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가 5000명을 넘어섰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10월31일까지 접수된 피해신고는 모두 5060명이다. 이 중 사망은 1055명으로 20.8%에 이른다. 언론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피해자 숫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은 1990년대부터 가습기가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품이라고 보도했고 이후에는 가습기에 세균이 번식할 수 있으며 세균이 다량으로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국내에서 앞 다퉈 출시된 이유 중 하나다.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 7기 연구팀이 지난 달 15일 발표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언론 보도에 대한 고찰’ 연구결과에 따르면 언론보도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심층보도보다 ‘발표 저널리즘’이 주를 이뤘고 취재원은 ‘수사기관’이 가장 많았다. 연구 분석 대상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KBS, MBC, SBS 등 8개 주요 언론사였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경우 과학 저널리즘의 영역임에도 과학 저널리즘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기자들의 출입처 제도가 이번 사태 취재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며 “즉 얘기되는 출입처 보도 자료에만 언론이 끌려 다닌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구결과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을 사용하다 2011년 4월 7개월된 아기를 강제출산하고 폐이식수술을 받은 후 2012년1월11일 사망한 윤지영씨.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1. 보도 건수는 동아일보가 가장 많았다

보도가 집중된 시기는 2016년이다. 최초 정부가 발표가 있었던 2011년 8월부터 2016년 7월까지 보도된 전체 기사는 999건인데 이 중 735건(73.6%)이 올해 보도됐다. 2011년 보도된 기사는 75건이다. 문제는 2011년 이후부터 2016년 사이 보도건수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보도건수는 2012년 28건, 2013년은 72건, 2014년은 37건, 2015년은 52건이다. 연구팀은 “이 시기 피해자는 급증했지만 언론은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기사화를 하지 않아 ‘이슈 휴지기’가 됐다”며 “재난 보도에서 사망자 급증은 매우 중요한 요인인데 언론이 이를 도외시했다”고 평가했다.  

같은 기간 보도건수가 가장 많은 언론사는 동아일보(273건)였고 경향신문(213건)이 그 뒤를 따랐다. 경향신문이 2013년 심층·기획 취재를 45건이나 보도한 반면 동아일보는 검찰 수사 내용을 적극 보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는 137건, 중앙은 116건, 조선은 114건이었다. 

▲ 매체별 보도건수. 사진=과학저널리즘대학원 연구실습(KAIST SJRC) 7기
2. 기획·심층취재 보도는 5%

연구팀은 기사 보도 유형을 크게 스트레이트와 기획·심층 보도로 나눴다. 이 결과 전체 대상 999건 중 스트레이트 기사가 774건으로 전체 기사의 77.5%를 차지했다. 사설 및 칼럼이 88건(8.8%), 기획 및 심층보도가 50건(5.0%), 기고 36건(3.6%), 사진 및 영상보도 26건(2.6%) 순이었다. 

5%에 불과한 기획 및 심층취재는 재난 보도 치고 상당히 낮은 수치다. 가령 메르스 사태 당시 기획 및 심층취재는 38%에 달했다. 연구팀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PHMG 등 이해가 어려운 개념을 다수 포함한데다 기자들이 보도자료나 정부 발표 등에 의존하는 습성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획 및 심층 기사를 가장 많이 보도한 언론사는 경향신문(13건)이다. 특히 경향신문은 다른 언론사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주목하지 않던 2013년에 5건이나 기획보도를 했다. 2016년 8개 언론사에서 나온 기획 및 심층보도는 39건으로 늘어났지만 전체 기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5%에 불과했다. 

▲ 매체별 취재원 현황. 사진=매체별 보도건수. 사진=과학저널리즘대학원 연구실습(KAIST SJRC) 7기
3. 가장 많은 취재원은 ‘믿고 쓰는 수사기관’

누구를 취재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안도 다르게 쓰일 수 있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연구팀은 취재원을 △검찰 등 수사기관과 △피해자 △업체 △시민단체 등으로 분류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상 기사 999건에 등장하는 취재원은 1511명으로 기사당 평균 1.5명꼴이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취재원은 ‘수사기관’이었다. 대부분 보도가 수사 결과 내용을 바탕으로 쓰였다는 이야기다. 비율로 따져보면 수사기관이 20.4%(308건), 피해자 17.6(266건), 행정부 15.6(236건), 업체 12.2%(185건), 시민단체 10.1%(152건), 전문가 9.7%(146건), 정치권 8.5%(128건), 외신 0.3%(5건) 순이었다. 

연구팀은 “취재원 수가 평균 1.5명에 그친 것은 다양한 시각에서 사태를 분석하기보다는 단일 취재원에 의존한 스트레이트 기사가 많다는 점을 뒷받침 한다”며 “특히 검찰의 수사 진행과정에서 시점별 이슈가 없었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제대로 다룬 언론사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이할 점은 연도별로 취재원 차이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는 질병관리본부, 보건복지부가 가장 많은 취재원이었지만 2016년도에는 수사기관이 가장 많은 취재원이었다. 2011년에는 보건 분야 기자들이 기사를 썼지만 2016년 검찰 수사 이후 사회부로 담당 부서가 바뀐 것이다. 

이를 두고 연구팀은 “출입처 변경과 함께 언론도 담당 기자가 바뀌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심층보도나 과학적 접근 자체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출입처에 따른 ‘발표 저널리즘’ 보도 관행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언론의 역할과 책임감을 평가할 때도 시사점이 크다”고 지적했다. 

▲ 시민단체들은 2016년 4월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옥시 제품 불패운동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진=이치열 기자
4. 출입처 칸막이에 막힌 보도

출입처 관행은 ‘보도계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기사의 보도계기를 확인한 결과 수사 발표에 의한 내용이 261건으로 전체 기사 999건 중 26.1%를 차지했다. 이어 정부 발표 171건 (17.1%), 피해자 입장 133건(13.3%), 정치권 107건(10.7%), 업체 발표 75건(7.5%) 등이 뒤를 이었다. 

연구팀은 “사태 초기부터 피해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관련 단체의 꾸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공론화 되지 못했던 이유는 출입처 칸막이에 막혔기 때문”이라며 “언론은 취재 역량을 집중하는 데 실패한 뒤 별다른 문제의식이나 관점 없이 이슈 따라가기 보도만 했다”고 지적했다. 

5. 과학 없는 과학보도

가습기 살균제 기사에는 과학적인 검증과 분석이 담겨야 했다. 하지만 연구대상 기사 999건 중 과학적 사실이 포함된 기사는 116건으로 11.6%에 그쳤다. 대부분 언론은 PHMG 등을 단순 인용만 했을 뿐 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거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풀어 설명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이슈가 된 2016년 들어 기사는 쏟아졌지만(735건) 과학적 사실이 포함된 기사의 비중은 오히려 줄어 7.3%에 그쳤던 사실이다. 연구팀은 이와 관련 분석 대상 언론은 아니었지만 과학적 검증에 적극적이었던 프레시안과 베이비뉴스의 보도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환경시민센터와 공동 기획으로 25회 연속 기사를 낸 것을 비롯해 자체적인 분석과 해설,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베이비뉴스는 2014년 포털사이트 다음의 ‘뉴스펀딩’(스토리펀딩)에 관련 기사를 연재해 포털사이드 메인에 자주 노출되는 등 대중적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이유다. 

▲ 매체별 프레임 현황. 사진=과학저널리즘대학원 연구실습(KAIST SJRC) 7기
6. 비판에는 보수·진보 구분 없었다

연구팀은 기사 프레임을 △사실 전달 △비판 △대안 제시 △기타로 나눠 분석했다. 사실전달은 기자회견이나 시위, 보도자료 등의 사실만 전달한 기사다. 비판은 판매 기업이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정부 비판 기사, 대안 제시는 유해 화학 물질의 감독 강화나 사회 안전망 강화, 전문가 책임 강화를 주문한 기사가 해당됐다. 

분석 결과 전체 기사 999건 중 사실전달 프레임이 491건으로 전체 기사의 절반가량(49.1%)을 차지했다. 비판 기사는 441건(44.1%)으로 그 뒤를 이었다. 비판 대상은 행정부 비판이 196건으로 가장 많았고 업체 비판이 191건, 전문가 비판 23건, 수사기관 비판 13건, 언론 비판 4건으로 뒤를 이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비판 보도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MBC(68.8%)였고 사실 전달은 동아일보(66.7%)가 가장 높았다. 신문에서는 경향신문의 비판적 보도 비율이 57.7%로 가장 높았고 조선일보 46.5%, 한겨레 45.3%, 중앙일보 44%, 동아일보 24.5% 순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진보 성향 언론이 보수 성향 언론보다 비판 비율이 높을 것으로 가정했으나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도출됐다”고 밝혔으며 “동아일보는 특별수사팀이 확대되면서 검찰 주요 취재원을 바탕으로 많은 기사를 냈고 진보매체로 분류되는 한겨레는 경향신문에 비해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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