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심사가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야당 입장에서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예산 증액과 삭감을 통해 야당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고, 여당은 임기 말 박근혜 정부의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 최대한 정부 예산안을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첫 여소야대 상황에서의 예산안 심사가 시작됐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장도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현미 의원이다. 야당은 박근혜 정부의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고 민생복지 예산을 늘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분야는 민주당이 ‘비선실세 국정농단 예산’으로 규정한 예산이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김태년 의원은 24일 의원총회에서 “비선실세 국정농단 예산은 삭감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이 예산을 국민을 위한 예산으로 재편성한다는 기본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특히 문체부 관련 사업들을 보면 위법한 과정을 거쳐서 확정된 사업들도 상당히 있다”며 “심지어 문체부가 기재부를 속여, 예를 들어 관광기금을 변형한 사례가 있다. 권력을 위한 위법한 예산들은 국회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24일 상무위 회의에서 “비선실세를 위한 특혜성 예산, ‘최순실 예산’은 전액 삭감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심사 등을 위해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정부의 2017 예산안을 보면 문체부는 2016년 904억 원이던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 예산을 1278억 원까지 늘렸다. 하지만 이 사업의 핵심인 ‘문화창조벤처단지 구축’은 비선실세로 알려진 차은택씨가 관여해 예산 증액 및 전용이 편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5년 동 사업에 관광기금으로 26억 원의 설계용역비가 반영됐으나 문체부가 2015년 6월30일 125억 원의 기금계획변경안을 기재부에 추가로 신청했고, 기재부가 하루만인 7월1일 이를 승인해줬다는 것.

이후 문체부는 9월24일 한식문화시설 설치 명목으로 20억 원을 추가로 증액시켰고, 다음날인 25일 기재부가 이를 승인했다. 예산이 늘어나는 과정에 차은택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문체부에 지시했다는 의혹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더민주는 23일 발표한 자료에서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 사업은 총 사업규모도 파악이 안 되고 있으며 사업규모상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아야할 사안”이라며 “금년 국정감사에서 감사원 감사를 요청한 바, 사업의 전면적 재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더민주는 농식품부가 154억 원을 배정한 K-Meal 사업 등도 ‘비선실세’ 관련 예산으로 규정했다. 농식품부와 농수산물유통공사는 2016년 본예산의 일부로 미르재단과 관련된 K-Meal 사업을 추진했는데, 최순실씨가 개입한 미르재단이 자격이 부족한 데도 사업을 맡아 추진했고 농식품부와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이를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복지부가 185억 원을 편성한 개도국 개발협력사업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순방 이후 ‘코리아 에이드’ 후속조치 및 성과확산을 위해 무리하게 신규 편성된 사업”이라며 “국제보건의료재단 개발원조 사업을 통해 차은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플레이그라운드 커뮤니케이션즈’가 편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순방 관련 콘텐츠 제작사업을 수주 하는 등 불법과 특혜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이런 움직임에 새누리당은 ‘예산과 무관한 정치공세’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명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예산과 관련되지 않는 정치쟁점 사항으로 여야합의가 무산되는 일이 없도록 야당에게 적극 협조를 구한다”고 밝혔다.

야당 내부에서도 비선실세와 관련 있다는 이유로 ‘전액 삭감’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손금주 국민의당 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최순실 씨와의 연관성만을 예산 삭감의 기준으로 삼아버리는 것은 입법부의 품위를 스스로 던져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예산심의에서 현미경심사를 하되, 일방적으로 삭감할 것이 아니라 사안별로 정책의 취지, 대상, 실효성을 살펴서 필요성을 검토하고 관리 측면에서는 엄격하게 집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입법부가 지켜야 할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박근혜표 경제정책인 ‘창조경제’ 예산도 주요 삭감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래부는 2017 예산안에 ‘창조경제기반구축’을 이유로 86억 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통합멘토링 지원체계 구축 사업을 위해 13억 원을 투입했으나 실적 확인이 안 된다는 점, 중소기업청 사업예산 등 다른 사업과 중복되면서 예산 낭비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창조경제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여당은 창조경제 및 문화융성사업 예산이 ‘일자리 예산’임을 강조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내년도 예산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일자리 예산이다. 일자리 예산을 금년 대비 10.7%나 늘려서 17조 5천억원 규모로 대폭 확대하는 한편, 예산 지출의 방향은 창조경제 실현에 맞춰 상당 부분을 바꾸었다”며 “‘기획­제작­소비­재투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문화창조융합벨트는 우리 산업에 문화의 옷을 입혀 새로운 융복합 콘텐츠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원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내년 예산을 ‘일자리 예산’이라고 강조한 것만으로도 박근혜 정부의 일자리 창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알 수 있게 할 정도다. 문화융성 실현을 통한 창조경제의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 문화 관련 예산을 최초로 7조원 규모로 확대 편성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며 “그런데 정부의 내년도 ‘일자리 예산’을 두고 야당은 벌써부터 ‘대통령 브랜드 사업’ 운운하며 대폭 삭감을 주장하는 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이 권력형 예산을 삭감하는 대신 내세운 증액 예산 사업은 복지 관련된 예산이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던 2017년 고교무상교육 실현을 위해 1.7조 원을 증액하고, 역시 박 대통령의 공약이던 노인 기초연금 인상(현행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공약 실현을 위해 3.3조 원을 증액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초연금 인상은 민주당의 총선 공약이기도 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346회 국회(정기회) 10차 본회의에 참석해 예산안 및 현안 등과 관련 시정연설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김종훈 무소속 의원이 최순실 의혹 관련 피켓을 들고 있다. ⓒ포커스뉴스

이 외에도 민주당은 ‘세모녀 예산’으로 불리는 저소득층 긴급복지 예산을 200억 원 증액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 긴급복지 예산은 2016년 1213억 원에서 2017년 1013억 원으로 200억 원 삭감됐다. 전년 대비 10%(2016년 668억 원에서 2017년 602억 원) 삭감된 취약계층 아동 및 가족 등에 대한 아동복지서비스 사업 예산도 67억 원 증액하고, 전년대비 39%(358억 원->216억 원) 삭감당한 저소득 장애인 의료비 예산도 142억 원 증액하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계획이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공약했던 ‘청년일자리 70만 개 창출’을 위해 1.1조 원의 예산을 증액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 공약사항 중 일부로 공공부문 청년일자리 5만 개를 창출할 수 있는 예산 1.1조 원을 2017년 예산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5만 명에게 연봉 2200만원(9급 공무원 기준)을 준다고 계산하면 1.1조 원이다.

이처럼 민주당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총선 공약을 추가적인 입법이 아닌 예산 편성 권한을 활용해 실천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셈이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복지 예산을 오히려 삭감한 정부 예산안을 두고 자화자찬성 평가를 내놓았다. 박 대통령은 24일 시정연설에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복지사각지대는 줄어들고 사회안전망은 보다 촘촘해졌다”며 “역대 어느 정부보다 내실있는 경제민주화 정책과 적극적인 복지 확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불균형을 해소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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