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인천 동구 금곡동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최근 tvN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신-도깨비'의 극중 배경으로 나온 '한미서점' 덕분에 관광객이 늘었다. '도깨비'의 주인공들이 헌책방에서 만나고, 책을 읽는 장면이 3회와 8회 등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 tvN '도깨비' 3화.

다른 헌책방 거리는 어떨까. 서울에서 동묘앞과 함께 헌책방이 모여있는 신촌 일대 헌책방거리의 사정은 좋지않다. 현재 홍대-신촌 일대에는 ‘공씨책방’, ‘글벗서점’, ‘숨어있는 책’, ‘우리동네 헌책방’ 4군데 헌책방이 있다. 하지만 공씨책방의 경우 건물주와의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고 우리동네 헌책방의 경우 가게를 내놓은 상태로, 신촌의 헌책방들이 하나둘 사라질 위기다.

위기 가운데 신촌의 헌책방들은 '신촌 헌책방 연대’, ‘공씨책방 반상회’ 등 모임을 통해 신촌 헌책방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는 시도를 하고 있다.

▲ 신촌 '숨어있는책'에 붙어있는 신촌 거리 헌책방 지도. 사진=정민경 기자

상황이 가장 열악한 곳은 ‘공씨책방’이다. 20년 전 낸 보증금도 보전 받지 못할 상황이다. 지난해 9월 공씨책방 건물주가 바뀌고 새 건물주는 공씨책방에 10월 임대차 계약이 끝났음을 알려왔다. 건물주는 ‘지금이라도 나간다면 소송비용 정도는 쳐주겠다’는 입장이다. 소송이 진행되지 않게 나가주면 소송에 쓸 돈을 책방에 주겠다는 것이다. 명도소송에 드는 소송비는 일반적으로 500만 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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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의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나가라’는 등기를 받은 이후로 세 달이 지났으나 새 건물주를 만날 수 없었다. 게다가 지하창고를 바로 비워줘야하는 상황때문에 별도의 창고를 구하느라 월세 부담은 더해졌다.

공씨책방의 최성장씨는 “사실 계속 이렇게 언론에 나가는 것도 부담스럽다”라며 “건물주와의 관계도 그렇고, 마치 우리가 돈을 노리고 떼를 쓰는 사람처럼 보일까 두렵다”고 말했다. 최씨는 “대단한 투쟁, 싸움 같은 것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라며 “그저 원만하게, 기본 상도덕에 맞게 일이 처리되었으면 한다. 그저 원만하게 해결되었으면 싶다는 생각뿐”이라고 전했다.

▲ 서울 신촌의 공씨책방 전경. 책방앞에서 최성장씨가 서있다. 사진=정용택 영화감독 제공

공씨책방과 두블록 떨어져있었던 ‘글벗서점’이 있던 자리(서대문구 신촌로 17)에는 CJ ‘올리브영’이 들어섰다. 글벗서점은 11월부터 이사준비를 해 공씨책방 맞은편 신촌로 10길에 12월 다시 문을 열었다.

글벗서점 대표 김현숙씨는 “책을 옮기는데만 한달이 걸렸다. 이사 비용이 많이 들었고 힘든 일이었으나 자원봉사자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라며 “그 많은 책을 가지고 또 이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 '글벗서점'이 10년간 있던 신촌로 17에는 CJ 올리브영이 들어섰다. 사진=정민경 기자
헌책방의 특성상 이사는 어렵다. 이사 업체에서 가장 기피하는 이사가 ‘책 이사’다. 서점같이 책이 많은 이사 건은 보통 서울에서 서울로 옮기는 경우에도 1000만원 정도가 든다. 만약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 수백만원이 추가된다. 헌책방이 쉽게 자리를 옮길 수 없는 이유다. 

건물주와의 갈등도 풀기 어려운 문제지만 매출 자체가 줄어든 헌책방이 살 길은 요원하다.독서인구 자체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2011년 알라딘 인터넷책방이 중고서점을 열고 성공한 뒤 예스24, 인터파크 등도 중고책 시장에 뛰어뛰어들면서 더욱 사정이 어려워졌다. 알라딘은 현재 서울에만 13군데의 중고서점을 냈다. 중고책 물량공급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참 아이러니한 게, 알라딘 때문에 매출이 확 줄었는데 지금 나도 알라딘에 책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신촌의 헌책방 A사의 이 아무개씨(52)는 헌책들을 박스에 포장하면서 말했다. 신촌에서 3년 동안 헌책방을 운영했으나 매출은 월세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가게를 내놨다.

▲ 신촌의 A 책방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박스에 정리된 책들. A 책방은 3년간 신촌에서 헌책 장사를 했으나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가게를 내놓은 상태다. 사진=정민경 기자
이씨는 경기도에 창고를 두고 인터넷으로 헌책을 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씨는 “알라딘을 원망하면서 알라딘에 책을 팔 수 밖에 없고, 인터넷으로 서점을 한다 해도 알라딘 밑으로 들어가야 할 거다”라며 “파지로 책을 팔면 1권에 10원꼴이고, 알라딘에 팔면 500원을 주니 알라딘에 팔 수 밖에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합정동에 3000평짜리 교보문고가 들어온다는데, 작은 서점들, 헌책방의 사정은 더 나빠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교보문고는 광화문 본점보다도 큰 신규 매장을 합정동 푸르지오 상가에 입점할 계획이다. 올해 4월 3000평 규모로 생기는 교보문고는 홍대-신촌 일대의 작은 서점, 헌책방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촌에 온지 7년이 된 ‘숨어있는책’의 경우, 인문사회서적으로 특성화가 돼있어 다른 서점보다 타격이 적을 거라 평가되지만 사정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숨어있는책의 이미경씨는 “월세는 2~3년 주기로 오르고, 관리비는 점점 느는데 매출이 느는 것은 아니다”라며 “요새 송인서적의 부도건 등 출판계 사정이 아주 안좋다. 헌책방이 직격탄을 맞는 것은 아니지만 출판이 잘돼야 헌책방도 잘된다”라고 말했다.

▲ 신촌의 '숨어있는책' 입구. 사진=정민경 기자

이씨는 다른 책방의 사정에 대해서도 “책 이사가 가장 번거롭고 비싼데, 보증금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이사 비용 정도는 챙겨줘야 나갈 엄두가 난다”라며 “책을 팔아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것을 말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신촌의 헌책방이 위기인 가운데 헌책방에 다시 숨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공씨책방을 지키려는 이들이 모여만든 ‘공씨책방 반상회’에서는 정기적으로 낭독회와 함께 인문학강의를 계획하고 있다. 이런 시도의 일환으로 정현석 소설가는 ‘공씨책방’을 만든 고 공진석씨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안쿠’를 연재하고 있다.

▲ 공씨책방에서 열리는 낭독회 포스터. 사진=공씨책방 페이스북
정현석 소설가는 “공씨책방이 퇴거명령을 받은 상황을 알리고 싶었는데 소설이라는 특성상 너무 늦게 알려질 것 같아 인터넷 연재 형식으로 소설을 쓰게됐다”라며 “‘신촌헌책방연대’를 만들어 각종 행사나 전시 등을 계획하고 있는데 단기적으로는 공씨책방의 매출에 도움이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신촌의 헌책방을 다시 살리는 기획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서도 헌책방과 중소서점을 지원하는 ‘한 평 시민 책시장’ 기획을 열기도 했다. 헌책 등을 서울광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기획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한 평 시민 책시장’에는 헌책방 20여곳이 참여했다. 서울도서관 측은 10일 미디어오늘에 “광장을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정기적이지 않다보니 정기적인 행사로 자리잡기 원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 서울시청에서 열린 '한 평 시민 책 시장'

헌책방 측에서는 판매를 돕는 수준에 그쳐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지원을 바라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도서정가제를 실시하여 소규모 서점을 보호해 왔으나 독립서점들이 어려워지자 도서 정가의 5% 이내에서의 할인과 무료 배송을 인터넷서점에게는 금지하는 속칭 ‘반아마존 법’을 통과시켜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정부는 오히려 ‘출판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출판업계의 돈줄을 조여온 사실도 드러났다. 정현석 소설가는 “출판계에 여러 가지 자금이 줄고 우수문예지 출간지원사업 등 사업자체가 없어졌다”라며 “정부가 출판계를 조이면서 출판사는 물론이고 헌책방 등도 책 공급경로가 줄어드는 등 간접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신촌의 A 헌책방 이씨는 “슈퍼마켓의 경우 대형 슈퍼마켓이 들어올 때 제도적으로 조정을 하고, 파는 물품도 제한하는데 책에는 그런 지원이 불가능한 것이냐”라며 “지역 서점 보호 육성 계획이 실효성있게 보완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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