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절차를 밟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국무총리 문제로 고심이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 재적의원(300명) 과반수 발의와 재적의원 3분의 2인 200명 이상의 찬성이라는 대통령 탄핵 가결 조건을 채우면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의 최종 탄핵 심판이 나올 때까지 국무총리가 대행을 맡게 된다. 

문제는 이대로 탄핵 발의안이 가결되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면서 국정주도권을 쥐게 된다는 점이다. 황 총리의 권한대행은 사실상 박 대통령을 탄핵시킨 국민 여론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여야가 합의한 총리를 내세우게 되더라도 차기 총리 합의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탄핵 발의안이 가결되더라도 어떤 인물이 총리를 맡느냐의 문제를 놓고 계산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애초 제안했던 국회 추천 총리 임명 방침을 청와대가 철회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 블랙홀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21일 청와대는 국회추천 총리 제안이 유효하냐는 질문에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서 야당이 계속 거부를 해왔고, 또 여러 주장이 나오는 것 같은데 그런 상황이니까 좀 지켜봐야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국회 합의 총리 제안을 철회하는 것은 명분상 맞지 않지만 여러 상황 변화를 들어 강경하게 버티면 제안을 관철시킬 방법은 마땅히 없다. 

선택지는 거국내각구성을 위한 합의 총리를 끝까지 주장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황교안 국무총리의 권한 대행을 지켜보거나 그리고 김병준 총리 내정자를 수용하는 방안이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 8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의 좋은 분을 추천해 주신다면, 그분을 총리로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김병준 총리 내정 카드는 접는 쪽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 이후 탄핵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청와대가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살아나는 분위기다. 

▲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 내정자가 11월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김병준 총리 내정자는 현재까지 "여‧야‧청이 합의하면 사퇴하겠다"는 뜻을 끝까지 굽히지 않으면서 내정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김 내정자가 최근 자신이 총리를 맡는 것은 유효하다는 뜻을 밝힌 것도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김 내정자는 매일경제와 대담에서 "총리 리더십이 살아날 수 없는 내각이다. 그 속에서 총리가 만신창이가 돼서 나올 가능성이 100%"라며 "또한 이 총리를 추대하는 집단은 국정에 책임을 져야 하다. 야당으로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김 내정자는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황 총리한테라도 힘을 실어주든가 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들이나 야당이나 황 총리를 권한대행 체제로 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니까, 동력을 다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두 발언을 종합하면 야권이 국정혼란을 책임을 지지 않고, 황교안 총리 대행 체제를 피하기 위해선 자신의 총리 지명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내정자는 "2선 물러나라, 탈당하라는데. 2선이 뭐가 중요하나. 이미 대통령은 힘이 빠졌다. 새 총리가 들어가서 대통령을 실질적으로 2선으로 물러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자신의 역할이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론에 있음을 강조했다. 

대통령의 최초 제안을 수용하는 모양새이긴 황교안 국무총리 대행 체제를 인정할 수 없고, 여야가 총리 합의로 시간을 끌고 싸울 바에야 김병준 총리 체제로 가는 것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일단,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하루빨리 합의 총리를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청와대가 장기전을 펼칠 전략으로 탄핵 절차를 밟으라고 한 마당에 총리 대행 체제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는 국회 주도로 총리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1월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면담을 하기 위해 의장실로 이동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대표적으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탄핵은 비박의 협력으로 200석 이상 확보가 가능하며 검찰의 최순실 등에 대한 공소장 내용으로 요건은 갖췄다고 판단되지만, 국회가 현재의 총리를 그대로 두고 탄핵을 추진하면 헌재의 결정이 날 때 까지 대통령 권한 대행은 황교안 총리"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그렇다면 야당은 뭘 하죠. 대선 준비를 해야 하나요. 개헌은? 헌법재판소장과 한 분의 재판관은 내년 1월 임기 종료로 후임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인준 부결로 공석 가능성이 크다”며 “그렇게 되면 7명의 재판관 중 6명의 재판장이 찬성해야 탄핵안이 인용된다. 한 분의 재판관은 야당 추천이니 6명 재판관 중 한분만 기각해도 완전 기각으로 끝난다. 그래서 저는 ‘선 총리 후 퇴진’, ‘질서 있는 수습, 질서 있는 퇴진’을 주창해왔다"고 밝혔다.

탄핵소추 절차를 밟더라도 황교안 총리가 버티는 이상 정국을 질질 끌려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가 합의한 총리를 내놔야 한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국회 추천 총리를 선출해야 한다. 나중에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할지라도 일단 총리를 뽑아야 한다. 국회는 국회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탄핵 소추안 절차를 밟더라도 정치권이 국무총리 문제를 매듭짓지 못할 경우 국민의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론은 사실상 대통령을 탄핵시켰는데도 국정주도권은 여전히 박근혜 정부가 가지고 있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 11월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대회지원위원회에 참석한 황교안 국무총리가 모두발언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반면, 황교안 총리 대행 체제로 가는 것이 오히려 국회 합의 총리 제안시 혼란 등 여러 변수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라는 주장도 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인 의견을 전제로 페이스북을 통해 "아무리 야당이 아니라고 해도 총리 추천에 착수하는 순간 청와대는 국회가 대통령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고 선전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금 의원은 "대통령을 대신할 만한 권한을 가진 총리를 추천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또 한판의 전혀 새로운 바둑이다. 야당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고 정치인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서로 자기가 추천하는 총리가 임명되기를 바라면서 이전투구를 벌일 수도 있다"며 "합의해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임명할지도 의문이며 권한 배분과 관련해서 대통령과 사이에 극도의 반목과 혼란이 생길 것이다"고 밝혔다.

금 의원은 "국민들의 힘에 의해서 대통령이 탄핵당한 상황에서 직무 대행을 하는 총리가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겠는가. 이상한 일을 벌이려고 들면 총리마저 탄핵당할 것"이라며 "직무대행을 하게 된 총리는 말 그대로 권한을 대행할 뿐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없다. 고건 총리도 그랬다. 그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총리가 주어진 권한의 범위 내에서 움직이도록 감시하는 것으로 족하다. 야당이 협의해서 총리를 추천하는 일은 혼란만 초래할 뿐이므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금 의원의 주장대로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고 대행을 맡은 고건 전 총리는 국정안정을 최우선시하면서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간 중 정부 인사를 최소화하는 방침을 세웠다.

원포인트 개헌으로 박 대통령의 임기를 올해 말까지로 제한하자는 주장도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불확실한 탄핵의 대안으로 아예 임기를 줄여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하는 방안인데 총리 지명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로 개헌 절차에 착수하고 국회가 개정안을 공고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가 찬성, 의결을 해서 국민투표에 붙이는 방안이다. 하지만 해당 방안은 임기를 보장하는 대통령제에 대한 취지를 거스른다는 점, 그리고 국민투표라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에서 무리가 크다는 지적이다.

권력구조 전체를 바꾸는 개헌을 추진해 대통령 임기를 조정하는 방안도 있다. 이에 대해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저도 개인적으로 찬성을 하고 있다. 만약에 지금 의원내각제였다면 국회에서 의결만 하면 대통령 곧바로 끌어내릴 수 있는 문제"라면서도 "개헌을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데 문제는 최초의 개헌을 던진 게 박근혜 대통령이다 보니까 국민들이 개헌에 대해서 굉장히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개헌에 동력이 없다는 점이 현실적인 한계"라고 말했다. 하지만 개헌 문제는 권력구조 문제와 선거제도 문제 등 여야의 이해득실이 걸려 있어 또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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