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은 한국을 상징하는 단어가 돼버렸다. 보통 해외여행을 하면 외국인으부터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북한과 관련된 내용이었지만 최근 질문이 바뀌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조정하는 순siri가 fortune-teller(점쟁이)냐"

국격의 수준이 한참 떨어져 버린 것을 조롱하는 듯한 질문에 당혹스러울 수 있다. 특히 수출기업 대표들은 바이어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말한다. 한국 브랜드 가치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일본이란 나라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브랜드 이미지가 방사능이 돼버렸다. 우리나라 브랜드 이미지는 어떻게 될까. 어느 순간 중국의 일반 국민들까지도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그때는 끝장이다. 현재 한국은 대통령의 비리, 정부의 비리, 기득권 비리, 한국의 부패 이미지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13년 회사를 세워 화장품을 수출하고 있는 심재성 대표이사(제이앤피인터내셔널)의 말이다.

제이앤피인터내셔널는 마리앤유(Mari & U)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13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처음부터 수출을 목표로 한 회사다. 국내에선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홍콩과 대만에서 꽤 알려진 화장품 브랜드다. 그런데 100억대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올해 빨간불이 켜졌다. 대중국 시장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 심재성 제이앤피인터내셔널 대표이사. 사진=이치열 기자


심 대표는 "내년 상반기 5월경 한국의 화장품 시장은 대폭락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중국 수출 화장품 시장에서 '보세구역'(외국물건 또는 일정한 내국물건에 대하여 관세법에 의하여 관세의 부과가 유보되는 지역)이라는 제도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온라인상 직구로 중국에 화장품을 판매할 수 있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2017년 5월부터 보세구역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더구나 오프라인 상에서 화장품을 팔기 위해선 중국 당국의 위생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제품 하나를 통과하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걸리고 200여만원의 비용이 든다. 최근엔 위생허가 통과까지 1년으로 기간이 늘어났고 비용도 400여만원으로 상승했다. 마리앤유 메인 제품 8개도 1년 2개월째 위생허가를 못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보세구역 제도마저도 폐지되면 모든 제품의 수출은 중국 당국이 정해놓은 시간표와 비용에 제약을 받고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게 심 대표의 생각이다. 심 대표가 내년 5월을 한국 화장품 시장의 폭락 시점으로 예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 대표는 "대기업들은 대량으로 제품을 만들어 팔면 되지만 중소수출기업들은 보세구역 제도가 폐지되면 중국 당국이 정한 시간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수출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1%에 달한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의 폭락은 그야말로 관련 업계의 재앙이 될 수 있다.

사드 배치 문제에 이어 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 중소수출기업들은 비지니스 비자 발급부터 통관 문제까지 크고 작은 제재를 받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제재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슈로 인한 문제라고 추측할 뿐이다. 

양말 수출 기업인 원더삭스 최흥식 대표는 중국에 있는 21개 매장 중 14개 정도를 닫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도저히 매출 감소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더삭스의 중국수출비율은 전체 중 30%를 차지하고 있고, 올해 전체 매출 20%가 중국시장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최 대표는 "사드 문제 때문에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냉랭하다. 중국 바이어쪽은 구매하는 걸 망설이는 게 아니라 아예 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한류 콘텐츠도 최근 제재를 받고 있는데 양말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글 글자를 넣은 디자인, 태극문양이나 무궁화가 그려진 양말은 한류 스타의 국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구매했지만 지금은 이런 디자인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원더삭스 최흥식 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최 대표는 "다른 디자인으로 대체하고 있지만 중국 쪽에서 한국 제품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존에 약 15% 정도 한국 디자인 양말이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하면 5개월 전부터는 양말이나 의류 계통에서 이 같은 프리미엄이 다 빠져 나갔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양말 제품의 성분 검사에 문제가 없다는 증명서를 제출했는데도 중국세관에서 물건을 잡는다. 통과를 시켜주지 않는다. 여름 양말을 팔려면 적어도 3개월 전에 도착을 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세관에서 잡고 통과를 안해주면서 판매 시점을 놓쳐버렸다”면서 "보통 기타 자료를 추가로 첨부해서 주면 업무처리를 해줬는데 일단 기다리라고만 하고 통관 중이라는 얘기만 한다. 한 달이 지나면 수출하는 입장에선 애가 탄다. 계절이 지나서 제품이 도착을 하면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GANEKO UNIT라는 브랜드로 안경과 선글라스 테를 수출하고 있는 김정호 대표의 사정도 비슷하다. 중국 상해에서 거래처가 800곳에 달해 공급 요구량이 많지만 최근 2000여만원 정도 하는 샘플링 제품조차도 통관을 못하고 있다. 300곳의 거래처가 있는 북경에서도 5억원 물량을 '오더' 받았지만 세관에서 걸릴 것을 감안해 아직 요구 물량에 맞춰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 GANEKO UNIT 김정호 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비자발급 문제도 심각하다. 네일아트 아카데미 기업인 메리앤지는 중국 쪽 미용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수강생을 모집하고 네일아트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보통 5박 6일 일정으로 수강생이 국내로 들어오면 사흘 정도 네일아트 기술 수업을 하고 나머지 일정은 관광을 하는 형식이다. 1인당 300만~500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다. 11월 20여명 수강생이 모집됐지만 중국 쪽에서 수강생들의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아 취소됐다. 4000~5000여만원의 매출이 눈 앞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최근엔 메리앤지의 네일아트 브랜드를 중국에 프랜차이즈하기로 했고, 수억원의 게런티를 받기로 돼 있었지만 "상황 정리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며 사업이 무기한 연기됐다. 

메리앤지 김영빈 대표는 "사드 문제 이후로 관광비자, 비니지스 비자 모두 들어오는 게 다 막혀 있다. 최순실 사태로 전국이 어수선하다 보니까 (프랜차이즈 중국 입점)시점을 미루는 것 같다"며 "저희가 중국으로 직접 가서 기술을 전수하기도 하는데 기다려달라고만 한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사드 문제하고 최순실 문제로 증폭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심재성 대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보통 수출기업 대표들은 1년치 비자를 한꺼번에 받는 복수 비자를 발급 받았는데 최근 복수 비자를 발급 받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입국할 때마다 받아야 하는 단수 비자만 가능한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심 대표는 "사드 배치 이슈가 터진 후 며칠 후부터 복수 비자 발급이 되지 않고 있다. 비자를 신청하면 택배로 이틀이면 받았는데 이제는 나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산업 관계자를 초청해 여는 국제대회 실정을 보면 심각성은 더한다. 지난 11월 초 국제 미용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한 미용단체는 3000여명의 중국인 산업 관계자를 행사에 초청하고 코엑스를 행사장소로 잡았지만 중국인 관계자들의 참가가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보통 부스 하나당 드는 비용은 300여만원이다. 3000명 사업자가 왔다고 가정하면 수십억원의 돈이 날아가버린 것이다. 당시에도 사드 배치가 문제가 돼 뷰티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상징적인 일로 기록됐다. 

김정호 대표는 "내년 4월에 광학 전시회가 있다. 일년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 부스를 꾸밀 소품까지 다 만들었다. 비용을 떠나 브랜드를 널리 알리기 위한 중요한 기회"라며 "중국 시장 때문에 12개 부스를 냈다. 모두 7000여명 바이어들이 오는데 절반 가량이 중국분이다. 그런데 이런 사태가 지속되고 들어오지 않게 되면 저희에게 미칠 영향을 엄청나게 크다. 솔직히 중국 시장을 공략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영빈 대표는 "헤어 및 네일아트 쪽에서도 한국에서 대회를 열면 상을 타기 위해 많이 왔다. 강남에서 열린 한 대회에 6천명 정도 참가하기로 했는데 1700명 정도 밖에 안 왔다고 한다. ○○호텔 쪽에서 바이어 매칭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무산된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 메리앤지 김영빈 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중소기업 대표들은 일련의 정치적인 문제들이 터지면서 수출에 강점을 보이고 있는 산업을 도산시키는 수준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심 대표는 "중소기업이 입는 피해는 즉각적이다. 가장 큰 사드 문제나 최순실 사태는 코리아라는 브랜드 가치에 대한 하락으로 직결된다"면서 "한국 브랜드는 한류와 함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중소기업들이 시장에 진출하고 선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런데 정치적인 이슈로 코리아의 브랜드 이미지가 돌아섰다. 부정적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독자적인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중국 수출은 그냥 끝"이라고 비판했다.

최흥식 대표는 "한류는 국가가 주도한 게 아니다. 일반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한 것인데 정부가 마치 자신들이 한 것처럼 해놓고 편승해서 제도들을 만들어놨다"면서 "후발주로 중소기업들이 혜택을 본 것도 있지만 망쳐놓은 것은 기업이 아니다. 시작은 기업들이 했지만 망쳐놓은 기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 대표의 말에는 정부에 대한 원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도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게 중소기업 대표들의 진단이다. 

심 대표는 "최순실 사태가 터지고 이틀 후부터 바이어로부터 여러 질문을 받았다. 포츈 탤러(점쟁이)가 대통령을 조정한 게 맞느냐라고 처음엔 흥미있는 소재로 다루더니 이제는 매우 구체적으로 국내 사정을 묻고 있다. 지금은 대통령의 비리, 정부의 비리, 한국의 부패 문제로 확산돼 버렸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작은 회사도 해외에 나가면 동등해질 수 있다. 브랜드 코리아를 가지고 제품과 기술력으로 경쟁하면 된다. 코리아라는 프리미엄을 붙이고 가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은"이라며 "대한민국이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 악화되면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을 것이다. 아이엠에프와 비교되지 않는다. 긍정적인 브랜드 가치를 잃어버리면 끝이다. 한국의 노동인구 중 4%만 대기업에 속해있는데 이를 제외한 중소기업이 망가지면 내수 경기도 망가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김영빈 대표는 "경각심을 실제 느껴야할 사람들이 못 느끼고 있다. 고장난 차를 수리할 생각은 하지 않고 목적지만 갈 생각을 하고 있다. 문제는 넥스트(다음)를 지금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국가 이미지를 위해 사절단이든 뭐든 파견해서 개선시켜야 한다. 부정적 여파는 즉각적이지만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촛불 집회는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방어하고 있다. 중소기업 대표들은 하나같이 촛불 집회가 그나마 한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 대표는 "다행히 촛불 집회가 코리아 브랜드의 추락을 국민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떠받고 있는 상태"라고 했고, 최 대표는 "바이어로부터 너희 민족은 대단하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과 만난 4명의 중소기업 대표들은 한 TV 방송의 강연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서로 인연을 맺었다. 언론은 이들을 ‘성공창업가’ 로 소개했다. 하지만 사드 배치 문제가 터지고 최순실 사태에 이르기까지 중소기업 대표들의 어려운 사정을 전달하는 언론은 보이지 않는다.

심 대표는 “언론 역시 정치적인 이슈로 이 사태만 다룰 뿐, 우리와 같은 중소기업들의 입장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전달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며 “대중 무역에 의존하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사드나 최순실 문제로 큰 타격을 받고 있고 그 타격은 더욱 커질 것인데 왜 이런 이슈를 중요시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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