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질서 있는 퇴진의사를 밝힌 가운데 언론계에서는 박 대통령과 같이 가라앉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지지율 4%와 200만 촛불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민심은 대통령을 비호했던 언론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보도 공정성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
MBC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았던 박상권 기자와 이정민 아나운서는 최근 앵커직 사의를 표명했다. 임영서 주말뉴스부장도 보직사퇴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사의를 표명한 시점은 대규모 촛불집회(12일) 이후인 14일께로 알려졌다. MBC기자들이 시민들의 뭇매를 맞고 현장에서 쫓겨나는 가운데 지난 12일 주말 뉴스데스크에서 MBC기자가 MBC로고를 뗀 마이크를 쥐고 촛불집회 현장 리포트에 나섰던 사실이 MBC 안팎에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지난 14일~18일 KBS 구성원 4661명을 대상으로 고대영 KBS사장 취임 1년 평가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 1425명 중 94.9%가 최순실 게이트 관련 KBS 방송을 두고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 24일 시민 300여명은 KBS 사옥 앞에서 촛불을 들었다. 집회에 참석한 고교생 고송이씨는 “19일 광화문에서 공영방송은 국민에게 쫓겨났다”고 말하며 “언론인들이 우리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이 뭔지 한 번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고대영 KBS 사장은 29일 미방위에 출석해 “광장의 목소리를 보고 듣고 있다”면서도 “KBS는 국민의 편에서 방송해왔다”고 주장했으며 JTBC 시청률 약진을 두고서는 “특종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밝혔다. 자사 보도에 대한 반성의 모습은 없었다. KBS본부 노조는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은 13년 만에 공정보도위원회 활동을 재개했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노보를 통해 “최근 10년간 내부 검증 기제가 취약했다. 기사의 공정성 시비는 (기사) 물 먹는 것보다 치명적이어서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며 “신뢰도 유지를 위해 노사가 구체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노조위원장으로 출마한 23년차 박준동 기자도 공정보도 이슈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의 또 다른 기자는 최순실 게이트를 두고 “역시 언론이 살 길은 살아있는 권력 견제라는 걸 실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JTBC를 앞세워 이미 조선·동아일보와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29일자 인사에선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JTBC보도국장으로 승진했다.
조중동이 보수정부에 날을 세우며 비판하는 장면은 1997년 김영삼 문민정부 이후 20여년만의 일이다. 당시 대통령 최저지지율이 5%(김영삼)와 4%(박근혜)라는 점에 비춰보면 이 같은 움직임은 시류에 편승한다는 한계점을 지적받을 수도 있지만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린 주체가 이들 언론이란 점에서 향후 보수언론의 보도 자율성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