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2015년 5월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 강기훈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유서대필 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릴 만큼 유명한 공안조작사건이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다뤄졌다. 

시민사회단체는 강기훈씨의 구속 직후부터 그의 무죄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를 꾸렸다. 2012년 10월에는 ‘강기훈의 진실과 쾌유를 위한 콘서트’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제 모든 양심을 걸고 강기훈은 무죄”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강씨는 사건 이후 24년, 재심 청구 7년 만에 무죄를 확정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일반 형사사건의 재심은 어떨까. 게다가 범인으로 지목된 이가 많이 배우지 못하고 장애가 있거나 가난하다면?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가 펴낸 ‘지연된 정의’는 그런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 3인조,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최성필씨, 친부 살해 혐의로 무기수로 복역  중인 김신혜씨가 그 주인공이다. 

▲ 지연된 정의, 박상규 박준영 지음, 후마니타스
“돈이 있으면 변호사를 구했겠죠. 돈이 없으니까 닭을 잡은거죠”

1999년 2월6일 새벽4시께 전북 삼례 나라슈퍼에서 벌어진 강도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세 명 중 한 명인 최대열씨는 어렸고 가난했고 지적장애가 있다. 그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쓴 박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머지 두 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자님 기사 잘 봤는데유. 내 이름은 최대열인데 왜 기사에는 최재필로 나와유? 글구 우리 친구들 이름도 죄 틀리셨데유. 기자님, 내 이름도 몰라유?” 가명이 뭔지도 모르는 스스로를 제대로 변호할 수 있었을까. 그는 교도소에서 4년을 복역했다. 

2000년 일어난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최성필씨는 어렸고 가난했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다. 최씨가 범인으로 몰리자 엄마는 닭 두 마리를 잡아 익산경찰서로 갔다. 행여 국물이라도 흘릴까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갔다. 

“아니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합니까? 돈이 있으면 변호사를 구했겠죠. 돈이 없으니까 닭을 잡은거죠.” 엄마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최씨는 1심 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교도소에서 10년 가까이 살고 2010년 3월 3.1절 특사로 출소했다. 

▲ '가짜 3인조 살인범의 슬픔' 스토리 펀딩 화면
한국 사법 역사상 최초, 복역 중인 무기수의 재심 

김신혜씨는 줄기차게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아버지는 2000년 3월7일 전남 완도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자식들을 의심했다. 아버지의 잦았던 술주정과 지나치게 많이 가입된 보험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찰은 김씨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물증이나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다. 김씨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고모와 고모부의 진술은 계속해서 바뀐다. 경찰은 김씨의 집을 불법으로 압수수색하고 공문서는 위조했다. 

박 기자와 박 변호사의 재심 프로젝트는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3인조는 재심을 통해 17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익산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의 최성필씨도 재심을 거쳐 1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신혜씨의 재심 여부는 현재 광주고등법원에서 판단 중이다. 1심이 재심을 결정했으나 검찰이 항고한 결과다. 복역 중인 무기수의 재심은 한국 사법 역사에서 최초다. 지금은 대한변호사협회가 변호인단을 구성해 김씨의 재심을 돕고 있다. 

▲ 김신혜씨 옥중영상. 사진=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553) 화면 갈무리
“그냥 보면 안 보이는 걸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야” 

박 기자는 오마이뉴스에서 10년을 일하다 그만뒀다. 서울 사대문 밖의 이야기를 찾겠다고 나섰다. “사대문 안은 채에 걸러진 알갱이들 같은 엘리트와 권력자들 중심으로 짜인 세상이다. 살면서 자주 만난 익숙한 존재들이 사대문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많은 언론이 있지만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하고 어렸던, 장애가 있는, 그래서 범인으로 몰리고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던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언론은 드물었다. 진보 성향의 언론도 마찬가지다. 

가령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이 강기훈 사건의 배석 판사 부국인씨를 윤리위원장으로 내정했을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삼례 3인조 사건에서 배석 판사였던 것은 누구도 비판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대문 밖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박 기자와 박 변호사의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박 변호사는 “변호사나 기자나 그냥 보면 안 보이는 걸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줘야한다”고 말한다. 지금 기자들은 과연 그럴까.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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