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11월 29일자 제3차 국민담화는 보다 정교하고 절절해보인다. “국회에 맡기고” “임기단축”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 등 얼핏 보면 대통령이 국민의 촛불에 항복선언을 하는 것 같다. 일부에서는 벌써 감동하며 “탄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정치적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국민은 이미 앞에 나온 담화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불만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근혜의 담화 치고는 꽤 긴 편에 속하는 이 전문에는 1, 2차와 달리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모든 것 내려놓겠다”는 담화를 곧이 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그동안 박근혜는 국민을 얼마나 많이 기만해왔던가. 돌아서서 금방 자기가 한 말조차 부정하는 그런 황당한 일을 당하고도 이런 담화 정도에 감동받는 국민이라면 얼마나 더 당해야 정신차릴 수 있을까.

이번 담화는 청와대내의 수석들과 변호사 등이 총동원돼 만들어 준 정교한 담화로 박근혜는 그냥 읽었을 뿐이다. 이 전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몇가지 두드러지는 법리적, 정치적 논리가 숨겨져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1월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사진=청와대
첫째, 자신의 법적 책임을 부정하는 법리적 논리가 두드러진다.

“①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②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③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입니다.“

“①②”는 설혹 범죄행위로 밝혀지더라도 나는 사심이 없었고, 공적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고 그 과정에 어떤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않았기 때문에 법적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리를 깔고 있는 주장이다. “③”은 ‘최순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잘못은 인정한다. 그러나 잘못은 최순실이 범한 것일 뿐 나와는 상관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국민을 향해 진솔한 담화를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자신의 정당화, 주변의 책임지우기식으로 자신을 합리화 하고 있다. 거짓말은 겉은 그럴 듯하지만 설득력은 없다. 실체가 드러나면 더 큰 공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촛불의 전국화, 촛불의 횃불화가 대변한다.

둘째, 정치적 노림수를 숨기며 적진을 흔드는 회심의 ‘개헌탄’을 던졌다.

자신의 운명을 국회에 맡기는 듯한 아래 표현을 보라.

“④ 저는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⑤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말씀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④⑤”에서 “나의 임기단축, 진퇴문제는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말은 “개헌하라”는 주장이다. 개헌을 하지않고 대통령 임기를 단축할 방법이 없기때문이다. “일정과 법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주장은 반대로 지금은 촛불이 무서워 그렇게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주장이다.

마치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걱정하는 듯 하며 모든 것을 국회의 손에 넘기는 듯한 내용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않다. 개헌이 단기간에 쉽게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개헌 그 과정내내 자신은 대통령으로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국민이 촛불시위를 하며 물러나라고 해도 국회로 책임을 떠넘길 수가 있다. 여야가 분열하여 게이트 정국에서 개헌정국으로 전환되는 것은 또 다른 기회가 된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불통의 대통령으로 국민의 기대와 희망을 철저히 짓밟고 있다.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루 속히 대한민국이 혼란에서 벗어나 본래의 궤도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11월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화면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대다수 국민은 범죄 피의자 대통령, 거짓말쟁이 대통령은 이제 그만 물러나야 혼란이 끝날 것으로 요구하고 있는데, 자신을 중심에 둔 채 혼란을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틈만 나면 부르짖는 애국심이 있다면 자신만 그만 두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국민의 소리를 듣지못하고 있거나 친박들이 방해하고 있다.

박근혜는 국민을 향해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불렀지만 조금도 존경할 마음이 없음을 세차례에 걸친 담화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주권자를 두려워 하는 지도자는 사죄담화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국회로 책임을 던지며 반전을 꾀하지는 않는다.

최순실없는 박근혜를 친박 새누리당 의원들이 병풍으로 에워싸고 과거와 다름없이 불통 대통령, 국민무시담화를 거듭 만들어내도록 반복하고 있다. 이 정도면 국민과의 선전포고 박근혜담화로 밖에 볼 수 없다. 얼마나 국민은 더 속아야 하나. 참 나쁜 대통령의 나쁜 참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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