은게 없는 단체들이 무소불위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책임 없는 대중 정서가 법 위에 올라가면 결국엔 모두가 피해자”라며 광장의 민심에 밀려 법치가 허약해진다는 논리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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