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김정은 때리면 일단 보수층은 좋아합니다. 시원하게 생각해요. (...) 이건 꼭 뭐 보수층만이 아니라, 진보층도 방송에서 이것도 그렇고 저것도 그렇고 공정지킨다고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말하면 별로 시청률이 안나옵니다. 아시다시피 방송이라는게 시청률을 먹고 사는 거 아닙니까.”

지난해 5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에서 연구용역을 발주한 보고서의 일부다. 해당 발언은 북한 및 통일 전문 기자와의 전문가 대담 중 언급된 내용이다. 현재 언론의 북한 보도가 자극적이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기대는 경향성이 있다는 지적의 맥락으로 나온 발언이다. 

해당 연구는 지난해 7월 나온 ‘미디어 평화통일 지향성 조사를 위한 척도 개발: 신문 뉴스 보도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통준위는 해당 정책연구과제에 대해 2000만원의 금액으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과 수의계약을 맺었지만 결국 이를 비공개 조치했다.

지난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박주선 국민의당 의원의 해당 보고서 비공개 이유에 대한 질의에 통준위는 “공개할 경우 우리 사회에 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비공개로 하기로 결정하였음”이라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기에 2000만원 상당의 연구용역을 주고도 비공개 조치한 것일까.

해당 보고서는 사회 주요 미디어들의 평화통일 지향성을 제고하고 국민들의 통일 인식과 열망을 제고하고 이를 다시 미디어의 통일지향성 제고로 유도하는 선순환 과정 조성을 목적으로 작성됐다.

▲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해당 연구에 따르면 한국 언론들이 북한·통일 관련 보도에서 갖는 문제점은 크게 북한 및 통일보도의 특수성과 일반적인 저널리즘 원칙 측면 등 두 가지로 나뉜다. 북한과 통일 사안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관련 보도는 △남북/남남 갈등 조장 △양극화 시각 확산 △북한에 대한 적대적·편향적 인식 확산 △흥미 위주의 자극적·선동적 보도 등이다.

일반 저널리즘 관점에 비춰봐도 한국 언론들의 북한 관련 보도의 문제점은 적지 않다. 해당 보고서는 일반 저널리즘 관점에서의 한국 언론 문제에 대해 △사실 근거하지 않은 ‘카더라’식 보도 만연 △정보 접근의 한계와 정부의 비협조적 태도 △독자적 통일 의제 설정 및 국민 공감대 형성 기여 불충분 △심층적인 분석 아닌 현안 중심의 일회성 보도 등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짚었다.

해당 보고서는 한국 언론들의 북한 관련 보도가 위협·안보 프레임으로 북한의 현실을 틀짓기하고 민족적 이질감을 강화·고착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공포정치와 폭력적 리더십 보도, 북한의 불확실한 동향을 중심으로 남북간 대치와 한반도 긴장모드를 조장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연구진은 또한 한국 언론들이 가진 평화통일 지향성을 실측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14일부터 20일까지 1주일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5개 일간지와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데일리안, 뉴데일리 등 4개 인터넷 신문을 대상으로 북한과 통일을 키워드로 해 검색한 기사 중 중복기사를 제외한 195건의 기사를 분석했다. 해당 기간에 벌어진 뉴스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훈련과 북한군 병사 귀순, 유엔 북한인권현장사무소의 서울 개소 등이 있었다.

해당 기간 동안 나온 전체 기사 중 관급자료가 보도에 인용된 기사 54건에 대해 별도의 확인 없이 단순 인용된 기사 건수는 45건으로 83.3%를 차지했다. 별도 확인 절차를 거친 기사는 9건으로 16.7%에 불과했다. 실제로 대다수의 기사들이 추가 확인 절차 없이 관급 자료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한 사례로 올해 2월 정부발 ‘리영길 참모총장 숙청’ 보도는 정부발 보도였으나 3개월 뒤에는 리영길 참모총장이 건재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또한 9개 언론사들이 일주일 간 북한과 통일 관련해 쏟아낸 기사 195건 중 125건(64.1%)이 이슈를 단순 전달하는 스트레이트성 기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배경과 경과, 결과까지 제시한 기사는 19.5%(38건), 분석과 해설, 대안이 담긴 기사는 16.4%(32건) 등으로 비교적 적었다.

해당 보고서는 관련 보도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보도인지를 판단하는 조건으로 크게 △평화통일 가치 추구 △남북 상호 존중 △보도 정확성·신뢰성 추구 △보도 독창성·심층성 추구 등을 꼽았다.

연구는 평화통일을 지향하기 위해 보도는 “북한에 대한 적대적·편향적 인식을 확산하거나 흥미위주의 자극적·선동적 보도를 함으로써 남과 북의 이질성을 부각시키고 소통과 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지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보도를 평가할 때는 상대국 지도자나 관료들에 대한 뉴스에서 인물의 호칭과 직책을 명기하는지, 북한 주민과 북한 지배계층을 상업적·선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지, 남북간 언어·문화·생활의 차이를 과장하고 희화적 소재로 삼지 않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는 점 등을 짚었다.

언뜻 타당한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보이는 이 보고서는 원래 일반공개하기로 했으나 결과보고서가 나온 이후 비공개 보고서로 전환됐다. 박주선 의원은 해당 보고서가 지적한 문제점을 사실상 통일부 등 현 정부에서 그대로 행하고 있기 때문에, 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인 통준위에서 보고서를 감추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주선 의원에 따르면 통일부 등 박근혜 정부의 브리핑이나 보도자료가 북한·통일 관련 보도의 문제점이라고 해당 보고서에서 지적한 행태를 그대로 실행하고 있었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평화통일 보도 준칙에 따라 남북상호 존중 차원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인물에 대한 호칭은 성명 다음에 직책을 붙여야 한다.

그러나 지난 5월8일 통일부 대변인 공식논평에서 “북한은 오늘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김정은이 제7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를 통해(...)”라고 쓴 것과 같이, 통일부 등 정부는 ‘김정은이’, ‘김정은은’ 등으로 지칭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박근혜 정부 초기 통준위를 만들어 평화통일 구상을 하던 때와 달리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북한과의 갈등과 대립이 잦아지고 있는 것도 평화통일이 필요하다는 보고서의 출간을 꺼렸을 가능성도 있다. 박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평화통일 구상을 밝히던 임기 초와 달리 최근에는 “북한 주민 삶은 지옥”이라며 북한에 대한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박주선 국회 부의장은 “통일준비위원회가 미디어의 평화통일 지향척도를 평가한 연구보고서를 감추려는 이유는 박근혜 정부와 통일부가 이와는 정반대로 행동해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