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의 단종을 결정했다. 갤럭시노트7 리콜을 재개한 1일부터 폭발사건이 일어났지만 삼성전자 측은 ‘블랙컨슈머 허위신고’라는 프레임으로 대응해왔다. 언론도 갤럭시노트7이 폭발했다는 소비자의 주장보다 삼성 측의 조사 결과를 전달하는 데만 몰두했다.

지난 6일 미국의 항공기에서 갤럭시노트7이 폭발했고 리콜 이후 9건의 국내외 폭발 사례가 접수됐다. 미국언론은 리콜제품까지 폭발하자 삼성에 우호적이었던 언론까지 갤럭시노트7의 판매를 중단해야한다고 주장했고 몇몇 언론은 ‘갤럭시노트7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여전히 갤럭시노트7과 아이폰7을 비교하는 기획기사를 내고 갤럭시노트7 리콜 이후에도 ‘삼성 띄우기’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 언론은 △갤럭시노트7의 리콜 제품은 안전하다며 판매가 잘되고 있다고 홍보한 점 △갤럭시노트7의 리콜 사태 빠르게 대처했다며 극찬한 점 △삼성전자의 의도대로 소비자들을 블랙컨슈머로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에 우호적이었다. 갤럭시노트7 판매 재개를 한 1일부터 생산을 중단한 10일까지의 뉴스를 분석했다.

▲ 11일 갤럭시노트7의 단종이 결정된 이후에도 삼성전자의 홈페이지에는 갤럭시노트7의 홍보가 첫화면으로 뜬다.
“교환받은 제품, 아기방에서 폭발했다” 주장에도 언론은 침묵

1일 국내에서 리콜된 갤럭시노트7이 터졌다. 갤럭시노트7이 1일 판매 재개를 시작하자마자 폭발 사건이 난 것.

1일 이 사건을 보도한 TV조선은 리콜한 갤럭시노트7이 폭발했다는 소식과 함께 “삼성 측은 피해자가 거액의 금품을 요구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마치 피해자가 보상금을 노리고 압력을 가해 폭발을 유발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폭발을 겪은 당사자는 인터넷에 글을 올려 “금품을 요구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이후 TV조선의 해당 기사는 삭제됐다.

▲ TV조선 해당 기사 화면 갈무리. 현재 해당 기사는 삭제된 상태다.

이에 ‘보배드림’, ‘뽐뿌’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삼성이 TV조선에 언론 플레이를 하다가 걸리니 기사를 삭제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TV조선 측과 삼성 측이 인터뷰를 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TV조선이 기사를 삭제한 것은 삼성 측과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삼성 갤노트7 교환제품도 폭발”, 기사가 사라졌다>

당시 언론은 리콜한 갤럭시노트7이 터졌다는 소비자의 주장은 거의 기사화하지 않았다. ‘시사오늘’, ‘베타뉴스’등 2~3개의 인터넷매체가 기사를 내보냈을 뿐이었다. 반면 같은 날 갤럭시노트7의 판매가 재개됐다는 소식에는 100건(이하 네이버 온라인 기준)이 넘는 기사가 쏟아졌다. 언론은 갤럭시노트7이 “리콜 충격에도 불구하고 건재함을 과시한다”며 “판매 재개 첫날 ‘대세폰’ 판단 기준인 ‘하루 1만대 이상’ 판매고를 훌쩍 넘겼다”고 홍보했다.

▲ 10월 2일 '갤럭시노트7'을 검색어로 설정해 찾은 뉴스 화면. 국내에서 갤럭시노트7이 폭발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하루가 지났지만 이를 보도하는 언론 2~3군데에 불과했다. 반면 리콜한 갤럭시노트7을 홍보하는 기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외부압력에 의한 발화”라던 삼성, “블랙컨슈머”라던 언론

국내에서의 폭발사건 이후 삼성전자와 언론은 리콜제품의 폭발을 블랙컨슈머에 의한 것으로 만들었다. 국내 폭발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 뒤인 3일 삼성전자는 한국SGS 기흥시험소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외부 충격에 의한 발화”라고 결론냈다. “갤럭시노트7이 또 폭발했다”고 주장한 소비자의 주장에는 조용했던 언론이 삼성의 발표는 일제히 받아 보도했다. 이날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발화는 외부충격 때문”이라는 주제의 기사가 51건 보도됐다.

이후 삼성전자와 언론은 갤럭시노트7의 폭발 주장이 블랙컨슈머에 의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조선일보 ‘노트7 또 터졌어요…허위 신고에 음모론까지’(10월5일자), 메트로 ‘발 없는 말에 잇단 곤혹 치른 삼성’(10월 5일자)기사가 대표적이다. 삼성은 이에 맞춰 “노트7에 인위적으로 열을 가한 뒤 불이 났다고 하는 등 허위신고 사례가 전 세계에서 59건이 확인됐다”고 이례적으로 발표했다. ‘갤럭시노트7 폭발 허위신고 59건’이라는 삼성의 발표 내용은 30건 이상 보도됐다.

▲ 10월 5일자 조선일보.
하지만 삼성과 언론의 ‘블랙컨슈머’ 프레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6일 미국 항공사 Southwest Flight 기내에서 갤럭시노트7이 폭발해 기내 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미국 항공기에서 갤럭시노트7이 폭발했다는 기사는 46건 보도됐다.

이후 국내외에서 갤럭시노트7 폭발 사례가 연이어 접수됐다. 9일 대만에서의 폭발이 접수됐고 국내에서도 대전 야구장과 송도 현대 아울렛 버거킹 매장에서 갤럭시노트7이 폭발했다. 이밖에도 미국 뉴 멕시코주 파밍턴 미네소타 등 9월 28일 이후 총 9번의 국내외 폭발 사례가 보도됐다.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갤럭시노트7에 대해 사실상 환불을 권고했다. 버라이즌, AT&T,T모바일,스프린트 등 미국 이동 통신사도 갤럭시노트7을 안전한 스마트폰으로 교환할 것을 권고했다.

9일에는 삼성전자가 폭발 피해자에게 실수로 보낸 문자가 논란이 됐다. 미국 켄터키 주 니콜라스빌에서 일어난 폭발사건 당사자에 삼성전자 측이 “Just now got this. I can try and slow him down if we think it will matter, or we just let him do what he keeps threatening to do and see if he does it.” (방금 문자를 확인했다. 만약 문제가 될 것 같다면 내가 최대한 시간을 끌겠다. 아니면 계속 그가 협박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겠다.)는 문자를 보낸 것이다. 삼성전자가 블랙컨슈머로 여론을 이끌어가던 시도가 들통 난 대목이다.

▲ 삼성전자의 '문자 실수'로 드러난 안이한 대응은 미국 IT매체 'The Verge'(더버지)에 의해 크게 드러났다.
미국의 IT매체 ‘The Verge’(더버지)는 삼성의 대응을 두고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이 폭발한 것을 알고도 의미 없는 말들만 하고 있다”며 “갤럭시노트7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당장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삼성의 ‘문자 실수’를 보도한 한국 언론은 중앙일보와 서울신문을 포함해 6곳이었다.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적은 수의 보도다.

이런 일련의 사건에 미국언론과 한국 언론의 보도 형태는 대조적이다. 삼성의 갤럭시노트7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온 한 IT블로거는 “평소에 삼성에 매우 우호적인 보도를 해온 일부 미국 언론조차도 갤럭시노트7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구입을 막고 있는데 한국 언론은 여전히 기획기사를 내며 삼성을 띄운다”고 주장했다.

▲ 사진출처: IT블로그 'TB의 SNS 이야기'
실제로 미국에서 삼성에 우호적인 ‘Sammobile’(삼모바일)은 갤럭시노트7의 판매가 중단되어야한다는 입장을 내며 이에 동의하냐며 유저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자들의 49%는 “당장 판매를 중단해야한다”고 답했다. ‘Android Central’(안드로이드 센트럴), ‘The Verge’(더버지)와 같은 대표적인 IT 매체들도 갤럭시노트7 공식 불매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여전히 삼성에 우호적인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심지어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의 생산을 일시 중단한 10일에도 마찬가지였다. 10일 갤럭시노트7 생산 일시 중단 결정으로 주가가 전거래대비 1.52% 하락했음에도 ‘삼성전자 시총 241조 압도적1위, 글로벌 1위 애플과 격차 줄었다’(헤럴드경제 10일자), ‘리콜비 털어낸 삼성, 아이폰7 올테면 와봐’(아시아투데이 10일자)와 같이 삼성전자를 띄워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11일 조간에서는 미국정부가 과도하게 삼성전자를 비판하고 있다는 논조도 또 다시 등장했다. 조선일보는 미국 4대 이통사가 갤럭시노트7에 전액 환불과 교환 교치를 내린 것을 두고 “‘미국 정부가 삼성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특히 삼성이 지난 9월 2일 리콜을 단행하면서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에 사전 허가를 받지 않아 상당히 불쾌해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삼성은 한국의 타이레놀? 속도만 빨랐을 뿐

리콜한 제품에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리콜 사태는 빠른 대응이었을 뿐 제대로된 대응은 아니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처음 갤럭시노트7의 리콜을 결정했을 때 한국 언론은 “발 빠른 대응”이라고 극찬했다. 갤럭시노트7의 폭발사례가 국내외 35건이 접수됐고 미국 연방항공청,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 등에서 갤럭시노트7의 사용과 충전을 금지한 초유의 사태인만큼 리콜은 당연해보였지만 언론은 이를 삼성의 ‘통 큰 결단’으로 보도해왔다.

한겨레의 ‘갤노트7, 위기 대응 모범사례 쓰는 중?’(10월4일자)기사가 대표적이다. 해당 기사는 1982년 타이레놀 복용 사망자가 나오자 신속한 대응을 한 ‘타이레놀 사례’와 삼성을 비교하며 한국에서는 진일보한 대처라고 보도했다. 이어 기사는 “이 때문인지 갤럭시노트7의 인기는 리콜 사태를 겪고도 식지 않은 모습”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결국 리콜한 갤럭시노트7이 다시 폭발하고 생산이 중단되며 많은 언론이 머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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