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와대에서 성장하고 국가관을 키웠다. 청와대는 누구나 다가갈 수 있고,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 청와대 개방은 형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과 마음의 눈으로 통할 때 청와대 주인은 비로소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5월 발행된 “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추천사를 실었다.
10년 전 청와대 개방을 주장했던 박 대통령이 청와대 권력을 사유화한 최순실 국정농단의 공범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언론을 통해 비선실세가 드러났고 박 대통령의 민낯이 폭로됐지만 정작 청와대 기자들은 감시·견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임기 내내 불통으로 국민을 대했던 박 대통령에게 언론은 도구에 불과했다. 국민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매개가 아닌 국정 홍보와 자화자찬을 쏟아내는 스피커 정도로 생각했다.
적확한 지적이다. 하지만 청와대 기자들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청와대 권력의 사유화를 견제하지 못했다. 짖지 않는 개는 무섭지 않다.
이 와중에 박 대통령이 설 연휴 전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자리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일방적인 신년 기자간담회에 비난이 쏟아졌는데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마이웨이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기자회견이나 토론 등 다양한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인 상태이기 때문에 주중을 피한, 설 연휴 전 마지막 휴일인 22일께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 기자들이 이날 박 대통령 기자회견에 온전히 참석할진 미지수다. 무엇보다 청와대 기자단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일부 기자들과 데스크들은 보이콧도 고심하고 있다.
종합일간지의 한 편집국장은 “지난 간담회처럼 기자들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누가 봐도 소통이 불가능한 환경이라면 불참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검찰과 특검,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발언은 최순실 손을 거쳐 완성됐다. 청와대 기자들은 최순실의 생각을 받아적은 모양새가 됐다. 또 청와대 조리장이 알았던 비선의 존재를 기자들은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한국 상황과 대조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기자회견에서 주목받은 짐 어코스타 CNN 기자다.
트럼프 당선인을 둘러싼 의혹에 짐 어코스타는 “질문할 기회를 달라”고 끊임없이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과 설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장면에 누리꾼들은 한국의 청와대 기자들을 떠올렸다. 국민들은 어떤 언론들이 다시 병풍 역할을 자처할지 주시하고 있다. 자기 해명만 내뱉을 박 대통령과 한판 붙어볼 청와대 기자가 한국엔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